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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 끝낸다던 '5.31'…무엇을 남겼나[교육개혁 30년①]

등록 2025.01.25 08:00:00수정 2025.01.25 08: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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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5.31 교육개혁 30주년…교육제도 틀 마련돼

수요자 중심 관점 전환 평가…'경쟁 심화' 비판도

입시에 묻힌 창의성, 과도한 사교육비, 규제 지적

현재도 풀어야 하는 숙제로 지적…"새 개혁 시급"

[수원=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25.01.25. photo@newsis.com

[수원=뉴시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25.01.25. [email protected]


5.31 교육개혁은 지난 1995년 문민정부의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말한다. 이후 역대 정권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교육 정책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문제 의식인 '암기 위주의 입시교육'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5.31 교육개혁의 정책 기조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부실 대학의 난립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받는다. 5.31 교육개혁 30주년을 맞아 교육 현장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고자 한다.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교육 제도의 근간을 형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5.31 교육개혁이 올해 30년을 맞았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 체제로 전환됐다는 성과도 있지만, 해결하고자 한 '입시지옥'은 여전하고 사회 전반 경쟁을 심화시킨 과오도 지적을 받는다.

25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5.31 교육개혁'은 1995년 문민정부의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가 내놓은 '新(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비롯해 매년 후속 발표된 총 4차례의 개혁방안을 뜻한다.

교개위는 보고서에서 교육개혁 방안 설계 배경을 소개한 '한국 교육의 현안 문제'에 "한 마디로 암기 위주의 입시교육이 문제"라고 적었다. 또 "단편적 지식을 암기하는 현실로부터 유리(동떨어진)된 교육이 문제"라고 했다.

교개위의 추진 방안은 당시 언론에서 대서특필됐다. '국립대 본고사 폐지', '97학번부터 사립대 입학정원 자율화' 등 대학의 입시 제도가 자율화되고 지금의 틀이 갖춰졌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도 이 때 처음 생겼다. 국공립대는 1997학년도 입시부터 학생부를 반드시 쓰도록 했다. 종전에는 총점 위주의 내신제도만 활용했는데, "학생의 다양한 인성과 적성, 진로를 입시에 반영하는" 취지였다.

학교에서는 수요자의 참여를 늘리고 공급자 감시를 강화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참여해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을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됐다. '교원능력개발평가'도 이때가 출발인데, 2023년 서이초 사건 등 교권침해 논란으로 지난해부터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정부는 1998년까지 교육재정을 국민총생산(GNP) 5% 규모로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보고서 발표 전까지 진통이 가장 컸던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초·중·고 재정의 원천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이때 법률로 제정됐다. 내국세 세입 20.79%를 교육에 쓴다.

대학과 고등학교 설립은 '인가제'에서 '준칙주의'로 바뀌었다. 고교와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꾀한다는 구상이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전신 '자립형 사립고'가 이때 처음 등장했다. 대학도 비수도권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누구나 학교를 자유롭게 세울 수 있도록 했다.

1차 보고서의 굵직한 정책들만 나열한 것이다. 모두 2025년 현재까지 유지되는 교육 제도의 기본 틀이 됐다.

이후 정부에서도 5.31 교육개혁의 틀을 계승했다. 설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은 장관에 올랐다. 이돈희, 이명현, 김신일 전 장관은 1기 교개위 위원이다.

이주호 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당시 KDI 연구위원으로 교개위 전문위원 활동을 했다. 이번 부총리 취임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문민정부 사회복지수석인 박세일 1기 교개위 위원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바 있다.
[세종=뉴시스] 1995년 5.31 교육개혁의 입안자들은 차례차례 교육부 장관을 맡으며 개혁과제를 추진해 갔다. 지난 2013년 5월3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역대 교육부 장관 초청 정책소통 간담회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덕홍, 이돈희, 이상주, 박영식, 권이혁, 김덕중, 김숙희, 김신일 전 장관. 뒷줄 왼쪽부터 이주호, 이해찬, 송자, 김진표, 문용린, 이명현, 윤형섭 전 장관, 서 장관. (사진=뉴시스DB). 2025.01.25.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 1995년 5.31 교육개혁의 입안자들은 차례차례 교육부 장관을 맡으며 개혁과제를 추진해 갔다. 지난 2013년 5월3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역대 교육부 장관 초청 정책소통 간담회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덕홍, 이돈희, 이상주, 박영식, 권이혁, 김덕중, 김숙희, 김신일 전 장관. 뒷줄 왼쪽부터 이주호, 이해찬, 송자, 김진표, 문용린, 이명현, 윤형섭 전 장관, 서 장관. (사진=뉴시스DB). 2025.01.25. [email protected]

교육부가 직접 5.31 교육개혁에 대해 연구를 하고 새로운 교육개혁 담론을 내놓은 일은 아직 없다. 다만 대학 교수나 국책연구기관, 전 장관들이 내놓은 보고서는 있다.

10주년이 지난 2006년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5.31 교육개혁의 현황과 전망'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라고 규정했다. "교육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복무해야 한다는 사고에 바탕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공교육 시장화는 학교와 교원을 '교육 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학부모·기업을 소비자로 보는 접근 방식에 잘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고는 '학교 민영화'로 규정했다. 교사나 교수를 개혁 대상으로 규정한 점에 대해 "교육자들의 사기가 저하됐다"고도 했다.

이처럼 진보 진영에서는 5.31 교육개혁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한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학생 수 감소를 예측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부실 대학의 양산을 부추겼다는 것은 대표적인 비판이다.

반면 해방 이후 50년 간 굳어진 '발전국가 주도 하의 국민형성과 산업화를 위한 교육'을 '인적자원 개발', '학생, 학부모 등 수요자 중심' 관점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도 있다.

20주년인 2015년에는 안병영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을 펴낸다. 안 전 부총리는 문민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내면서 5.31 교육개혁을 실행했다.

두 인물은 저서에서 "5.31 교육개혁은 드물게 성공한 정책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개혁과제 120개 중 70%를 집행했다고 평가했다.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에는 "창안 주역인 이명현, 박세일도 당시 중도개혁적 가치지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됐다"고 적었다. 다만 '상대적 성공'이라 표현함으로써 그림자를 일부 인정했다. ▲정부 주도 하향적 개혁 ▲시간요인(출발이 늦은 점) ▲교사, 공무원 보상체계 미비 ▲관료적 정책과정 한계(본질 이탈)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5.31 교육개혁은 이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이념적 바탕을 깔고 미래를 설계한 계획"이라며 "국가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지도해 줬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극한 경쟁, 실력 만능주의 사회의 병폐를 키웠다는 후유증이 함께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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