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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흙 속에서 1600년 버텼는데…세상 밖 나온 백제 나무 물탱크의 운명

등록 2026.09.06 08:00:00수정 2026.09.06 08:15:51

지하수·흙이 산소 적은 환경 만들어 부패 늦춰

발굴로 공기 노출되면 훼손 위험…수분 유지하며 조사

자연이 지켜온 원형, 땅 밖에선 보존과학이 이어받아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구조 모식도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구조 모식도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충북 충주 장미산성에서 약 1600년 전 백제 사람들이 사용한 대형 나무 물탱크가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7m 길이의 통나무를 9단으로 쌓아 만든 목조 집수지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가 2022년 성벽의 문을 찾기 위해 시작한 발굴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삼태기와 소코뚜레, 국내 최초로 나무 손잡이가 그대로 남은 철제 도끼 등 백제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 잇따라 나왔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목조 집수지다. 쉽게 썩는 나무가 어떻게 1600년 가까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지만 보존과학적으로 이 나무의 부패가 멈춘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아주 느린 속도로 썩어왔을 뿐이다.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사용과 중단을 보여주는 층위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 사용과 중단을 보여주는 층위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email protected]


나무를 지킨 물과 흙

집수지를 지킨 것은 역설적으로 나무를 둘러싼 물과 흙이었다.

장미산성 집수지는 지하수가 솟아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목재를 뒤덮은 물과 미세한 퇴적물은 산소가 적은 환경을 만들었고, 목재를 분해하는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해 부패 속도를 늦췄다.

경주 월성 해자 발굴에 참여했던 남태광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고환경연구팀장은 "음식을 놔두면 그냥 썩어서 없어지는 것처럼 목재도 보통 미생물에 의해 부후된다"며 "지금도 썩고 있는데 혐기성 환경에 속도가 늦어지니까 지금까지 형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장미산성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뻘층이나 해자·저수지 같은 저습지에서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 만들어져 목재 등 유기물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무덤을 석회로 밀봉한 회곽묘처럼 외부 산소가 차단된 경우에도 유사한 보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집수지의 목재에 스며든 물도 형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현장 공개 당시 최관호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수침 고목재인데 보존 상태가 좋은 이유는 솟아오르는 물과 미세 퇴적물, 그리고 쌓여있던 흙"이라며 "집수지 내 물을 퍼내지 않으면, 최소 반 정도 수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나무를 분해하는 자연이 특수한 조건에서는 오히려 그 속도를 늦춰 유물을 지켜준 셈이다. 덕분에 1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7m에 달하는 통나무를 일정한 비율로 다듬고 쌓아 올린 백제인의 토목·건축 기술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서울=뉴시스] 장미산성 출토 삼태기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9.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장미산성 출토 삼태기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9.01. [email protected]


땅 밖으로 나온 순간, 사람이 지킨다

자연이 지킨 유물을 다시 불러내는 일은 훼손 위험을 안고 가야 한다. 이번 장미산성 성과는 고고학계가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다. 광주 신창동 유적, 경주 월성 해자, 대구 팔거산성 목곽 집수지 등이다.

최 연구원은 "'유구가 망가지면 안 된다'가 첫 과제였다"며 "지난해 겨울 열심히 고민해서 발굴지에 지붕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또 발굴 당시 목조 집수지 수분을 유지하게 하려 노력했다.

남 팀장은 "발굴하며 드러나 산소와 맞닿는 부분은 비닐 등으로 계속해서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관리해 주며 조사를 하게 된다"며 "현장 보존이라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특히 집수지 인근에서 발굴된 코뚜레 등 목재 유물의 경우 물로 세척 후에 과학적 분석을 시행하고 보존처리에 나선다.

물 대신 약품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치수 안정화'를 하고, 냉동동결 건조에 나서는 식이다.

다만 나무 종류에 따라 약품 종류와 적용 강도, 건조 시기 등이 달라진다. 유물 상태도 중요하다. 삼태기의 경우 내부 흙을 파내면 원형을 유지할 수 없어 약품 처리 후 흙 자체를 함께 굳히기로 판단했다.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성내 부뚜막 시설 및 유물 출토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9.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성내 부뚜막 시설 및 유물 출토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9.01. [email protected]


자연의 역할을 대신한다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는 취약한 매장유산을 지키는 건 꺼낸 시대의 몫이다. 박물관이나 연구소에서 보존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남 팀장은 "유물이 처음 나왔을 때 '아, 이거 예쁘게 잘 남아있네'하고 밖에 내놓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면 말라비틀어져 다음날 없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스펀지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나 습한 유적에서 나온 목재는 수분을 유지하지 않으면 가루로 변한다. 그 종류는 칠기, 목간, 목곽고(나무 창고), 방패 등 다양하다. 이는 그만큼 다양한 보존과학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건상 모든 유물을 보존처리를 거쳐 전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영국 등 해외에서는 발굴 유산의 분석을 한 후 미래세대의 몫으로 현장에 재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1600년 전의 유물이 현대에 던진 과제도 있다. 먼저 공들여 만든 집수지를 얼마나 사용했고, 누군가 왜 흙으로 덮은 건지, 제작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지, 집수지에 사용된 수종이 다른 까닭은 무엇인지 등을 밝혀내야 한다. 또 인근에서 발견된 생활유물들이 다른 곳에서 떠내려온 것인지 등을 연구해야 한다.

이보람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이번 발굴조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이번 성과는 다른 연구소 등 관계기관이 함께 집단지성을 모아준 덕분"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출토 유물로 보는 백제인 생활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충주 장미산성 출토 유물로 보는 백제인 생활 (사진=6차 발굴조사 성과자료집 갈무리) 2026.09.01.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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