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파도 건너 일상으로…정직한 나르시시스트의 '침로 지키는 항해'
등록 2026.09.08 18:51:09
오늘 정규 15집 '시즈 더 데이' 발매
김광석과 직장암 투병의 굽이 지나 띄우는 생의 안부
"아티스트는 정직한 항해자…상처 소진 대신 평범한 오늘을 지키는 일"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연남스페이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6.09.08.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8/NISI20260908_0002233761_web.jpg?rnd=20260908175416)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연남스페이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6.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환갑을 막 넘긴 싱어송라이터 안치환(61)은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스페이스에서 열린 정규 15집 '시즈 더 데이(seize the day)' 쇼케이스에서 한껏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거친 언어로 사회의 위선과 적폐를 직격했던 14집 '인간계' 이후 11개월 만의 귀환이다. 분노와 절규로 점철됐던 전작의 풍경을 뒤로하고, 그는 현재를 온전히 붙잡으라는 라틴어 격언 '카르페 디엠'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이날 발매된 앨범에 실린 안치환 노래들의 결은 확연히 이전과 달랐다. 투쟁과 저항의 언어 대신 '티비 리모컨', '생일 축하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처럼 평범한 일상의 표정들이 빼곡했다.
그는 "일상과 시대를 굳이 나눠 노래하진 않는다"라면서도 "세상이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반응으로 넘쳐나는 지금, 아티스트는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견딜 수 있다"고 털어놨다. 즉자적인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자 태도의 변화다.
그의 시선이 '일상의 소중함'으로 기운 배경에는 굴곡진 삶의 궤적이 짙게 배어 있다. 40여 년 음악 인생에서 그가 꼽은 가장 큰 변곡점은 동료 고(故) 김광석의 죽음과 2014년 겪은 직장암 투병이었다.
"김광석이 떠났을 때 너무 후회했어요. 조금 더 가까이 있어 줄 걸. 음악을 같이 하다가 한 사람이 뜨면 세상은 축하해 주는 것 같아도 사실 그 자리는 너무 외롭거든요. 그 외로움을 잘 관리하지 못했던 친구를 보며, 전 나중에 유명해졌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히려 단호하고 냉정하게 끊어냈습니다. 암 투병을 거치고 나서는 '나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자'고 다짐했죠. 먹는 것, 입는 것부터 나를 찌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요."
과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부인 김건희 여사를 풍자했다는 시비에도 휩싸이는 등 싱어송라이터로서 겪은 세상의 거친 프레임도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순수한 분노가 정치적 진영 논리로 소비되는 난타전을 겪은 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남은 생의 버킷리스트를 채워가며 내면의 뜰을 다듬었다.
사회적 발언에 대한 태도 역시 깊어졌다. 국가적 혼란과 비상사태를 거쳐 온 시대를 돌아보며 그는 "내란의 주범들은 감옥에 가 있지만,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하는 평화는 거창한 담론이 아닌 생활의 영역으로 내려앉았다.
"평화는 거대한 조국의 평화 이전에 '내가 열심히 일하고 살 테니 나 좀 방해하지 말아줘' 하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국가 폭력 없이 내 일상을 지키는 것이죠. 이제는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으쌰으쌰', '토닥토닥' 해줄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한 때입니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연남스페이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6.09.08.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9/08/NISI20260908_0002233759_web.jpg?rnd=20260908175359)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연남스페이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6.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에 나란히 선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보며 역사적 아픔 너머의 정취를 노래한 '동주와 지용 인 교토(in Kyoto)', 자전거를 타고 가다 흥얼거린 낭만을 담은 '이방인의 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마주한 슬픔과 죽음을 응시한 '엄마이별', '메멘토 모리'까지 15곡의 트랙은 삶의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
자전거 탄 풍경의 송봉주가 선물한 타이틀곡 '나는 오늘만 산다'에 대해 그는 "음원 플랫폼 관계자로부터 '이 나이에 앨범을 내는 건 홍보도 안 되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 자체가 지닌 고유한 힘을 믿는다"며 겸손하게 이 곡을 앞세웠다.
안치환은 대학시절 노래패 '울림터'를 시작으로 1986년 노래모임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쳐 1989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았다.
2014년 직장암 투병 이후 회복한 안치환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녹인 '불현듯 지는 꽃잎을 보며 떠오른 얼굴들', 박근혜 정권에 대해 분노한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같은 노래를 통해 진보 뮤지션으로 분류돼 왔다. 그런 안치환은 예술가와 연예인의 경계를 묻는 말에 그는 항해의 언어를 빌려 답했다.
"세상에 연예인만큼 나르시시스트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존재가 바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한 나르시시스트'죠. 어떤 비바람이 불고 조류가 밀려와도 자기가 정한 침로(針路)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항해자. 나를 팔아 집안 구석구석을 다 보여주며 모든 걸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 길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고통의 시대를 건너며 얻는 최종의 윤리는 종종 가장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결단으로 수렴된다. 상처를 전시하거나 시대의 격랑에 자기를 소진하는 대신, 파도를 견뎌낸 자리에 남은 사소한 밥벌이와 계절의 변화, 곁에 있는 이들의 안부를 단정하게 묻는 일. 60대에 접어든 저항 가객이 쥐어든 침로는 결국 삶 그 자체라는 잔잔한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안치환은 오는 18~19일 연남스페이스에서 단독 콘서트 '가을을 노래하다'를 열고 관객들과 마주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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