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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글씨인 줄 알았는데 친일파?…유묵 '신원' 확인법

등록 2026.08.15 10:00:00수정 2026.08.15 12:58:53

국중박, 박원근 글씨로 전시했다 친일 인사 가능성에 철수

안중근 유묵은 기존 필적에 손도장 지문·손금까지 대조

종이·필적·도장·문헌 등 종합 검증…이르면 이달 말 결과 공개

[서울=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전시된 박원근의 '일반시국은' (사진=독자 제공) 2026.08.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전시된 박원근의 '일반시국은' (사진=독자 제공) 2026.08.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애국지사의 글씨로 전시했던 유묵을 철수했고, 국가유산청은 순국 전 마지막 글씨로 추정되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공개했다. 유묵을 놓고 하루 사이 벌어진 상반된 풍경이다.

지난 12일 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전시 중이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을 철수했다. 애국지사 박원근(1896~1977)의 글씨로 소개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2~1959)이 과거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다.

하루 뒤인 13일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 의사의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를 공개하면서 기존 유묵과의 필적 비교는 물론 손도장까지 대조한 검증 과정을 함께 내놨다.

두 사례가 보여주는 건 검증에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가 아니다. 유묵을 쓴 인물을 확인하려면 무엇을 비교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떤 자료가 축적돼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국중박, 비교할 글씨가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전시 전 '일반시국은'을 검토했다. 보존과학실에서 종이의 지질을 분석해 적어도 1950년 이전에 쓰인 종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유묵에는 '한인 박원근(韓人 朴元根)'이라는 관지가 남아 있었다. 글의 내용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승장으로 알려진 영규대사와 관련해 전해지는 말이었다.

'한인'이라는 표현과 나라의 은혜를 강조한 글의 내용, 애국지사 박원근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그러나 정작 글씨의 주인을 확인할 결정적인 비교 자료가 없었다.

이애령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박원근 지사가 남긴 다른 유품이 하나도 없어 무엇과 비교해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박중양이 과거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이번 제보 전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박물관은 이를 포함해 검증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작품을 철수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를 최초 공개하고 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이 대포(大砲)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유묵은 1910년 2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가 느낀 국제법의 무력함에 대한 깊은 회의를 담고 있다. 2026.08.1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를 최초 공개하고 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이 대포(大砲)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유묵은 1910년 2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가 느낀 국제법의 무력함에 대한 깊은 회의를 담고 있다. 2026.08.13. [email protected]


안중근은 손금까지 맞춰봤다

안중근 의사의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비교할 자료가 충분했다.

유묵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관지가 있고, 왼쪽 아래에는 안 의사를 상징하는 장인(掌印·손도장)이 찍혀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안 의사의 유묵들과 필적을 비교했다. 필획 처리 방식과 글자의 형태, 붓을 움직이는 속도감 등을 살폈다. 특히 본문의 '萬(만)'자를 초서로 쓴 방식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한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에서도 확인된다.

검증은 손도장까지 이어졌다.

정제규 국가유산청 상근 전문위원은 지난 13일 언론공개회에서 "2019년 이전까지 보물로 지정된 25건을 대상으로 안중근 의사 유묵의 장인을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를 중첩 비교하는 방식으로 분석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유묵에 찍힌 장인의 검지 지문 형태와 중심점, 손바닥 주름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이번 유묵에 남은 장인과 겹쳐 비교했다. 필적과 관지 형식 등도 기존 유묵과 대조했다.

유묵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도 확인했다. 뒷면 묵서에는 당시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소장했다가 이후 다른 인물에게 전해진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비교할 기존 유묵이 축적돼 있었기에 글씨의 형태부터 손도장의 지문과 손금, 전승 과정까지 서로 다른 단서를 맞춰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박원근인가 박중양인가, 제3의 인물인가…다시 '신원 확인' 나선 국중박

'일반시국은'의 신원 확인은 이제부터다. 박중양이 과거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단서로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이 유묵을 박중양의 글씨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이애령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박중양이라고 서명된 작품이 독립기념관 소장품으로 있다"며 "사진으로 대조해서는 안 되고 일단 진품을 직접 대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역사와 서예사·필적 감정, 고문헌, 지류 보존 분야 전문가들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실견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박중양이 실제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무엇인지, 어느 시기에 사용했는지도 확인한다. 유묵에 찍힌 '옥동'이라는 인장이 누구의 것인지도 조사 대상이다.

이 실장은 "단순히 필적 감정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며 "도장과 필적, 문헌 등을 종합해 정확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원근 지사의 글씨인지, 박중양의 글씨인지,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른 사람의 글씨일 가능성도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안중근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뒷면 묵서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8.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안중근의사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 뒷면 묵서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8.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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