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9人이 응시한 H.O.T. 데뷔 30주년
등록 2026.09.06 06:03:46
시스템의 첫 획을 긋고 스스로 창작의 주체가 되다
5인조 포지셔닝·흰색 팬덤·한류의 시초
평론가들이 뽑은 대표 음반과 대표곡…'늑대와양'·'캔디' 등
![[서울=뉴시스] H.O.T. (사진 = 솔트 이노베이션 제공) 2026.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146_web.jpg?rnd=20260905161549)
[서울=뉴시스] H.O.T. (사진 = 솔트 이노베이션 제공)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데뷔 30주년을 맞은 H.O.T.를 일제히 호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퇴장한 가요계의 공백 위에 선 이들은 '기획된 피조물'이라는 안팎의 편견을 딛고 스스로 창작의 주체로 도약하며, 현세대 K-팝이 호흡하는 주요 문법의 시원을 닦아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과 입시 지옥의 세태를 직격한 거친 힙합 비트의 '전사의 후예'와 유아적 키치와 달콤한 멜로디로 신드롬을 일으킨 '캔디(Candy)'의 공존은, 아이돌 팝이 사회적 분노와 대중적 환상을 한 그릇에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일격이었다.
이들의 발걸음은 록과 클래식, 비장미 넘치는 군무를 결합한 'SM 퍼포먼스(SMP)'의 전형을 정립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3집 '레저렉션(Resurrection)'을 기점으로 자작곡을 확장하고 4집 '아이야!(I yah!)'와 5집 '아웃사이드 캐슬(Outside Castle)'에 이르러 전곡을 자급자족하는 과정은, '아이돌이 어떻게 아티스트로 성장하는가'에 대한 K-팝 특유의 성장 서사를 처음으로 완성해 낸 순간이었다. 10대를 문화의 변방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주체로 끌어올리고 중국 시장을 흔들며 '한류(韓流)'라는 단어의 씨앗을 뿌린 찬란한 성취 이면에는, 가요계 전체가 아이돌 중심으로 급격히 편중되며 생태계의 다양성을 좁혔다는 냉정한 평가도 공존한다.
3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하얀 풍선은 무선 제어 응원봉으로, 10대 소녀들은 어느덧 자녀의 손을 잡은 학부모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이들이 세운 유산은 여전히 K팝의 지층 아래 맥박 치고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9인이 H.O.T.가 남긴 30년의 궤적을 짚으며 산업적 원형, 음악적 도약, 대표 음반과 노래 그리고 이들이 축조한 세계의 빛과 그늘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김성환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
김윤미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1996년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상징적인 해이다. 1992년 데뷔와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1월 31일 충격적인 은퇴선언을 한 후 7개월여만에 K-팝 아이돌의 원형이자 '1세대' 대표주자인 'H.O.T.'가 데뷔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사라지고 나타난 이 두 팀의 흥미로운 연결고리로는, '컴백홈'과 '캔디'라는 상반된 두 곡의 무대의상을 스타일링한 코디네이터 고경민(현 제작자 겸 공연기획자)의 존재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핵심 매니저들이 초기 SM기획 출신이었던 점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돌그룹 형태와는 거리가 있음에도 K-팝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그들은 1020세대 중심의 충성도 높은 거대 팬덤의 절대적 지지속에서 청(소)년들이 공감하는 음악과 메시지로 소통했다. 여기에 메인 보컬(래퍼)+메인 댄서의 조합, 테크노-힙합-록-발라드 등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하이브리드 사운드에 보컬-랩-댄스브레이크가 결합된 댄스뮤직의 형태, (특히 1020에게 부조리한) 시대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메시지, 초상권 개념의 도입과 자체 굿즈의 개발 등 K-아이돌에 표본이 될 만한 기본 요소들을 이미 한 세대 전에 확립하고 실행했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자리에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Hi-five of Teenagers)'라는 이름으로 아예 10대들로만 구성된 그룹 H.O.T.가 등장했다. K-팝 아이돌 시스템의 원형, 아울러 K-팝 팬덤의 원형. 이는 오디션 등을 통한 캐스팅과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 정교한 퍼포먼스, 음악-안무-패션-비주얼(MV)의 패키징 콘셉트, 멤버 별 캐릭터 및 세계관 구축, 팬덤의 조직화, 공식 컬러와 응원도구-굿즈, 글로벌 차원으로의 연결-확산 등으로 설명된다. 물론 지금의 5세대는 1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체계화되고 글로벌 영향력과 위상도 커졌지만, 현재의 K-팝 아이돌 시스템 및 팬덤의 원형은 H.O.T. 시대에 만들어졌다. 상징적으로, '한류'라는 단어(물론 음악만이 아닌, 문화-예술-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의미로 확장됐지만) 역시 H.O.T.의 중국 진출과 현지에서의 화제성 때문에 탄생한 신조어였다.
