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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좀비사전’이 불러온 추억

등록 2022.12.3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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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좀비사전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제공) 2022.1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좀비사전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제공) 2022.12.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운영하고 있는 책방 3층을 영화도서관으로 꾸미고, 지인들에게 책을 기증받고 있다. 얼마 전 목수책방 전은정 대표가 문자를 보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중 영화책이 있어 도움이 될까하고 보냈다고 했다. 책을 기증해준다니 반갑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택배회사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 보니, 전 대표가 보낸 소포는 책방이 쉬는 수요일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수요일에는 책방 문을 닫고 가족이 있는 남양주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에 천안 책방에는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수요일 새벽부터 수도권에는 큰 눈이 내렸고, 책방이 있는 천안에는 낮부터 비가 쏟아졌다. 책방 앞에 택배를 놔뒀다가는 귀한 책이 흠뻑 젖게 될게 뻔했다. 택배기사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소포를 내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도 많은 소포를 실어 나르는 지라 세밀하게 신경 쓸 처지가 아닌 듯 했다. 책방 옆 편의점에 맡기겠다는 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 사장님께 신세를 졌다.

다음 날 일찍 책방에 출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전 대표가 보낸 소포를 찾았다. 편의점 사장님께는 신세를 지게 되어 미안하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책방 문을 열 준비도 하지 않고,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푸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소포를 풀었다.

박스에는 책 6권이 담겨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작은 책이 있었는데 바로 ‘좀비사전’(프로파간다, 2013)이었다. ‘별의별 사전이 다 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그 책을 가장 먼저 훑어보았다. 좀비 장르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봉석·임지희 평론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듯 보이는, 내용과 구성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라 나름의 체계를 갖고 쓰였음을 금방 확인 할 수 있었다. 좀비와 관련된 대중문화 콘텐츠, 그러한 콘텐츠를 만든 인물들, 좀비 장르를 구성하는 각종 개념들이 주제별 분류 없이 가나다 순서로 정리되어 있었다.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책을 펼쳐 참고서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책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좀비 외에도 여러 나라의 대중문화 콘텐츠 중에서 좀비와 비슷한 성격의 존재들도 수록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나다 순서의 가장 앞부분에는 중국의 강시, 유태교의 골렘이 차지했다.

좀비사전에서 강시를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강시하면 어린 시절 극장 경험이 떠오른다. 영화 산업이 극도의 침체기에 있던 1980년대 지방의 중소 도시에 작은 규모의 소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살던 경기도 구리시에도 몇 개의 소극장이 들어섰다. 영화관들은 가게가 영화 포스터를 걸어 두는 대가로 영화 초대권을 주곤 했다. 쌀집을 하던 우리 집도 얼마간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이때 영화관에서 제공한 초대권을 들고 처음으로 봤던 영화가 강시 영화였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나이였던 것 같다.

강시선생 시리즈의 2편에 해당하는 ‘영환도사’라는 이름의 영화를 누나와 함께 봤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즐거웠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동안 그 영화는 내게 짜릿한 영화관의 추억이었다. 그러다보니 좀비사전에 등재된 ‘강시선생’은 반가울 수밖에.

좀비사전의 항목 하나하나를 읽으며, 장르영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여러 좀비영화 작품을 섭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좀비사전 필자들은 자신들의 기호를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아직 좀비장르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알려 동참을 유도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에게는 합격이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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