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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하나에 인생 묶여'…제도 밖 인도적 체류자[낯선 땅, 가로막힌 삶②]

등록 2026.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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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체류'…머무를 순 있지만, 살 수는 없는 신분

자격 이유로 고용 거부…지난해 신청자 4.7%만 체류 허가

가족 상봉도 막혀…법적 근거 없어 가족 결합 불가능

[서울=뉴시스] 국내 체류중인 난민신청자들이 정부에 난민신청 인정 및 최소한의 생계보장 지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2022.0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국내 체류중인 난민신청자들이 정부에 난민신청 인정 및 최소한의 생계보장 지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2022.02.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상우 수습 기자 =
"한국에서는 미래를 생각하기가 어려워 굉장한 무력감을 느낍니다."


지난달 28일 만난 아이티 출신 리멜러스 장 밥티스트(38)는 말끝을 흐렸다. 한국에 온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삶의 기반을 세우지 못해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대신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인도적 체류자는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우려돼 체류는 허용되지만, 난민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뜻한다. 정주를 전제로 한 권리는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취업과 가족결합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제약된다.

장 밥티스트는 2019년 한국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고 2022년 인도적 체류 자격(G-1-6)을 받았다. 그는 "난민 신청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취업이 금지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단기 일을 하면서도 단속에 걸려 추방될까 늘 두려웠다"고 밝혔다.

보호 공백에 놓인 인도적 체류자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 신청자와 달리 6개월 내 취업 제한 규칙을 적용받지 않고, 체류 기간도 최대 1년 단위로 연장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

고용주가 비자 제도를 잘 알지 못해 채용을 꺼리거나, 체류 자격을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장 밥티스트는 "이전 한 직장에서 인도적 체류비자를 갖고 있다는 얘기 듣자마자 여기서는 일하지 못한다고 했다"며 "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태임에도 다들 인도적 체류 비자가 한국에서 일을 못한다고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말하는 것과 고용주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다른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불안정한 단기 노동을 전전해야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0년(1994~2024) 동안 난민 심사를 모두 마친 5만7090건 중 2696명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전체 4.7% 수준에 불과하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선 차별과 폭행을 겪기 일쑤였다. 장 밥티스트는 "택배 물류회사에서 폭행을 당했었다"며 "한국 직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다른 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비자 앞에 무너진 가족 결합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등으로 난민 인정을 받은 이란 출신 중학생 김민혁군이 난민 재심사를 받은 아버지와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이날 김 군의 아버지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임시 체류를 허용하는 '인도적 체류' 결정을 받았다. 2019.08.08.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등으로 난민 인정을 받은 이란 출신 중학생 김민혁군이 난민 재심사를 받은 아버지와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이날 김 군의 아버지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임시 체류를 허용하는 '인도적 체류' 결정을 받았다. 2019.08.08.  [email protected]



가족과의 상봉도 이뤄지기 힘들다. 국내 난민법 제37조에 따르면 난민 인정자에 대해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의 입국을 허용하고 있으나, 인도적 체류자에 대해서는 관련 법적 근거가 없어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과 결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15일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 결합이 가능하도록 법무부에 난민법 개정 추진을 권고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해당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장 밥티스트는 한국 정부에 장기 체류가 가능한 비자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도 호소했다. 그는 "인도적 체류 비자를 한 번 받으면 다른 비자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며 "정당하게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교육이나 금융, 사회적 지원에도 접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인도적 체류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현행 G타입에서 F타입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일 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은 "인도적 체류자의 지위를 F타입으로 바꾸고, 난민인정자와 동일한 처우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적어도 '영주권 취득', '국적 취득'으로의 당연한 길에 대한 차별적인 차단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의 고용주는 G로 시작되는 비자를 보면 생소하고,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고용을 꺼린다"며 "단순 노무업의 범위가 실제로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 정도로 제약되고, 고용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업장도 많아 취업허가를 받기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자립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새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난민들이 가족들을 부양하고 존엄한 삶을 되찾으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일하고, 교육받고,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 마련이 필수적"이라며 "대한민국 내 난민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식당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내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고, 다양한 주민을 위한 상담·복지·인권 보장 지원 등을 제공하는 센터에서 근무하며 지역사회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기회만 주어진다면, 난민은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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