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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모르는 노래의 손맛"…박성서, 어느 평론가의 미련한 음악 사랑

등록 2026.01.27 10:37:58수정 2026.01.27 12: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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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중음악의 산증인' 박성서 평론가 인터뷰

10권짜리 '한국 대중음악 인물 총서' 발간 준비

"국립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생겼으면…문화강국의 길"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기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기록'이라는 이름의 고독한 투쟁에 바쳐온 한 대중음악 평론가가 있다.

박성서(70)씨는 대중음악평론가 중에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존재다. 대다수가 팝·아이돌·인디음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박 평론가는 오래된 가요에 애착이 크다. 국내 원로가수에 대한 제대로 평을 할 수 있는 평론가는 사실상 그가 유일무이하다.

박 평론가는 1980년대 초부터 2001년까지 여러 잡지사에서 기자로 활약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회현동 지하상가, 청계천 벼룩시장 등을 돌며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발굴의 기쁨을 누리며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의도치 않게 대중음악의 역사와 원로가수들의 기억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원로가수, 작사·작곡가들은 자신의 데뷔곡이, 언제 발표한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박 평론가가 그들의 활동을 꾸준히 재조명하다 보니 가수들이 거꾸로 그에게 본인 이력을 물어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대중음악의 산증인' 박 평론가는 무엇보다 데이터의 바다를 유영하는 인공지능(AI)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 즉 '손맛'과 '눈맞춤'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알고리즘은 가수의 음색을 분석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이 깨진 턱을 부여잡고 불렀던 첫 소절의 비장함이나, 딴따라라 불리며 냉대받던 시절의 슬픔까지 읽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박 평론가는 박시춘과 반야월 같은 거장들의 낡은 레코드를 닦고, 이미자의 2000여 곡을 엑셀 시트에 일일이 입력하며, 90세 원로 가수의 유실될 뻔한 목소리를 영상으로 붙잡아둔다. 누군가는 이를 '미련한 열정'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미련함이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시들지 않게 적시는 유일한 양분이다.

박 평론가는 단순히 특정 가수의 자료만 수집한 것이 아니었다. 2003년부터 약 30만여 곡에 달하는 한국 대중가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온 '아카이브의 장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의뢰를 받아 약 7~8년간 저작권 정보가 누락된 곡들의 작사·작곡 정보와 발매일 등을 찾아내 복원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가요사의 거목인 작곡가 박시춘, 김희갑 등의 작품 목록도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박 작곡가의 작품은 유족의 요청으로, 김 작곡가의 경우 본인의 직접 의뢰를 받아 그가 직접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다. 그 과정에서 김 작곡가의 부인인 양인자 작사가의 작품 목록까지 함께 등록했다.

박 평론가가 곧 펴낼 10권의 인물 총서는 단순한 인터뷰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부고 기사 속에 단 한 줄의 정확한 사실을 기입하기 위한 사투의 결과물이며, 일본의 창고에 보관된 우리 가요의 원본 릴 테이프를 향한 안타까운 갈망이다.

음악이 주는 에너지를 여전히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하는 이 평론가의 목소리를 최근 들었다. 노래가 너무 좋아 시작했다는 그의 고백은, 결국 평론이란 '좋은 것을 함께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의 가장 성실한 형태임을 증명해 보인다. 다음은 박 평론가와 나눈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계속하던 일 하고 있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산하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해마다 원로 예술인들의 생애사를 채록하는 작업을 해요. 지난해에 저는 대중예술 쪽을 맡았는데, 작사가 지명길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2시간씩 다섯 차례, 총 10시간 정도 진행했죠."

-지명길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어떠셨나요?

"그분이 참 말씀을 조리 있게, 함축적으로 잘하세요. 사실 지 선생님에 대한 개인적인 기사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음악감상실 DJ로 시작해서 MC, 작사가, 신세기 레코드(현 신세계음향) 문예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연예협회 등 60여 년간 가요계 전반에서 안 해본 일이 없는 분이에요. 이번에 채록하면서 저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다는 게 다 배움의 과정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준비해오신 책이 곧 나온다고요.

"제가 시사 월간지 '뉴스메이커' 등에 2007년부터 20년째 연재하고 있는 글들이 있어요. 그 원고들을 모아서 이번에 10권짜리 책으로 냅니다. 가제는 '한국 대중음악 인물 총서' 정도로 잡고 있는데, 한 권에 10명씩 총 100명의 가요계 인물을 다룹니다. 원래 3년 전에 나왔어야 했는데, 단순한 인터뷰집이 아니라 당시의 음반, 포스터, 사진 자료까지 전부 검토하고 고증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올해는 무조건 낼 생각입니다."

