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다들 이 노래 고르네요…고독의 의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데뷔 18년째인 싱어송라이터 이적(39)은 이러한 고민 끝에 새 앨범을 정규 앨범으로 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5일 정규 15집 '고독의 의미'를 내놓고 3년 만에 팬들을 만난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규 형식이 맞다고 판단했죠. 근데 언제까지 정규를 낼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필요했죠. 지난 정규 4집 때도 마지막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2년에 걸쳐 작업한 60여곡 중 10곡을 추린 이번 앨범은 이적의 마음가짐을 반영하듯 완성도가 높다. 특히, 전곡의 노래와 사운드에서 제목 '고독의 의미'가 어른거릴 정도로 응집력이 단단하다. 비교적 쉬운 곡에서 실험적이고 어려운 곡들을 순차적으로 듣게 되는 정규 앨범의 맛이 살아 있다.
"질릴 것 같은 곡들은 과감하게 쳐냈어요. 예전에는 작업 막바지에 앨범 수록곡을 완성한 경우도 많았어요. 간혹 마감의 압박 때문에 좋은 곡도 나오지만, 답답함이 있었죠. 이번에는 시간을 많이 두고 골랐어요. 계속 수정 작업을 거쳤죠. 녹음하기 전에 편곡과 가사 작업이 이미 끝나서 여러 차례 불러본 상태였어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오랜만에 그런 상태로 작업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말하듯이 잔잔하게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타이틀곡이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클래시컬한 멜로디로 인해 감정선이 출렁인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진 이의 상실삼, 자해, 원망이 담겼다. 이적은 놀이공원에 버려진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적과 절친하나 그에게 까칠하게 대하기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정재형(43)은 이 곡을 처음 듣고 울기도 했다.
"아이를 버리는 날, 좋은 옷 입히고 솜사탕 같은 것 하나 들게 하고, 부모가 사라져 버리잖아요. 어릴 때 이와 관련된 일들을 신문과 드라마를 통해 접했는데 그 이미지가 컸어요. 사랑에 버려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남녀 사이에서 철석 같이 믿었는데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절망, 그런 것과 통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여러 번 나눠 녹음 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고, 결국 어느날 '원테이크'로 녹음한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3월께 앨범의 80%가 완성돼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모니터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택하더라고요. 그런 일도 드물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지만, 요즘 가요계에 어울릴 지는 의문이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음원차트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낯설 수 있죠. 그런데 제 정서을 전달하는 곡이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듣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곡 '사랑이 뭐길래'는 래퍼 타이거JK(39)가 랩을 만들어 피처링 했다. 록의 작법과 일렉트로닉의 문법이 조화를 이뤘다. 트렌디한 노래이므로 데뷔 때부터 트렌디 사운드의 음악을 하지 않은 이적에게는 다소 낯설다. "지금의 트렌드를 제 방식대로 섞고자 했어요. 싸이에게 이런 노래를 쓰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에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코가 석자라면서 거절했요. 하하."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살입니다. 20년 전을 생각하면 엊그제 같은데 말예요. 눈을 깜빡하면 예순일 것 같아요. 삶이 긴 줄 알았는데 짧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때도 노래를 하고 있을까, 제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담았어요."