▲최고의 노래 & 최고의 음반
'최고의'라는 수식어에는, 어쨌든 개인적 취향이 담길 수밖에 없고, 또 '최고의' 대중적 히트곡일수도, 또 소위 '숨듣명' 식의 덜 알려진 그러나 음악적 성취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곡일 수도 있다. 그런데 뽑고 보니 '뻔한 메가 히트곡'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선정한 H.O.T. 최고의 노래는 여전히 캔디다. H.O.T. 하면 가장 먼저, 강렬히, 강력하게 떠오르는 이 곡은, 그래서 여러 후배 아이돌의 단골 커버 레퍼토리이기도 하고, 실제로 H.O.T.의 까마득한 소속사 후배 NCT 드림이 트렌디하게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존재감이 약해지기는커녕 스프링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곡. 더하여 언급하고 싶은 곡은, H.O.T.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면서 초기 SMP의 가장 확실한 표본 '위 아 더 퓨처', 그리고 막내 이재원의 패기 넘치는 도발(!) '유 갓 건?(You Got Gun?)'이다. 최고의 앨범’은 2집 '늑대와 양(Wolf and Sheep)'(1997)과 3집 '레저렉션'의 경합이다. 최고에 좀 더 가까운 것은 2집,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3집이다. 구성 면에서 탁월한 것은 2집에서 '늑대와 양'-'위 아 더 퓨처'-'행복'-'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너와 나'에 이르기까지 H.O.T.의 다채로운 개성과 매력이 다양한 장르로 잘 구현되고 있는 점이다. 3집은 멤버들의 음악적 참여 비중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분기점이 되는 앨범이다. 이후 4집, 5집에서는 멤버들의 색깔이 더 잘 드러나며 더욱 무겁고 비장하며 거칠게 발산된다. '빛'과 '열맞춰!'의 극적 대비 속에 개인적으론 앞서 언급한 '유 갓 건?'으로 기억되는 앨범이다.
![[서울=뉴시스] H.O.T. (사진 = 토니안 인스타그램 캡처) 2026.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147_web.jpg?rnd=20260905161622)
[서울=뉴시스] H.O.T. (사진 = 토니안 인스타그램 캡처)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
한국 최초의 아이돌 그룹으로, 향후 등장하는 모든 K-pop 아이돌 그룹의 전형을 제시한 그룹. H.O.T. 이전에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 80년대에는 소방차 등 큰 인기를 얻었던 남성 그룹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데뷔 이전 음악인이나 댄스 팀 등으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H.O.T.는 프로로서 아무런 경력이 없던 일반인이 연습생 신분으로 기획사에 들어가, 기획사의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관리 과정을 거쳐 가수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현재 '아이돌'의 정의에 걸맞는 최초의 그룹이었다. 또한 5인의 멤버가 메보와 서브보컬, 춤 담당, 랩 담당, 막내, 대중형 멤버와 '덕후 몰이형' 멤버, 예능감 출중한 멤버, 언변 뛰어난 멤버 등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는 점에서, 1세대는 물론 지금의 4세대·5세대까지 이어지는 K-팝 아이돌 그룹 구성 방식의 모범을 제시했다. 이들의 성공 이후 젝스키스, god, 신화 등의 후배 보이 그룹과 S.E.S., 핑클 등의 걸그룹이 잇달아 등장하여 큰 성공을 거뒀으며, 중국 등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K-팝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널리 쓰이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의 음악적 정점과 디스코그래피 평가
하나의 앨범에서 강렬한 사운드와 사회 비판적 가사가 어우러진 파워풀한 음악('전사의 후예', '늑대와 양', '위 아 더 퓨처', '아이야' 등)과 밝고 달콤하며 대중적인 음악('캔디', '행복', '빛' 등)을 같이 들려주며 다양한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 H.O.T.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처음에는 전문 작곡가의 곡을 스튜디오와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커리어 후반기로 오며 조금씩 자신들의 색채를 집어 넣는 등 음악인으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추천곡은 ①'캔디' = H.O.T.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곡이자 단순한 아이돌 그룹을 너머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게 한 곡 ②'위 아 더 퓨처' = 강렬한 전자 댄스음악 사운드와 화려하고 인상적인 안무, 당시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메시지를 담은 가사와 뮤직비디오가 어우러진 H.O.T.의 대표곡. ③'우리들의 맹세' = 현재 K-팝에서는 자주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일반적이지 않았던 '팬 송'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곡.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H.O.T의 성공 이후 가요계가 급속도로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됐다.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시장이었기에 제작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고, 이후의 치열한 경쟁과 차별화 속에서 케이팝의 음악, 비주얼, 전략이 비약적으로 정교해졌다. 글로벌 무대로 도약한 K-팝 현상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요계를 이전과 이후로 나눈 커다란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수익성 큰 아이돌 제작에만 과도하게 몰두하면서 가요계의 다양성이 크게 좁아지는 부작용 역시 낳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동시대 K-팝과의 유산 측면 해석 등에 대해서
H.O.T로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중현의 록까지 언급해야 한다. 그렇게 길고 긴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요계의 중심은 잠깐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아이돌이었다. 덕분에 한국은 누구보다 아이돌을 잘 만드는 나라가 됐고, 그것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한 방향으로만 비대해진 화려한 성장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서울=뉴시스] H.O.T. (사진 = MBC TV '무한도전' 제공) 2026.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148_web.jpg?rnd=20260905161658)
