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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10년만의 공개, 뭉크 ‘사춘기’

등록 2013.01.01 13:37:39수정 2016.12.28 06: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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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어른이 부르면 복종해야한다는 동양식 사고방식에 젖어 무심코 그를 향해 길을 건넜다. “뭉크에 가느냐”며 내 팔을 잡더니 지도의 엉뚱한 부분을 가리키며 한참 설명을 한다. “나는 내가 지금 어디있는 줄 안다”고 지도에 표시된 곳을 보여주고 팔을 잡아 빼고 피했다. 순수하게 친절에 고마워하면 될 것을, 이곳 노인들이 젊은 동양여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기에 선입견에 괜히 피하게 된다.

 뭉크 뮤지엄은 오전 10시나 돼야 문을 연다고 해서(6월9일~8월31일 오전10시~오후5시 개관) 바로 곁의 식물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정원은 몇 블록을 차지할 정도로 널찍하고 오전 7시면 개방한다. 하지만 내부 전시관들은 하나같이 오전 11시나 돼야 문을 연다. 갖가지 정원은 여름꽃이 만발해 아름답다. 유아원 아이들 한떼가 구경을 왔는데 남녀평등 나라답게 남자보모도 눈에 띈다. 아이들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다. 큰 도시에서 있을 수 있는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안전을 중시하는 실리적인 사고를 지닌 북유럽인들은 밤에 자전거를 탈 때도 바이크웨어로 이런 형광색 겉옷을 사서 입기도 한다.

 뭉크미술관 카페는 대표작 ‘절규’에 나오는 해골 형상을 초콜릿과 흰크림으로 그려넣은 케이크가 명물이다. 나는 ‘절규’ 흑백판화가 새겨진 컵에 커피를 따라 한잔 마시고 지하 1층 라커에 짐을 넣어두고 입장했다. 미술관의 경비는 노르웨이답지 않게 철저한데 작품을 도난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란다. 아직 런던, 파리처럼 전세계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 아니어서 박물관에서도 그다지 빡빡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 카메라 스트로보를 제한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진도 마음대로 찍게 해준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으로 공항검색대를 거치듯 경비원 3명이 금속제품을 다 내놓으라며 철저히 수색을 한다. 전시실마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날카로운 눈매로 지켜본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관람하기 전 전 뭉크의 일생에 대한 전시와 짧은 다큐영화를 먼저 볼 것을 권유한다. 상영관에 들어가니 어제 입센박물관에서 함께 가이드투어를 했던 푸른눈의 아가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애지중지하던 남자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뭉크의 삶은 그가 왜 그리 어둡고 신경증적인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를 설명해준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겪고 파리유학중 아버지를 잃는다. 폭음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리며 과로에 시달렸고 소외감, 외로움, 죽음에의 공포를 끊임없이 느끼며 그러한 정신세계를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34세에 사귄 툴라 라르센이라는 여성은 지속적으로 결혼을 요구하다가 뭉크가 거절하자 권총으로 위협까지 하고, 뭉크는 손가락이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으며 여성혐오증까지 더한다.

 뭉크미술관에는 1100점이 넘는 유화, 4500점의 수채화, 1만8000점의 판화 등 뭉크가 오슬로시에 기증한 작품들이 소장돼있는데 다 전시를 할 수가 없어 대부분 지하창고에 보관돼있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대표작중 하나인 ‘사춘기’(1894)가 10여년만에 공개됐다. 10대소녀가 두 손을 엇갈리게 모은 채 침대 끝에 앉아있는 누드화다. 소녀 뒤의 커다란 검은 그림자는 사춘기에 느끼는 공포와 불안정함을 상징한다. 뭉크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사춘기’는 부서질 위험에 처해 10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다가, 보존작업 끝에 이제서야 대중 앞에 전시가 가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6월8일~10월14일 이뤄지는 2012 여름 전시중에는 뭉크의 유명한 모티프로 여러개의 버전이 있는 ‘절규’와 ‘불안’ 중 각각 1910년작과 1894년작이 전시됐다.

