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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탈출 곰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수색 나흘째 행방묘연

등록 2021.07.09 05:22:30수정 2021.07.09 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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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했던 시골 전원마을, 곰 탈출로 주민들 불안감 호소

‘지리산 곰 전문가’ 투입해 곰 찾고 있지만 흔적 발견 어려워

기대했던 시민 제보도 한 건도 없어 수색 난항

야생동물 전문가 "3살 된 곰, 새끼에 속해...사람 공격 가능성 낮아"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일대에 '곰 탈출로 인한 입산 금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부착된 가운데 마을길을 지나다니는 주민이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2021.7.8.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일대에 '곰 탈출로 인한 입산 금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부착된 가운데 마을길을 지나다니는 주민이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2021.7.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 박종대 기자 = "손주도 함께 사는데 해가 떨어지면 곰과 마주칠까 무서워서 동네를 돌아다닐 수 없다."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소재한 한 전원마을에서 만난 주민 원모(63)씨는 "야생 멧돼지처럼 먹이를 구하려고 곰이 민가로 내려왔다가 사람을 공격할 수 있지 않겠냐"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는 "이 동네에서 산 지 10년 정도 되는데 이전에도 곰이 탈출한 적이 있어 관할 관청에 주민들이 여러 차례 농장을 어떻게 해달라는 항의민원도 넣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동네 주민들 "과거에도 곰 탈출한 적 있어" 불안

원 씨가 언급한 곰 탈출은 2012년 7월 발생한 ‘반달가슴곰 탈출사건’을 말한다. 당시 한 동네에 위치한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2마리가 인근 야산으로 달아났다가 모두 사살됐다. 6년생 암컷으로 몸무게가 70㎏ 가량 되는 곰이었다.

그 해 석 달 전인 4월에도 이 농장에서 어린 반달가슴곰 1마리가 탈출해 50대 여성 등산객 1명을 물고 달아났다가 하루 만에 사살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올해 7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또 다시 터진 것이다. 지난 6일 이 농장에서 3년생으로 추정되는 곰 2마리가 탈출했다.

현장 조사를 나온 용인시 환경과 관계자는 "케이지(철망우리) 벽면과 바닥에 접합돼 있는 모서리 부분이 벌어지면서 그 틈 사이로 곰이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농장주는 인근 여주시에서도 곰 사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반달가슴곰 8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7월 이 여주 농장에서도 생후 3개월 된 새끼곰이 탈출한 적이 있다. 이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를 받아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포획돼 다시 농장주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전원마을 초입에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이 마을에는 주민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2021.7.8.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전원마을 초입에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이 마을에는 주민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2021.7.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게 농장에서 사육되는 반달사슴곰은 주로 동남아와 히말라야에서 곰 쓸개인 '웅담'을 약재 채취용으로 쓰기 위해 국내로 수입해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으로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에 해당되지만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정부가 곰 사육을 장려해 외국에서 수입이 이뤄지면서 생후 10년생 이상인 경우에 한해 웅담을 채취할 수 있도록 도축을 허용했다.

당초 24년생 이상부터 도축이 가능했지만 환경부가 곰 사육농가 사정을 고려해 2005년 2월부터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곰 처리기준을 완화했다.

이렇게 들어선 곰 사육농장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곰 탈출로 인한 인명사고가 나지 않도록 엄격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 씨는 "아무리 사유농장이긴 하지만 주민들이 불안해 하면 지자체든, 관리관청이든 곰이 케이지에서 탈출하더라도 농장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도록 2차 보호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어떤 조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원 씨는 곰이 탈출한 지 3일째 되는 이날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 만큼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나마 밤보다 안전한 낮 시간대에 집 근처에서 가꾸고 있는 고추텃밭을 살피기 위해 내리쬐는 땡볕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보호시설도 안 할 거면 차라리 농장주에게 무슨 보상을 해주던가 해서 최소한 주민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없애야 하는 게 맞지 않냐"며 "다른 주민들도 또 다시 곰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오후 취재진이 1시간 남짓 동네에 머무는 동안 원 씨를 제외한 다른 주민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행정구역상 이동읍 천15리에 속하는 이 전원마을에는 원 씨를 비롯한 10여 가구가 모여 산다. 같은 동네에 사는 곰 사육농장도 천15리에 들어간다. 이동읍사무소에 따르면 천15리에는 총 156가구에 주민 364명이 살고 있다.

곰이 탈출한 농장은 이 마을 초입 갈래길에서 왼쪽으로 경사진 시골길 가장 깊숙한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곰을 키우는 케이지는 농장 안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외부에서 육안상으로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곰 사육농장 일대에 울창한 숲 속에 조성돼 있는 등산로가 주민들의 산책 코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정작 곰 사육농가가 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용인시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등산객이 산책을 하다가 탈출한 곰을 보고 크게 놀라거나 황급히 달아나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입산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부착한 상태다.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가에서 곰 2마리가 탈출한 가운데 해당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다른 곰들이 사육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1.7.6.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박종대 기자 =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가에서 곰 2마리가 탈출한 가운데 해당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다른 곰들이 사육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1.7.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색 2일차인 7일 오후 2시부터 이동읍 천리와 호동 등 곰 사육농장이 위치한 2개 지역 일대에 이틀 간에 걸쳐 20, 30장씩 총 50장을 등산로 입구와 마을 곳곳에 붙여놓았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이 마을 초입에 빨갛게 굵고 큼지막한 글씨로 ‘곰 탈출지역. 현재 포획 중으로 입산 금지’라고 적혀 있는 경고성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게 한 눈에 띄었다.

