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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戰 현장리포트③]지하 9m에 응급실·수술실…람밤병원의 변신

등록 2025.11.19 13:02:00수정 2025.11.19 13: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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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시엔 주차장, 전시엔 2000명 수용 ‘지하 요새 벙커 병원’

코로나 전쟁 등 3 차례 운영…최근 2년 동안 40일 완전 가동

연구 기능까지 지하로…“전쟁 중에도 치료와 연구는 게속"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최명수 기자 = 지난 11일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람밤병원 지하 3층 한 켠. 비상시 사용할 응급실과 수술실에 각종 장비가 갖춰져 있다. 2025.11.11. apollon@newsis.com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최명수 기자 = 지난 11일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람밤병원 지하 3층 한 켠. 비상시 사용할 응급실과 수술실에 각종 장비가 갖춰져 있다. 2025.11.11. [email protected]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최명수 기자 =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 이 곳 중심부에는 지상과 전혀 다른 공간을 품은 람밤병원이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평범한 지하 주차장처럼 보이던 공간에서 산소 라인, 전력 포트, 의료 가스 패널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바닥 스티커로 병상 배치 번호가 표시돼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이곳은 지하 병원으로 설계됐지만,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하 3층(해수면 기준 9~18m)과 다른 건물 2층을 포함한 면적 약 20만㎡ 규모의 ‘새미 오퍼 요새 병원(Sammy Ofer Underground Fortified Hospital)’은 1200~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형 의료체계다. 가동 신호가 떨어지면 단 15~36시간 만에 지하 전체가 병원으로 전환된다.

15시간 만의 변신, 지하 전체가 의료 플랫폼

평시 약 1500대 차량이 주차된 지하는 환자 2000명을 수용할 종합병원으로 탈바꿈한다. 주차장 벽면 패널을 열면 산소·전력·통신망이 즉시 활성화되고, 조명과 공조는 전시 모드로 전환된다. 지상 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집중치료실(ICU), 수술실, 투석센터, 신생아 진료구역도 지하에 갖춰져 있다.

셔터를 열면 감염 차단용 강력한 바람이 흐르는 응급실과 수술실이 나타나고, 화장실과 세면대 설치용 하수구도 미리 준비돼 있다. 중앙통제실(The Fortified Command Center)에서 병원 전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조종할 수 있다.

지하 3층, 숨겨진 도시

지하 3층 20만㎡ 공간에는 천장 가득 파이프와 통풍 덕트가 설치돼 있어 시야를 압도한다. 평상시 조도는 10%에 불과하지만, 스위치를 올리면 조명이 밝아지고 환기가 즉시 가동된다. 벽 패널을 열면 산소·흡입기·전기·모니터 라인이 드러난다.

공사 당시 100여 개 펌프로 2년간 물을 빼냈고, 바닥은 4m 콘크리트로 다졌다고 한다. 미끄럼 방지 바닥, 숨겨진 배수로, 접이식 화장실과 샤워실 모듈까지 세밀하게 설계돼 있다. 이곳은 단순한 주차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하 도시로서의 의료 생태계를 갖춘 공간이다.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최명수 기자=지난 12일 이스라엘 하이파 람밤병원에서 한 내원객이 출구로 향하고 있다. 이 병원 지하 2,3층은 전쟁 등 유사시에 2000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요새병원으로 탈바꿈한다. 2025.11.12 apollon@newsis.com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최명수 기자=지난 12일 이스라엘 하이파 람밤병원에서 한 내원객이 출구로 향하고 있다. 이 병원 지하 2,3층은 전쟁 등 유사시에 2000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요새병원으로 탈바꿈한다.  2025.11.12 [email protected]


ICU·투석실·수술실…제왕절개도 가능

이곳은 야전병원이 아니다. ICU급 산소·가스 라인이 기본 탑재돼 있으며, 북부 12개 병원 전체의 투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 수술 존에는 ‘다운드래프트’ 시스템이 적용돼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흐르며 감염을 차단한다. 전시 상황에서는 제왕절개 수술도 5분 내에 진행되며, 실제 다수의 분만이 지하에서 이뤄졌다.

지하 2층(S2)은 병원의 분배 허브 역할을 한다. 상부에서 내려온 환자와 부서를 즉각 분배하고, 주변 12개 병원과 연동해 북부 의료망을 통합한다. 유치원까지 마련돼 있어 전시에는 직원 자녀 450명이 함께 내려온다. 지하 병원은 단순 의료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지하 도시’다.

세 차례 실전 가동, 검증된 요새 병원

람밤 지하 병원은 이미 세 차례 가동 경험을 갖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지하를 코로나 전용 병동으로 운영했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기습 공격 직후에는 인근 해군 병력 300명이 투입돼 36시간 만에 B2·B3층을 병원 모드로 완전히 전환했다.

지난해 이란 미사일 공격 때도 2~3주간 지하에서 모든 진료가 정상 운영됐다. 실험실이 아닌 실제 ‘작전 공간’임이 입증된 순간이다.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람밤병원 지하 3층 통제실. 전시에는 지하 주차장이 병원으로 변신한다. 이곳에서 모든 시스템을 통제한다. 병원 관계자가 통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이스라엘 하이파=뉴시스] 이스라엘 제 3의 도시 하이파에 있는 람밤병원 지하 3층 통제실. 전시에는 지하 주차장이 병원으로 변신한다. 이곳에서 모든 시스템을 통제한다. 병원 관계자가  통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51111.


혁신 DNA와 메드테크

람밤은 스탠퍼드식 ‘바이오디자인’을 도입해 필요 기반 혁신을 강조한다. 직원 6500명 모두 혁신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으며, 25%는 특허 출원으로 이어진다. 발명자는 기술 이전 수익의 35%를 받는다. 병원에서 개발된 기술에는 췌장 생검 기구(FDA 승인)와 식물인간 의식 반응 측정 시스템이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했다.

1894년 십자군 수도원으로 시작한 람밤병원은 오스만 군 병원, 영국령 북부 거점 병원을 거쳐 3차 상급 병원으로 성장했다. ‘람밤’은 12세기 유대인 랍비이자 의사 마이모니데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때 메인 빌딩이 건설되고, 2006년 레바논 전쟁 이후 새 캠퍼스가 더해져 지금의 형태가 됐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이후에도 어린아이의 출산이 지하 병동에서 급증하며, 공포 속에서도 삶은 이어졌다. 병원 관계자는 이곳을 “전쟁 속 삶을 지키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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