 나는 뭉크를 관람하는 동안 내내 추웠다. 밀폐된 미술관 내부가 워낙 냉방이 잘되기도 했지만 추위를 잘타는 체질에 아침에 꽤 오랫동안 걸어다니며 땀이 나자 원피스 밑에 레깅스처럼 입고 다니던 내복바지를 벗은 탓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뭉크의 작품 세계를 더 잘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이 됐다. 근심이 영혼이라도 집어삼킨듯 얼굴이 뭉개져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한 사람들, 곧 병져 누울 듯 보이는 상념에 잠긴 여인, ‘죽음과의 댄스’를 추고 있는 공포에 벌어진 큰 눈, 서로 엉겨 녹아내린듯, 함께 추락이라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키스’, 개울가에서 목욕을 하며 추는 춤은 불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듯한 검은 숲과 공포의 근원을 파고드는 듯한 검은 물이 자주 드러난다.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기도 해서 이런 불편한 그림을 오래 보고 있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다문화 박물관과 홀멘콜렌 스키점프대

 노르웨이 현지 다문화 현황이 궁금해 다음 행선지를 인터컬처(다문화) 박물관으로 정했다. 두건을 쓴 아랍계들이 운영하는, 상해가는 과일과 야채 냄새가 나는 식료품 가게들이 들어찬 지저분한 거리를 한참 걸어내려와 꽤 낡아보이는 석조건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피부가 까만 남자가 입구에 앉아있는데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인도출신이라고 하는데,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사설박물관인 듯했다. 주로 노르웨이에 들어와있는 다양한 종교에 대한 전시다.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등에 대한 소개와 현지 신도 수를 조사해놓았고, 전시품은 주로 종교물품들이다. 설명문들은 그리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노고를 높이 쳐줘야할 듯싶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뜬금없이 날짜도 표시돼있지 않고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백인 금발 기독교인 노르웨이지안의 학살에 대한 분노를 이교도에게 표출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작은 추모제단이 꾸며져 있다. 지난해 7월22일 브레이빅이라는 테러범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대상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의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이민자에 의해 이뤄진 테러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는데, 그에 대한 억울함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살인 가능자로 규정짓지 말라”는 글도 보인다.

 브레이빅은 체포후 “다문화를 막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했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반감인지 “13세의 무슬림인 소피아가 ‘그 살인자가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그들을 죽였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노르웨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떠나야할까요?’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바다”라는 글도 있다. 이민에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에서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숙소 근처의 유대인 박물관을 가보려고 했는데, 큰 규모의 유명 장소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지도상 표시된 것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앙케르 호스텔 리셉션 직원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이곳은 포기하고 슈퍼마켓에서 사온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 후 홀멘콜렌 스키점프대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면 갈 수 있는데 몇 정거장 지나자 지상으로 올라오며 간이역 열차여행 같은 분위기를 낸다. 오슬로 교외지역 주택가는 역시나 이런데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인다.

 홀멘콜렌역에서 내려 15분정도 무성한 풀숲 언덕길을 오르면 거대한 흰색 철제 구조물의 위용이 드러난다. 용이라도 승천하는 모양새다.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라는 이유로 스키점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오르지 못했다고 묘사되는 점프대다. 관중석이 있는 스타디움만의 높이도 꽤 높은데, 스타디움 벽에 홀멘콜렌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들을 기록해놓은 안내판을 읽어보니 세계에서 유일한 철제 스키점프대라고 한다. 해발 425m 높이에 위치해있으며 활주로 전체 길이는 96.95m로 완성하는데 총 1000t의 철이 들어갔다. 디자인은 덴마크와 벨기에 합작건축회사인 JDS가 했으며 강풍에도 영구적으로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내용도 있다. 그외에는 안내문이 부족한 것이 좀 아쉽다.

