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삶의 이유가…" 생이별에 가장의 시간이 멈췄다[여객기참사 1년㊤]

등록 2025.12.24 09: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연말 맞아 해외 가족여행이 아내·두 아들 잃은 참극으로

선물한 반지가 유류품으로…죄책감 영정 들고 1인 시위

무안공항 못 떠나는 유족 "진상 규명에 관심 절실" 호소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김영헌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이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전남경찰청 앞에서 책임자 처벌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5.12.15. lhh@newsis.com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김영헌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이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전남경찰청 앞에서 책임자 처벌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5.12.15. [email protected]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1년을 맞는다. 조류 충돌에 따른 엔진 이상으로 비상 동체착륙 중이던 여객기가 활주로 끝자락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콘크리트 둔덕을 충돌, 폭발한 전무후무한 대참사. 탑승자 181명 중 단 2명만이 생존한 국내 최악의 항공사고로 기록됐다. 참사 원인·책임 소재를 속 시원히 밝혀야 할 국토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는 독립성·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며 불신을 자초했다. 조사위가 소속 이관 등 전면 재조사 기로에 선 사이 경찰 수사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유족들은 애타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진실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년간의 상황을 재조명해봤다. [편집자주]

[무안=뉴시스]이현행 기자 =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지난해 12월29일 그날의 참사는 김영헌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잃은 김씨는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자신만을 홀로 남겨두고 말없이 먼저 간 가족이 그립다며 "삶의 목표조차 잃어버렸다"라고 했다.

국내 투자기업 해외 법인장이었던 김씨는 지난해 연말 어린이집 운영으로 쉴 틈 없는 아내, 대학 졸업을 앞둔 큰아들, 병역 복무 중 휴가 나온 작은아들과 모처럼 날짜를 맞춰 가족여행에 나섰다.

행복했던 태국 가족여행을 마치고 김씨는 방콕에서 곧바로 근무지인 인도로 향했다. 아내와 두 아들은 무안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타고 귀국길에 나섰고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객기 참사를 상징하는 하늘색 목도리를 연거푸 어루만지던 김씨는 참사 직후 상황에 대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김씨는 "추락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죽음과 싸우는 시간이었다"며 힘겹게 입을 뗐다.

곧바로 회사를 그만뒀고, 장례를 마치기 전까지는 가족이 함께 살던 집에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이사를 택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자란 곳이었다. 단지 내 의자에도 식구들 (추억) 생각에 다가가지 못했다. 도저히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았다. 가족의 유해를 안치한 추모관 옆으로 이사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라며 울먹였다.

아내가 생전 타고 다니던 차량은 처분하지 않고 지인에게 맡겼다. 아내가 타던 차량 핸들에 남은 반지 자국이 계속 눈에 밟혀서다. 그는 "제가 선물한 아내의 반지는 유류품으로 돌아왔다. 참사 당시 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반지가 본래 모양이 아니었다. (아내가) 당시 불길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흐느꼈다.

김씨는 가족 여행지를 정할 때부터가 후회된다고 했다. "큰아들은 말레이시아로 가자고 했다. 여러 조건상 태국이 좋겠다고 제가 결정했다. 그때 아들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루하루 자책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지난 10월부터 희생자 영정과 함께 전남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1t 화물차에 참사 사진·진실 규명 촉구 문구를 새기고 전국 곳곳을 돌며 호소하고 있다.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공항 관계자가 지나가고 있다. 2025.12.15. lhh@newsis.com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공항 관계자가 지나가고 있다. 2025.12.15. [email protected]


1년이 지나도 바뀐 것 하나 없이 유족들의 시간은 2024년 12월29일에 멈춰 있다. 정부 공식 조사 활동과 경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유족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분노와 실망뿐이었다.

참사 발생지인 무안국제공항도 1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다. 공항 2층에 마련된 임시숙소(쉘터) 30여 곳에는 유족들이 남아 있다.

참사로 부모와 남동생을 잃은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3대(代) 8명이 한 집에 모여 살았던 김 대표의 가정은 화목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김 대표의 동생은 장기근속 수당을 받아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가까워서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 잘 다녀오겠다'라는 부모와의 대화가 영영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부모의 유품은 정리조차 못 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돌아오실 것 같은 기분 탓이다.

김 대표는 "매일 아침 부모님 옷가지를 부둥켜안고 소리 질러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사고를 당한 분들의 한을 풀기 위해 직접 뛰게 됐다"고 유가족 대표로 나서게 된 이유를 밝혔다.

참사 유가족들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참사 1주년을 닷새 앞둔 24일 "지역에서 나눈 온정을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는 국민들께서 진실 규명에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 참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 없이는 진실에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해 달라. 대한민국 안전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고 호소했다.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하늘색 리본과 국화, 물, 커피 등이 놓여있다. 2025.12.15. lhh@newsis.com

[무안=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5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하늘색 리본과 국화, 물, 커피 등이 놓여있다. 2025.12.15.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