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은 만민 희생의 결과…노인·아동·장애인 독립운동가
등록 2026.08.15 10:00:00
시각장애 심영식, 독립만세운동 참여
65세 강우규, 사형 순간까지도 '의연'
13세 안정명, 만세운동 중 총탄 피살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형태극기 앞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2026.08.14. kch052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4/NISI20260814_0021399447_web.jpg?rnd=20260814143744)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1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형태극기 앞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2026.08.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현대 사회에서 취약계층이자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노인과 아동, 장애인들도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며 독립을 위한 여정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15일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등을 보면 독립유공자 심영식(세례명 심명철) 지사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1919년 3월 3일 당시 개성군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독립만세 행진을 하다가 붙잡혀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일제 고문에 의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된 유공자들도 있다. 독립운동진정서를 작성하고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며 서로군정서를 조직한 김창숙 지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일제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았으며 독립 후에는 성균관 재건에 힘써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상재 지사는 한 쪽 청력이 비장애인에 비해 약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며 민족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황성기독청년회 총무를 맡아 기독교 사회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고 조선교육협회장을 맡아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조선총연맹 초대 총재, 흥업구락부 초대 회장, 조선일보사 사장, 신간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던진 독립운동가도 있다. 강우규 지사는 1855년생으로 3·1운동에 호응해 민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으며 노인동맹단 소속으로 조선총독 폭살을 시도했다.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한국민이 원해서 합방이 이뤄졌다고 한 일제의 주장을 전 세계에 반박하는 증거가 됐다. 65세인 1920년에 사형이 집행됐으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1827년생인 이면주 지사는 승정원 승지로서 을사오적을 참할 것을 상소했다. 1910년 9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해 나라가 망하자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 이 때 나이는 만 83세였다. 1832년생인 유도발 지사·정두흠 지사·공치봉 지사 역시 같은 해에 스스로 순국했다.
1827년생으로 좌의정을 지냈던 조병세 지사는 을사조약을 폐기하고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여러번 상소했다. 일본헌병주재소에 구속됐다가 석방된 후 다시 상소운동을 전개하려고 했으나 가족이 강제로 끌려가자 고종황제와 국민에게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그의 유서는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졌고 국권회복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30년에 태어난 최우순 지사는 경술국치 이후 마을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던 중 1911년 일본에서 전국 유림을 회유하기 위해 내린 돈을 받지 않고 독약을 마셔 자결했다.
아동청소년 역시 독립 운동에 힘을 보탰다. 안정명 지사는 13세 나이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이 발포한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
동풍신 지사는 1919년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는데 아버지가 현장에서 순국하자 시체를 부둥켜 안고 통곡한 후 다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일본 헌병 발포로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군중들이 동풍신 지사를 보고 다시 시위에 참가했다고 한다. 일제의 고문 등에 의해 17세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했는데 사람들은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라고 칭송했다.
김정룡 지사는 중국 봉천성 안도현 내도산에서 광복단 지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일본군 습격을 받아 체포된 후 한국 나이로 15세에 순국했다. 김영균 지사는 요녕성 본계현에서 독립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일제 사주를 받은 중국 보갑단에 의해 피살됐다.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고덕봉 지사는 3·1운동 기운이 중국 간도 지방으로 확대되자 17세 나이로 북간도 용정시에서 독립신분 배부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를 확대하려다 좌절되자 자결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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