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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위에 얹은 현대적 유머와 기예, 살아있는 유희로 되살아난 '광대' [객석에서]

등록 2026.05.01 13:00:00수정 2026.05.01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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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협률사 무대의 재해석

기예·재담 결합해 대중성 확보

사물놀이·궁중음악 어우른 구성

국립정동극장 ‘광대’ 30일까지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오방신과 백년광대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 단원들이 혼비백산 흩어지고 순백은 기절한다. "뽀뽀 하지마!" 악몽을 꾼 듯 기겁하며 눈을 뜬 예술단장 순백의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2026년 정기공연 '광대'가 무대에서 펼쳐졌다. 1902년 협률사의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戲)를 복원하는 리허설 중 정전이 발생하며 과거의 광대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설정이다.

조선시대 광대는 판소리, 춤, 곡예, 재담을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전천후 연희자였다. 124년 전 광대의 공연이 세대와 신분을 막론하고 대중적이었던 것처럼, 2026년 부활한 '광대' 역시 화려한 볼거리와 현대적 유머를 배치해 진입 장벽을 확 낮췄다.

"요새 관객이 더 귀신이에요"라는 광대의 대사부터,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아이를 향해 순백이 "경복궁 무료 입장하려고 한복을 입었나?"라고 중얼거리는 독백까지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아이와 순백이 120년 전으로 돌아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국립공연장인 협률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극장을 수호해 온 오방신(성주신, 터주신, 조왕신, 문왕신, 업왕신)이 사물놀이 판을 벌이자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오방신이 손에 든 것은 북, 꽹과리, 장구, 징과 같은 전통 타악기만이 아니다. 이들은 금속판 두 개를 부딪쳐 날카로운 파찰음을 내고 번쩍이는 궁중 악기 '자바라(바라)'까지 투입해 타악 퍼포먼스의 쾌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궁중음악(영산회상, 서도풍류 등)과 민속음악(시나위, 판소리, 민요 등)을 한데 버무려 전통무와 창작무의 흐름을 이은 것이다.

광대들의 버나 돌리기는 물론, 농악대원의 상모에 달린 종이를 활용한 '초리춤'은 서커스를 보는 듯한 시각적 쾌감을 준다. 순백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라며 춘향전의 '사랑가' 한 곡조를 뽑고,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부터 화관무와 타악기 '아박'을 들고 추는 궁중무용 아박무, 선비의 한량무에 이르기까지 '광대'는 전통 연희의 다채로운 요소를 한 무대에 집약했다."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한 세기 전 관객과 호흡하던 연희의 생명력은 현대적 연출과 만나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를 보여준다. 검은 바탕에 백색 족자를 활용한 모던한 무대와 전통 건축 처마의 곡선, 기와의 리듬, 항아리 형태 등을 재해석한 오방신 의상은 한 편의 '한국식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자칫 화려한 볼거리 나열에 매몰될 수 있는 극의 중심을 잡는 것은 묵직한 서사다. 극을 이끄는 단장 순백 역에 남녀 소리꾼을 기용해 창자의 성별 경계를 지워냈다. 순백 역은 재담과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가진 소리꾼 이상화와 창작 판소리의 주자 박인혜, 그리고 강현영 세명이 맡는다. 또한 "혹시 실수할까 봐", "시대에 뒤처질까 봐" 무대와 관객을 두려워하던 현대의 예술가 순백이 정체불명의 아이를 만나 진정한 예인 정신을 깨닫는 과정은, 시대와 성별을 초월한 '광대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극 후반, 정체불명의 아이가 근대 오명창으로 꼽히는 이동백 명창의 노년 시절로 변해 '새타령'을 부르는 흑백 영상이 흐르며 여운을 남긴다. 이동백은 고종을 매료시켜 어전에서 소리를 하고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까지 제수받았던 당대 최고의 소리꾼이다.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서울=뉴시스]전통연희극 '광대' 공연 장면.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광대라 하는 것은 어디든 놀데가 무대, 줄이나 장대나 공터나 장터나 마당이나 놀기만 하면 좋지. 광대라 하는 것은 감동을 주어야 광대. 때로는 구성진 소리로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잘난 체하며 놀아보자." ('광대' 합창 가사 중)

객석은 공연 내내 무대와 호흡했다.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관객과 소통하는 살아있는 유희. '재미'와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광대'는 장기 상설 레퍼토리로 안착할 자격을 증명했다.

올해 공연 회차를 50회로 대폭 늘린 '광대'는 오는 30일까지 정동극장에서 펼쳐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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