탈출한 곰을 목격한 시민이 긴급 신고할 수 있는 용인시 환경정책팀(031-324-2247) 사무실 전화번호도 함께 기재돼 있다.

시는 이날 ‘입산자제 등 안전에 유의하시고 곰 목격 시 바로 신고를 바란다’는 내용의 2차 긴급 재난문자를 인근 주민들에게 곰이 탈출한 첫째날에 이어 재차 발송했다.

원 씨는 "등산로가 산책하기에 높지 않고 놀이터도 조성돼 있는 등 잘 가꾸어져 있어 마을 건너편에 위치한 아파트 주민들도 동네길을 따라 운동하러 많이 온다"며 "이번에 곰이 탈출한 것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떠한 조치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행정당국에 개선을 요청했다.

‘지리산 곰 전문가’ 투입했지만...곰 수색 난항

시는 곰이 탈출한 지난 6일부터 용인시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과 야생생물관리협회 용인지회 소속 전문 포수 10여 명을 동원해 곰의 행방을 쫓고 있다.

시의 즉각적인 대처로 신고 접수 2시간여 만에 곰 사육농장에서 약 400m 떨어져 있는 숙명여대연수원 뒤편 야산에서 탈출한 곰 1마리를 발견해 포수에 의해 사살했다.

이 곰은 고온에서 가열 처리해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작업, 일명 ‘렌더링’(Rendering·사체를 고온·고압에서 태워 유골분으로 만드는 것) 방식으로 처리했다. 잔존물은 시가 퇴비로 재활용할 예정이다.
[용인=뉴시스]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 2마리 가운데 사살된 1마리가 바닥에 눕혀져 있다. 이 곰은 '렌더링' 방식으로 처리해 퇴비로 활용될 예정이다. 2021.7.6.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 6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 2마리 가운데 사살된 1마리가 바닥에 눕혀져 있다. 이 곰은 '렌더링' 방식으로 처리해 퇴비로 활용될 예정이다. 2021.7.6.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색 이틀째인 7일부터는 소위 ‘지리산 곰 전문가’로 불리는 국립공원공단 남부보전센터 연구원 4명과 수의사 1명 등 총 5명을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사육장 반경 2㎞ 안에서 곰의 배설물, 발자국을 꼼꼼히 살피는 등 좀 더 면밀한 추적을 시작했다.

그런데 장맛비가 내린 데다 이동 흔적을 잘 남기지 않는 반달가슴곰 특성상 어느 경로로 움직였는지 추정할 수 있을 만한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 3일차인 8일부터는 전문 포수들이 수색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러한 수색 활동이 생후 3년 이하로 추정되는 어린 사육곰을 찾는 데 거꾸로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른 결정이다.

대신 포수들은 곰을 목격한 시민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출동해 포획에 나설 수 있도록 38명이 조를 나눠 돌아가면서 다른 장소에서 대기 중이다.

다만 현재까지 접수된 시민 신고는 한 건도 없어 제보를 통한 수색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는 사육장에서 자란 곰의 특성상 멀리 가지 못 했을 것으로 보고, 사육장 일대 수색을 강화하는 한편 그 주변에 무인트랩 3대와 열화상카메라 3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만일 곰을 포획하는 데 성공하면 수색 첫 날 사살한 곰과 달리 이번에는 생포하기로 했다.

동물보호단체 측의 요청이 들어온 데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차원이다. 시는 이 곰이 사유재산에 속하기 때문에 생포할 경우 다시 농장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용인=뉴시스] 7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야생생물관리협회 용인지회 소속 전문 포수들이 수색견을 동원해 탈출한 곰을 포획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2021.7.7. (사진=용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용인=뉴시스] 7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소재한 곰 사육농장에서 야생생물관리협회 용인지회 소속 전문 포수들이 수색견을 동원해 탈출한 곰을 포획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2021.7.7. (사진=용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탈출한 곰이 인명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아직 생포하지 못한 곰의 경우 그동안 농가에서 사료를 먹고 자란 소위 ‘사람 손’을 탄 사육곰으로, 같이 탈출한 곰보다 어린 것으로 추정되면서 무게도 30~40㎏로 10~20㎏ 가량 차이가 난다.

5살 이상 되는 곰은 성체를 이룬 성인 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야생에 노출돼 장기간 먹이를 찾지 못하면 공격성을 드러내 먹이를 찾을 수 있다. 반면 3살 이하의 새끼 곰은 주로 먹이로 도토리와 같은 열매를 찾다가 만약 실패하면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칫 생명을 잃을 염려도 있다.

용인시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지효구 팀장은 "5살 이상 되는 곰은 야생 본능이 나와 공격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탈출한 곰은 3살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새끼곰은 풀뿌리나 열매 종류를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에게 길들여진 새끼 사육곰이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잘 움직이지 않을 텐데 야생성도 없다보니 먹이를 찾지 못해 허기가 지면 위축이 돼서 안 움직이고 결국 죽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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