 기념품가게 앞에는 발랄하게 뛰고있는 개 동상이 있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노르웨이어로 ‘땅에 있는 개’라고만 새겨져있다. 영어로 검색해보니 인터넷 ‘구루’(스승) 사이트에도 이 개 동상에 대한 질문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스키 시뮬레이터를 운영하는 지점도 있는데, 시속 130㎞로 진짜 스키점프와 레이싱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광고판이 붙어있다. 완전히 밀폐된 승합차 정도의 크기의 차량에 한번에 12명이 탑승하면 5분여간 기계로 전후좌후, 위아래로 돌려가며 흔들리도록 하는 건데, 임신부나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이 탑승을 금한다는 사인이 붙어있다. 가격은 성인 1회 60크로네. 멀미날 것같은 체험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 스키 박물관으로 바로 올라갔다. 여기서 입장료 100크로네를 내야 전망대와 함께 있는 점프대 꼭대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6~8월에는 오전 9시~오후8시 오픈해 늦은 시간까지 즐길 수 있다.

 발에 스키를 달고 태어난다는 얘기가 있는 노르웨이인들이 4000년 스키역사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층 구조의 박물관은 동굴내부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에 충실한 수집품과 영어 설명문도 잘 배치해놨다. 전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난센이 북극탐험을 할 때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만든 백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백곰모형은 스키가 지나간 자국을 코로 냄새맡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문센이 남극탐험을 할 때 각각 사용한 스키, 나무로 만든 초기 스키, 눈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사용하던 장비부터 374㎝ 길이의 세계최장 스키, 최첨단 스키까지 다양한 스키를 모두 접할 수 있다. 생후 9개월부터 스키를 타는 아이의 사진(여기에는 정말로 ‘노르웨이인은 발에 스키를 달고 태어나는가?’라는 문장이 붙어있다)과 이를 바탕으로 한 모형, 노르웨이 왕가의 스키 애호,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관한 자료들도 빼곡하다.

 지체부자유자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도 어떻게 스키를 즐기는지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전시관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가이드투어도 따로 없고(홈페이지를 보니 가격은 1000크로네로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 듯) 인건비가 비싼 탓인지 내부에는 따로 직원이 배치돼있지 않아 아쉽다. 결국 2500년전 나무 스키 조각이 보관돼있다는데 못찾았다. 표를 파는 직원에게 물어보려해도 기다리는 줄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냈다.

 오디토리엄에서 틀어주는 필름도 볼거리다. 유명선수들이 스노보드와 스키를 묘기라도 하듯 타는 장면을 예술적으로 담아낸 영상인데 DVD를 기념품숍에서 판매한다는 자막이 빠지지 않는다. 스노보드를 자유자재로 타며 새처럼 나는 모습도 경이롭지만, 어찌보면 그 짧은 순간의 쾌감을 즐기기 위해 스키를 매고 긴 시간 험준한 설산을 오르는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부에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점프대로 올랐다. 투명유리로 된 승강기는 점프대와 나란히 사선으로 된 체인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 높이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점프대의 경사와 길이는 어마어마해서 보는 것만 해도 아찔하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선수들의 담력이 더 놀랍다. 경기장 위쪽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노르웨이 국기문양의 페넌트(삼각기)가 휘날리는 전망대가 나온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라 하늘에는 두터운 먹구름이 꼈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여겨진다. 엄청난 양의 구름이 무슨 성운처럼 펼쳐져 있다. 사방을 둘어보아도 숲과 호수로 그득한 풍경이 어디나 아름답다. 가까이는 기독교와 바이킹 문화가 융합된 형태의 스타브 교회를 모티브로 한 홀멘콜렌 파크호텔 리카부터 예쁜 주택들이 빽빽한 침엽수림 사이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한층 내려오면 점프대 기울기 그대로 격자무늬 창을 내 또다른 각도에서 전경 감상을 하도록 해놓았다. 어린아이들이 겁도 없이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망대에는 뇌우(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올 때는 입장이 금지된다는 안내가 붙어있는데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음날에는 비가 많이 내려, 이곳에 왔던 같은 방을 쓰는 태국 처자는 전철역에서 아예 벗어나지도 못했단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 처자는 대신 취재를 왔다는 이탈리아 언론인과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스타디움 쪽으로 내려가봤다. 아래쪽에서 보니 점프대는 중간에 양날개처럼 벌어져 스타디움을 감싸고 있다. 날이 점점 더 흐려지는가 싶더니 계절로는 한여름인데도 추위가 느껴진다.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 건축물의 특징중 하나는 자연을 그대로 살린다는 것이다. 지층 바닥은 포장하지 않고 검은 돌조각들로 그대로 메워 놨다. 여기로 빗물이 그대로 스며든다. 아래쪽으로 푹 파인 스타디움 안쪽을 들여다보니 돌산을 파내린 바위벽을 그대로 살려놨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비겔란 조각공원의 웅장함과 예술성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돌아와 12번 트램으로 갈아타고 비겔란 공원 앞에 내렸다. 다행히 비는 그새 그쳤다. 피곤하고 배도 고팠지만 여기까지 와서 볼 것을 놓칠 수가 없다. 오후 6시께이지만 비겔란 공원은 24시간 개방돼있어 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는 여름 저녁에 방문하기에 딱 좋다. 외신에도 종종 나오는 이 조각공원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다행히 작은 단층건물에 카페가 있어 연어샌드위치와 커피로 저녁을 때웠다.