지난 11일 가수 정인(33)과 듀엣으로 부른 '비포 선라이즈'를 미리 공개했다. 1980년대 팝발라드를 표방한 사운드다. "우린 취했고 그 밤은 참 길었죠. 나쁜 마음은 조금도 없었죠. 실끝 하나로 커다란 외툴 풀어내듯. 자연스러웠던 걸. 우린 알고 있어요" 등 다소 성숙한 노랫말이 이어진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과거에 사랑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곡이에요. 닭살스럽고 뽀송뽀송한 곡이 아닌, 성숙한 감성의 듀엣곡도 있었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사를 썼어요. 어떤 의미에서 아슬아슬하기도 한데, 어덜트 컨템포러리라고 할까요. 우리 가요의 가사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른들이 들을 수 있는 노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적이 여성 가수와 듀오를 이룬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앞서 패닉 2집 '밑'의 수록곡 '불면증'에서는 당시 '삐삐밴드'의 보컬 이윤정(37), 솔로 2집 '2적'의 수록곡 '어느날'에서는 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39)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두 곡은 기괴하거나 음산한 곡으로 역시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비포 선라이즈'는 90년대 말 유행했을 법한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남자 키의 곡이라 여자가 소화하기 어려운데 정인씨라 소화한 것 같아요. 정인씨랑 녹음하면 소리를 밀어내는 방식이 잘 맞아요. 동물적인 느낌이 참 좋아요. 특히 3절에서 뒤엉킬 때의 에너지가요."
앨범에서는 이밖에 록페스티벌 현장을 떠올리면서 만든 청량한 록 '뜨거운 것이 좋아', 영국 록밴드를 연상케하는 곡으로 각종 사운드 이펙트가 조화를 이룬 '뭐가 보여', 댄서블한 비트와 록 음악이 만난 '숨바꼭질', 가장 실험적인 곡으로 패닉 시절을 떠올리는 '병',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노래로 일렉트릭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쓸쓸히 얹힌 목소리가 일품인 '고독의 의미'도 주목할 만하다.
'병'은 이적이 정규 형식을 붙잡게 해준 곡이다. 이런 실험적인 곡을 디지털 싱글로 내면 무모하지만, 정규 앨범에 담으면 숨통이 트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가 앨범에 이야기를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이런 앨범 형식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남녀 관계에서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고독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앨범이다. 디자이너 장성은이 미술가 추종완의 작품들로 디자인한 앨범 재킷의 그로테스크함도 이런 분위기를 거든다. 이런 느낌이 앨범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모양새다.

팬들이 이번 음반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전 앨범은 통속적인 사랑 노래를 하는 것이 모토였어요. 이번에는 그런데 상투적이 느낌이 나면 다 버렸죠. 기존에 어쿠스틱한 것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어휘를 쓰고자 디지털 요소도 있고 다양해요. 이전 것에서 필요한 것은 쓰되 제 앨범을 통합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어쿠스틱 사운드만 유지하면, 정체하고 안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사운드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래퍼 김진표(36)와 함께 한 패닉과 싱어송라이터 김동률(39)과 함께 한 듀오 '카니발', 피아니스트 정원영(53)과 작곡가 겸 음악감독 정재일(31) 등과 결성한 '긱스' 등을 거친 이적은 자신이 "집중력과 지구력이 부족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접고 가자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됐다"며 웃었다.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또 엄청나게 다양하지는 않더라고요. 사운드의 통일성이 있고요. 어려운 곡들이 뒤에 있고, 쉬운 곡들이 앞에 있는 것은 폼 잡는 곡들이 앞에 있으면 고압적일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앨범에 모든 것을 담았느냐, 그렇지는 않더라도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 담고자 했어요."
꾸준히 앨범을 낼 수 있 비결은 "한번도 빵하고 뜬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여성들은 김동률씨를 좋아하고, 웃긴 것은 유희열 형에게 안 되고. 예능은 존박이 있고. 항상 저는 메인으로 빛을 보지 못해요. 하하하. 패닉 1집 판매량이 60만장인데, 그때도 톱10에 못 들었어요. (잘 나가던) 그때조차 톱스타가 아니었죠."
소모되지 않은 것 같다. "예능 PD님들이 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2, 3년간 전 국민이 아는 곡을 연달아 쓰고 나면, 그 작곡가가 어떤 곡을 써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은 곡이라고 여겨지죠. 투수가 투구수를 조정하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한편 이적은 12월 6, 7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5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대극장의 웅장한 스케일에 맞춘 시각적인 규모와 역동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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