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갈 곳 없어 흩어진다"…겨울철 철거 앞둔 쓸쓸한 쪽방촌

등록 2026.11.01 07:00:00

임시거주시설 밖 주민들 흩어져…"오른 월세도 부담"

철거로 상가·가게 떠난 자리에 빈 가게와 고양이만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10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골목. 2026.10.22.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10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골목. 2026.10.22.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항섭 기자, 이은서 인턴기자 = 상강을 하루 앞두고 경기와 인천에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입구에는 인기척이 드물었다. 골목 곳곳에는 옷가지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문마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해당 건물은 본 사업 진행에 따라 보상이 완료됐다'며 승인 없이 출입하거나 시건장치를 파손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 하단 구멍 안쪽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골목 곳곳에서도 길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떠난 건 주민만이 아니었다. 한 철문에는 지난해 7월 붙은 '요셉의원 서울역 이전 안내문'이 남아 있었다. 안내문은 영등포 쪽방촌 개발로 의원이 서울역 인근으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인근을 지나던 한 주민은 "가장 큰 상가 건물이 최근 철거됐다"고 말했다.

고가차도 아래 공영화장실 앞에서는 노숙인들이 해진 이불과 담요, 파지 더미 위에서 낮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소주병과 종이컵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의 한 철문에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의 한 철문에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골목 안쪽에서 만난 정은혜(72·여)씨는 철물점 운영을 접고 가게를 개조해 살고 있었다. 3평 남짓한 공간에는 보일러가 없어, 이불과 조끼를 껴입고 지낸다고 했다. 바로 옆에서 슈퍼를 하던 이웃도 지난해 숨졌다고 했다.

정씨는 "이사 가는 사람보다 나이가 많아 돌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쪽방촌의 빈자리가 모두 개발에 따른 이주로 생긴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랑의 집'에서 배식 봉사를 하는 서상홍(66·남)씨는 2016년 이곳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서씨는 쪽방촌 바로 앞 임시거주시설 방 한 칸에서 지낸다고 했다. 시설 곳곳에는 '이음마을 3동' 표지가 붙어 있었다.

서씨는 "가스는 안 되지만 전기는 들어와 잠은 그곳에서 자고 일하거나 봉사할 때는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시설 출입구에는 서울특별시립 영등포쪽방상담소 명의의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 동행식당으로 이용하던 '완산골'이 폐업해 이용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과 65세 미만 쪽방 거주 주민 대상 독감백신 무료접종 안내문과 후원품을 나누는 '온기창고' 이용 안내 등이었다.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옆 임시거주시설. 2026.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은서 인턴기자 =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옆 임시거주시설. 2026.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쪽방촌이 이미 사람이 떠난 빈 공간이라는 시선에 선을 그었다. 정씨는 "안쪽에는 여전히 사는 사람이 많고, 이사 간 건 대부분 상점이나 가게 주인"이라고 했다. 이어 "갈 곳이 없어 가게만 접고 근처에 월세방을 잡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서씨도 "배식 이용자는 꾸준히 많고 최근에 더 줄지는 않았다"고 했다. 임시거주시설에는 "선별 과정을 거쳐 입주하는데 80~90%가 기초수급자이고 원래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시설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흩어졌다. 서씨는 "아래 방향이 문래동이라 그쪽으로 옮기거나, 어쨌든 흩어졌다"며 "월세방이 남아 있는 곳은 인기가 많아 10만~15만원이던 월세가 거의 30만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어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계속 살고 싶어 하는데 철거 이야기가 나온 뒤부터 월세가 너무 비싸졌다"고 했다. 그는 "당장 11월에는 진짜 철거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오후 4시30분께 쪽방촌 로터리 앞에서는 인근 교회의 찬송가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예배가 끝나자 봉고차 트렁크가 열렸고, 준비한 빵을 나눠주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짐 카트를 붙들거나 지팡이와 우산을 짚은 어르신들이 줄을 섰다.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은 782가구를 지어 2029년 입주를 목표로 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선개발부지 주민 이주가 끝나는 대로 시공자를 선정해 연말 공사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