 워낙 공간을 넓게 쓰기에 동선이 보통 긴 것이 아니다. 국토의 70%가 산이 한국은 아무래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땅의 한계가 있고 인구밀도도 높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널찍하게 이용된 웅장한 크기의 공간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다. 노르웨이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1869~1943)이 여생을 바쳐 만든 212점의 조각들로 곳곳이 꾸며졌다. 인물수로만 650명 이상이라는데 태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인간상들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표현한 조각들은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로 역동적인 동작과 생생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레슬링이나 서커스 동작이라도 보여주듯 하나같이 기기묘묘하다. 어딘지 모르게 트론헤임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본 노르웨이 특유의 해학성과 토속성이 연상됐다싶었더니, 비겔란이 젊은 시절 이 성당 복원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단다.

 공원내 호수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네 귀퉁이를 차지한 높은 기둥에는 용과 인간이 다양한 포즈로 포옹하고 있는 에로틱한 동상이 있고, 다리 난간도 다양한 조각상들로 꾸며져 있다. 저 멀리 그 유명한 ‘모놀리트’ 기둥이 보인다. 17m 높이의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인물이 얽혀있는 모습을 조각했다. 서커스라도 하듯 다양한 인물들의 조합이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데, 그 균형미가 놀랍다. 다리를 건너면 석판을 깐 너른 광장에 장미정원이 드러난다. 석판을 깔지 않은 토양에 수십종의 각기 다른 장미들을 심어놨는데, 이렇게 다양한 종의 희고 붉은 장미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본 것은 처음이다. 어여쁜 장미의 모양과 향을 즐기며 계속 걸어가다보면 4명의 인물이 거대한 대야를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조각분수가 나타난다.

 그 둘레는 나무조각과 인물상이 갖가지 포즈로 어우러져 있고, 분수 둘레에도 갓난아기와 동물, 해골 등을 조합한 작은 부조가 새겨져있어 흥미롭다. 꽃밭으로 꾸며진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나타나는 모놀리트. 모놀리트를 받치고 있는 둥근 계단에는 36개의 군상으로 꾸며져 있다. 모놀리트는 그 구성만으로도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벌레도 아닌 고등한 인간의 육체모양을 쌓아올려, 그 단단한 화강암을 맨들맨들하도록 다듬어 거대한 탑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비겔란의 천재성과 연구에 들인 노력이 얼마마한지를 알 수 있다.