-100명을 선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울=뉴시스] 금사향,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금사향,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혼자 하려니 정말 힘들죠. 이미 원고의 기본은 다 돼 있는데, 형평성 문제가 가장 고민이었어요. 박시춘, 반야월, 손석우 같은 1세대 거장들과 그 이후 인물들을 어떻게 형평성 있게 다룰 것인가, 분량은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시대별로는 1930~40년대부터 시작해서 제가 기자 생활을 하며 현장에 있었던 70,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일부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2000년대 이후의 인물들은 어떻게 됩니까?

"2000년대 이후는 저 혼자 쓰기엔 좀 버겁습니다. 제가 전체적인 흐름은 알지만, 현장의 디테일은 지금 뛰고 있는 후배들이 훨씬 잘 알죠. 그래서 그 이후의 역사는 젊은 평론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거나 그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골든디스크 심사 때도 느꼈지만, 현역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트렌드를 읽어내는 걸 보면서 든든했습니다."

-원소스가 있어야 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현장을 직접 누벼온 선생님의 작업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AI가 빠르고 정확한 건 인정해요.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 특히 노래라는 건 음식으로 치면 '손맛'이 있는 거거든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요. AI는 데이터를 조합할 순 있어도, 가수가 가진 품성이나 살아온 역경에서 우러나오는 감동까지는 아직 전해주지 못한다고 봅니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눈을 맞추고, 발로 뛰며 찾아낸 이야기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어요."

-선생님께서 이미자 선생님의 2000여 곡을 직접 데이터베이스화하셨다는 일화가 대표적인 보기겠네요.

"예전에, 그러니까 2015년 이미자 선생님 55주년 특별전 할 때, 제가 엑셀로 그분의 2000여 곡을 전수 조사해서 정리했어요. 작곡가별, 시대별, 주제별로 다 분류했죠. 어떤 평론가가 '이 자료 어디서 검색했냐'고 묻길래 '내가 직접 다 입력하고 정리했다'고 하니 쉽게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더라고요. AI가 답을 내놓으려면 누군가는 그 기초 데이터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 힘든 작업을 저 역시 해온 거죠. 아르바이트생들하고 밤새워가며 음반 데이터베이스하고 스캔하고 녹음하고… 그런 '미련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성서.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1.2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원로 가수들을 재조명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원로 가수분들이 본인이 가수였다는 걸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았어요. 먹고살기 바쁘고, 딴따라라고 무시받던 시절을 겪었으니까요. 손석우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아니, 우리나라 가요에도 평론이 필요한가?'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평론의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 가요를 연구하고 평론한다는 게 기특하고 신기하다는 뜻이겠죠. 제가 그분들의 데뷔곡을 찾아드리고, 잊고 있던 기록을 정리해서 보여드리면 처음엔 부끄러워하다가 나중엔 정말 고마워하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내 역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그리고 그분들의 부고 기사에 제가 정리한 정확한 생애와 업적이 한 줄이라도 실릴 때, 빚을 갚는 기분이 들고 보람을 느낍니다."

-원로가수이자 가극배우인 원희옥 선생님의 자료를 보관하게 된 사연도 들었습니다.

"원희옥 선생님이 지금 90세신데, 정말 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밀양 연극촌에 기념관을 만드셨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그곳이 없어지게 되면서 갈 곳 잃은 자료들을 저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선생님이 가극단 시절 불렀던, 음반으로도 남아있지 않은 귀한 노래들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세요. 날이 좀 풀리면, 전문 촬영팀을 꾸려서 그 노래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둘 계획입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할 일이 아니라 대중음악사의 사료를 남기는 일이니까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작업이나 바람이 있다면요?

"제 간절한 바람은 제대로 된 '국립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생기는 겁니다. 일본은 자료 보존이 정말 잘 돼 있어요. 우리는 전쟁 통에,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자료가 유실됐습니다. 일본에는 우리 1920~30년대부터 가요의 원본 릴 테이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정작 우리는 복사본의 복사본을 듣고 있는 실정이죠. 개인이 수집하고 보존하는 건 한계가 분명합니다. K-팝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뿌리가 되는 자료들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전 성덕의 원조 격이 평론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문입니다만, 지금도 음악이 좋으신가요?

"(눈을 반짝이며) 너무 좋죠. 나이가 드니 음악이 저에게 에너지를 주고 위로를 줘요. 젊었을 땐 보다 새롭고 파격적인 음악을 찾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익숙한, 제 추억이 담긴 옛 노래들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가사 하나하나가 다 제 얘기 같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평론가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 좋은 걸 남들과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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