[서울=뉴시스] H.O.T. (사진 = MBC TV '무한도전' 제공)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아림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최초'와 '최다'란 단어만큼 H.O.T.를 잘 보여주는 단어가 있을까. 각종 수상과 앨범 판매량뿐만 아니라, 유료 팬클럽의 운영, 국내 가수로서 올림픽주경기장에서의 단독 공연 등, 이들은 최초와 최다의 기록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재를 다룬 음악을 바탕으로 H.O.T.는 패션과 식품, 문구류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유행을 주도하며 문화 외에도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으로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이것이 전방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현대사적 의미가 있다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들이 작금의 K-팝 아이돌 산업과 '한류'의 기원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마다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그룹의 콘셉트를 앞세우는 기획이나 팬클럽 창단, 해외 진출 등의 활동 방식은 이제 K-팝의 문법과도 같다. 이 모든 것의 선발주자였던 H.O.T.는 시스템의 토대를 세웠다는 점에 있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사적으로도 유의미한 아티스트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음악적 정점과 디스코그래피 평가
H.O.T. 이전에도 가창에 안무를 곁들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거나,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친 아티스트는 있었다. 하지만 H.O.T.는 그 모두를 아우르며 독자성을 구축했다. 이들의 대표곡으로 데뷔 타이틀 '전사의 후예(폭력시대)'(1996)가 떠오르는 건,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의성을 더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힙합 베이스의 댄스 장르를 택하며 침잠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칭 SMP의 시초이기도 한 곡은 강렬하고도 저돌적인 인상을 드러내는 동시, 거친 랩과 칼군무를 선보이며 앨범의 특색과 그룹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 토대로 사운드의 퀄리티까지 더해진 정규 2집 '늑대와 양'(1997)은 그룹의 정수를 담은 명반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타이틀 '늑대와 양'처럼 기존의 특색을 이어가면서도 장르 및 정서의 폭이 확장돼 멤버들의 역량과 매력이 고루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팬송의 수록까지, 가장 정돈된 형태의 H.O.T.다운 앨범 아닐까."
▲30년이 지난 지금, 동시대 K-팝과의 유산 측면 해석 등
1세대 아이돌인 H.O.T.가 30주년을 맞는 동안, 어느덧 K-팝은 5세대를 언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태를 노골적으로 꼬집고, 메시지 전달에 목적을 둔 아이돌 음악은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H.O.T.가 시도한 것 중에는 현시점의 K-팝과 비교할 때, 여전하거나 유사한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유료 팬클럽의 창단과 그로 인한 유대감 상승, 가수 자체의 상품화로 다양한 MD가 제작 및 판매된다는 것이 있다. 이는 캐릭터 상품부터 사진엽서, 티셔츠 등의 형태는 현재까지도 유구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주춤하고 있지만, 이들이 내세웠던 SF콘셉트는 여러 아이돌 그룹들의 '세계관 구축'으로 이어지며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독특한 콘셉트와 기획은 그룹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멤버별로 고유한 색과 숫자를 부여하던 방식은 성격을 통한 캐릭터화로 변모했다. 이런 측면에서 2026년의 K-팝은 H.O.T.가 남긴 족적을 따라 꽃피운 산물이다.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서울=뉴시스] H.O.T.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5/NISI20260905_0002231010_web.jpg?rnd=20260905103418)
[서울=뉴시스] H.O.T.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최승인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이들의 활약은 현재 K-팝이 지향하는 포맷의 원형을 구축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회사 주도의 다인원 구성, 모두가 아니더라도 한 명쯤은 응원하게 만드는 캐릭터 중심의 포지셔닝, 주 타깃인 10대의 고민과 정서를 대변하는 노랫말과 스타일링, 나아가 음악을 넘어 예능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대중과 친숙함을 쌓아가는 프로모션 방식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을 사실상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더불어 아이돌의 진화 가능성을 일찌감치 시험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3집부터 수록곡 대부분을 멤버들이 직접 만들었고, 5집에 이르러서는 타이틀곡까지 자급자족하는 등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이유로 따라붙었던 여러 비판과 한계를 넘어 온전한 아티스트로 인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시도는 훗날 자신의 음악과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이 등장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음악적 정점과 디스코그래피 평가
①음반 = 5집 : 멤버들의 작업물만으로도 충분히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 특히 강타와 문희준은 이 시기를 거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을 확실히 각인시켰고, 이후 솔로 활동으로 이어질 발판 역시 착실히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②'아이야!' :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원전 그대로 삽입하는 과감한 시도가,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절실함과 비장함을 한층 설득력 있게 빚어낸 트랙. 강렬한 사운드와 비주얼을 앞세워 당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자 했던 이들의 야심과 의지가 가장 선명하게 번뜩이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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