 그 사이에도 날씨는 계속 변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접이우산을 꺼내 썼더니 어느새 비구름이 지나가면서 갑자기 환한 햇살을 끄집어내는데, 그렇게 드러난 파란하늘과 저녁나절 한풀 죽은 햇빛이 만드는 음영이 조각의 선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며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레슬링이라도 하듯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포즈를 지은 육감적 남녀들을 하나하나 다 묘사하기도 벅차다. 모놀리트는 공원의 가장 높은 곳, 계단에 앉아 지금까지 걸어온 조각상길을 내려다보면서 햇빛을 받으며 비에 젖은 옷과 몸을 말리고 있는데 한 노부인이 말을 시킨다. 노르웨이 다른 지역에서 아들 부부와 손자를 데리고 관광 온 할머니다. 역시 나이많은 할머니 가이드와 함께 오슬로 여행을 왔다며 계단에 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는 전에도 이 공원에 와봤는지 조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남지 않은 생에 특별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러 다시 왔을까. 그녀는 궁금한게 있으면 경력이 풍부한 가이드에게 물어보라고 친절을 베풀었지만, 가이드 할머니는 돈을 받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철저한 프로페셔널인지 나를 소 닭보듯 한다. 대신 그 노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특별한 것을 가르쳐준다는 듯 나에게 “저 무리 중에 끼지 못하고 홀로 벌을 서듯 서있는 남자아이 동상을 봤니?”하고 물어본다. 다같이 뭉쳐있는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정말 ‘왕따’ 동상이 있다. 모놀리트 반대편으로 내려가봤더니 받침에 12궁도를 새겨넣은 천구의처럼 생긴 해시계와 인간의 몸으로만 환을 만든 또다른 동상이 보인다. 그 건너편은 공원묘지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45>  오슬로에 왔으니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화가 뭉크를 놓칠 수 없다. 어제 갔던 오슬로대 맞은편의 국립미술관까지 관람할 시간은 안될 것 같지만 뭉크 미술관만은 간절했다.  예보 앱을 체크했을 때는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이른 아침 비가 지나가고 다행히 그쳤다. 숙소인 앙케르 호스텔에서 나와 동쪽에 위치한 뭉크미술관을 향해 슬슬 걸었다.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건널목 건너편 한 노인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그러고보니 인기있는 ‘시나타겐(심술쟁이)’ 동상을 보지 못한 것같다. 어린 사내아이가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떼를 쓰는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1992년 겨울 다리가 잘려 사라지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나중에 잘린 부분을 다시 찾아 붙였다고 하는데, 허둥지둥 친절한 노부인에게 그 위치를 물어보러 되돌아갔다. 다행히 아직 그 자리에서 저녁중이다. 노부인은 다리 위로 가보라면서 그 다리 밑 정원에 거꾸로 놓여있는 태아 동상도 꼭 찾아보라고 알려준다. 거슬러 올라가니 아까 누군가 야구모자를 잠시 씌워놨던 동상이다. 나는 이 동상이 유명한 만큼 대형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보고도 그 동상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실제 꼬마 크기의 이 동상에 대해 가이드북에는 이어붙인 다리 부분의 빛깔이 달라 티가 난다고 했지만 알아챌 수 없다. 대신 왼손주먹만 새로 갖다 붙인듯 금빛으로 반짝인다. 역시 궁금해도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노부인의 말대로 다리 밑 길을 따라가면 위치한 수상정원에는 가운데 태아동상을 중심으로 갓난이들을 묘사한 동상들로 꾸며져있다. 오리가 둥둥 떠다니는 호숫가, 괜히 나만의 비밀공간이라도 발견한 듯 기분이 좋다.

