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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등록 2026.02.25 0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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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 감독 신작 '햄넷' 리뷰

[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햄넷'(2월25일 공개)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그의 대표작 <햄릿>을 다루고 있으나 셰익스피어나 <햄릿>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햄넷'은 이 위대한 극작가가 이룩한 예술적 성취나 수백년 넘게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 남긴 유산에는 관심이 없다. 이건 원천에 관한 영화다. 예술가와 예술이 태양을 머금어 푸르게 빛나는 잎이라면, 그들이 영광을 만끽할 수 있게 저 어둠 속에서 흙을 파고들어가며 양분을 쥐어짜내 떠받치고 지지하는 그 뿌리 말이다. 말하자면 '햄넷'은 광휘에 취해 헐떡이는 게 아니라 저류를 헤집어 가며 울부짖는다.

영국 작가 매기 오퍼렐이 2020년 내놓은 동명 소설을 클로이 자오 감독과 오퍼렐 작가가 공동각색해 만든 영화 '햄넷'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아내 아그네스(실제 이름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만 카메라가 담는 건 셰익스피어가 아닌 아그네스다(극 중 셰익스피어란 성이 언급되는 건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자오 감독은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종종 악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한 아그네스를 셰익스피어 비극의 근원으로 재정의하고, 나아가 이 무명의 존재를 예술의 토양으로 재정립해 신화화 된 예술가와 예술을 해체한다.
[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만약 '햄넷'을 <햄릿>이라는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비화(祕話) 정도로,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와 아그네스 사이엔 햄넷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그가 11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게 <햄릿>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는 건 이 영화를 절반만 본 것과 다름 없다.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은 두 번째 여성인 자오 감독은 마블슈퍼히어로영화를 만들 때조차 자신만의 화법과 시각을 관철했던 연출가다. 제작비 약 3000만 달러(약 430억원) 규모의 작은 영화로 돌아오자 그는 더 과감하게 자기 세계를 밀어붙인다.

기원(起源)은 자오 감독 필모그래피를 관통한다. '노매드랜드'는 삶의 바탕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밀려나와 인생의 진정한 근본을 찾아나선 이들의 이야기였고, '이터널스'는 슈퍼히어로를 통해 인류의 우주적 기원을 훑었다. 앞서 나온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나 '로데오 카우보이' 역시 뿌리를 찾아헤매는 이들에 관한 서사였다. 자오 감독은 '햄넷'에선 예술의 토대를 파고든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인간 중심 스토리텔링 예술의 원형. 소설 <햄넷>이 그 원형의 원형에 관한 얘기라는 점에서 어쩌면 자오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삶은 예술에 우선한다. 그리고 삶은 대체로 고통이다. 이게 '햄넷'의 콘셉트다. 다시 말해 삶은 숙주, 예술은 기생한다. 우린 종종 창작된 예술을 위대하다고 추어올리는 데 여념 없으면서 예술을 낳아 먹여 키운 진실한 삶의 가치에 관해 무념하다. '햄넷'에서 아그네스는 삶을 직면하며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물. 윌리엄은 자기 마음 하나조차 다스리는 법을 알지 못해 매번 달아난다. 그래서 자오 감독은 윌리엄의 창작 과정 따위엔 관심이 없고, 아그네스의 고민과 상처와 진통과 화를 러닝타임 126분간 새겨넣는다. 삶을 이기는 예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원작 소설이 아그네스의 마음을 공들인 언어로 풀어낸다면 당연하게도 영화는 그 내면과 존재 의미를 철저히 이미지로 함축해 담아낸다. 아그네스가 숲 속 거대한 나무 뿌리 끝에 똬리를 튼 듯 잠들어 있는 모습이 담긴 오프닝 시퀀스는 그를 가이아적 존재로 여기는 명백한 상징. 카메라는 그의 흙 묻은 얼굴과 손을 반복해서 비추는 것과 동시에 아그네스의 출산과 상실 역시 그의 육체로 노골화한다. 직관의 아그네스와 언어의 윌리엄을 대조하고, 본능의 아그네스와 이성의 윌리엄을 견주며, 붉은 아그네스와 하얀 윌리엄을 대비한다.
[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오퍼렐 작가의 고도화한 언어를 '햄넷'은 극한으로 몰아붙인 배우의 연기로 스크린에 현현한다. 제시 버클리는 아그네스의 끓어오르는 비탄과 휘감아 떠날 줄 모르는 애수를 때로는 폭발할 듯한 괴성으로, 때론 초점 잃은 눈빛과 꾹 다문 입으로 품는다. 예술의 본바탕을 탐구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꾸며내고 흉내 내는 것을 넘어선 예술이어야 하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반드시 삶의 진실을 담아낸 연기를 해내야 한다는 의무를 온전히 짊어졌다는 점에서 버클리의 열연은 오스카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햄넷'은 삶이 예술에 앞서 존재한다고 얘기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예술이 무용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때론 너무 가차없어서 폐허가 되기도 하며 그래서 재건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삶을 위무하기 위해 예술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혹은 존재해야 한다고 자오 감독은 주장한다. 어쩌면 생(生)을 살아내는 방식 역시 주어진 운명일 뿐이니까. 누군가는 온통 겪어내야 하지만 누군가는 짊어지고 심연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저 아득한 구렁텅이에서 가까스로 길어올린 언어로 살아남은 자들을 달래고 어루만진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클로즈업 필름]삶이 낳아 예술이 위무하네 '햄넷'


그렇다면 오프닝 시퀀스에 뿌리처럼 잠든 아그네스 옆에서 목격된 동굴의 칠흑 속엔 어쩌면 윌리엄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는 아그네스의 숲에서 바로 그 동굴 안으로 기어코 들어가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 윌리엄은 자신의 연극을, 자신의 재능을 삶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데 낭비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이 잃어버린 것들을 잠시나마 무대 위에 부활시키는 일에 전력한다. 이때 윌리엄은 '쓸모 없는 놈(useless)'에서 비로소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면서 아그네스는 아들의 이름을 참칭하던 저 가짜 햄릿에게서 진짜 아들 햄넷을 본다.

윌리엄을 맡은 폴 메스칼은 올해 미국아카데미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가 후보 지명되고 수상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연기를 했다. 버클리가 뜨겁다면 메스칼은 차갑고, 버클리가 타오른다면 메스칼은 녹아내리며, 버클리가 분출한다면 메스칼은 침잠한다. 사실상 데뷔작이었던 '애프터썬'(2022)에 이어 3년만에 새로운 대표작을 갖게 된 1996년생 메스칼은 동년배인 티모시 샬라메와 전혀 다른 이미지와 연기 스타일로 그 세대를 상징하는 또 다른 배우가 되고 말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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