 시계는 아홉시를 가리키는데 날은 여전히 훤하다. 공원 남쪽에는 오슬로시박물관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비겔란 박물관이 있다. 물론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지만 비겔란 박물관은 생전 조각가가 쓰던 작업실이라고 해서 예술가의 흔적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짧지 않은 거리를 걸었다. 공원 밖으로 나와 지나가던 노부인에게 비겔란 박물관의 위치를 물으니 아주 반색을 한다. 검은 재킷을 걸친 세련된 인상의 이 노부인은 나중에 페이스북에 초대하고 보니 1940년생으로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그런데 푸른 눈이 어찌나 총기 넘치게 형형하고 생기에 넘치는데다가 자신을 잘 관리해왔는지 그 정도로 나이가 많다고는 전혀 짐작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어찌나 옛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워하는지 길에 서서 한 30분은 떠든 것 같다. 아마도 굉장히 여유있는 가계에서 잘 교육받고 자란 교양인인 듯싶다. 2년전 홍콩에 가서 산적이 있다는데 그래서 동양인에게 친근감을 느끼나보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홍콩에서 매일 비즈니스뉴스를 봤다며 삼성의 요즘 주가를 물을 정도다. 비겔란에 대한 지식도 굉장해서 용과 포옹한 여인 조각상이 보여주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얘기하며, 여인의 포즈를 직접 지어보이기도 한다. 비겔란이 파리에서 유학하며 로댕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해준다. 그때 어디선가 젊은이들의 괴성에 가까운 함성이 들려온다. 귀부인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긴 겨울을 지나 짧은 여름 해를 즐기는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어디에 묵느냐고 물어 앙케르 호스텔에 묵는다고 하고 위치를 알려주니 화들짝 놀라며 자기는 그 거리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관광객을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묵게하는 건 안될말이라고 끌탕을 한다. 자신은 이 인근에서 태어났다며 바로 건너편의 그리스 대사관을 가리키며 좋은 동네라고 강조한다. 그녀의 스토리는 또 이어져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 하나였던 노르웨이가 발전하기 시작하며 1970년대 이렇게 좋은 건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내일 할머니 기일이라, 비겔란공원 건너편에 있는 공원묘지에 있는 묘에 찾아가기 위해 이렇게 꽃화분을 사들고 간다면서 그래도 시간이 되면 자신이 내일 만나 도와주고 싶다고 이름과 함께 주소와 e-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그녀의 호의는 고마웠으나 모레 아침 일찍 스웨덴 예테보르그로 떠날 예정인지라 뷔그데이 지구는 빼놓지 말아야할 듯 싶어 거절했다. 현지인과의 인연을 쌓는 것도 좋은 여행방안의 하나일텐데, 왠지 낯선 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저어됐고 어렵게 온 길인데 봐야할 곳은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우선했다. 한국에 오게 되면 연락달라고 명함을 주고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오슬로 시박물관은 공원의 연장선에서 기와를 올린 단층의 예쁜 건물과 정원으로 이뤄져있다. 비겔란 박물관은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격조있는 건물이다. 5월2일~8월31일에는 오전 10시~오후5시 문을 열고 월요일 휴관한다고 안내돼있다. 그외기간에는 낮12시~오후4시에만 연다. 안타까운 마음에 창안을 들여다보니 전시된 작품들이 조금 보인다. 박물관 앞 잔디밭에도 비겔란의 작품이 몇개 전시돼있어 아쉬운대로 사진만 찍고 트램을 타러 갔다.

 오후 10시께인데도 여전히 밝다. 다만 늦은 시간인만큼 트램 배차간격이 늘어났는지 한참은 기다려도 12번 트램이 오지 않는다. 정거장 벤치에 나란히 앉은 풍족한 몸매의 노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행중이냐”며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니 내 표정이 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누그러졌나보다. 또 훌륭한 예술작품을 한껏 감상한 뒤의 만족감이 얼굴이 많이 밝아보였을 수도 있다. 본래 시니컬해보인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여행의 자유로움이 얼굴도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 듯싶었다. 그녀 옆의 동남아인 남자도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작은 체구에 짙은 피부를 한 그는 네팔인으로 잘생긴 얼굴에 영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 현지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는데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갈 예정이라며, 한국에 네팔인들이 많지 않느냐고 아는 척을 한다. 경기권의 A대학으로 갈 거라면서 한국에서 정말 좋은 대학 아니냐고 묻길래, 솔직하게 서울 안에 있는 대학으로 오는 것이 더 낫겠다고 얘기를 해줬다. 그의 표정이 좀 어두워진다. 정말 이럴때 내 성격을 못말리는게 ‘사실 보도’에 오래 치중한 버릇탓인지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걸 잘 못하고, 자꾸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 만난 오슬로의 노인들은 스스로의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인생경험을 통해 타 인종에게도 너른 마음을 갖게 된 것인지 유난이들 친절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나누고 싶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늙는다는 것이 좀 슬퍼지기도 했다. 노인과 새로 교류하게 될때면 그들이 먼저 세상을 떠야한다는 걸 의식해야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젊을 때는 외국인에게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쑥스러움 때문에 잘 말을 걸지 못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가질만큼 시야가 넓지 않고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내 나이만 돼도 과거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  <2012년 7월19일 오슬로 관광 둘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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