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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8000명 듣는 법무부 성범죄자 강의…"교육이 아닌 치료"

등록 2017.11.08 11: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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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담 통해 왜곡된 성의식 바로잡아…수업 중 눈물도
"단순 강의보다 치료에 방점"…교육 후 재범률 낮아져

【수원=뉴시스】법원에서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를 명령받은 수강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2017.11.08 (사진=수원준법지원센터 제공)

【수원=뉴시스】법원에서 성폭력 치료 강의 이수를 명령받은 수강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2017.11.08 (사진=수원준법지원센터 제공)


【수원=뉴시스】김도란 기자 = 8일 오전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준법지원센터 강의실.

 성범죄를 저질러 치료 강의 이수 명령을 받은 15명의 남성이 네모난 칸이 여러 개 그려진 종이에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쓰고 있었다.

 공연음란부터 강제추행, 카메라 촬영 등 수강생들이 저지른 범죄는 제각각이었지만 오게 된 이유는 비슷했다. 한순간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잘못된 행동을 했던 것.

 수업을 맡은 준법지원센터 김유미 주무관이 "이제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에 체크를 해보세요. '이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좋았겠다' 하는 곳에 표시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자, 남성들은 한숨을 쉬며 하나둘 펜을 들었다.

 김 주무관은 이어 남성들에게 적은 내용을 발표하게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등 각자 후회하는 내용과 자신의 범죄를 발표하면서 남성들은 부끄러워하기도, 씁쓸해하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발표 내용을 두고 서로를 평가하고 조언을 건넸다. 다른 사람의 범죄 내용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 다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강생들은 자연스럽게 내 행동이 어떤 점에서 왜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한 수강생은 후회로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했다.
【수원=뉴시스】법무부에서 만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매뉴얼. (뉴시스 자료사진)

【수원=뉴시스】법무부에서 만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매뉴얼. (뉴시스 자료사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이 도입된 지 올해로 6년.

 2012년 정보 전달식 강의로 처음 시작된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은 최근엔 성범죄자들이 가진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고 충동적 행동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치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은 전국 10곳 수강집행센터에서 주로 진행된다. 수강생은 대부분 성범죄를 저질러 법원에서 이수 명령을 선고받은 사람들이다. 남성이 대부분이지만 100명 중 1~2명꼴로 여성도 있다.

 법원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최소 40시간에서 최대 200시간까지 이수 명령을 내리는데, 지난해 기준 전국적으론 8386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수원준법지원센터에선 한해 1200여명의 수강을 집행한다.

 일주일에 한 번 8시간씩, 5주에 걸쳐 듣는 강의는 심리상담과 건강한 성교육, 인지적 왜곡 인식하기, 피해자 고통 인식하기, 변화를 위한 자기조절 연습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법무부는 효과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기본적인 수업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운영 중이다.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수강생들은 비슷한 성범죄를 저지른 다른 수강생들과 소규모 집단을 이뤄 자신의 범죄를 돌아보고, 반성한 뒤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찾아 문제를 고치는 과정을 겪는다.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여러가지 워크 시트와 심리 치료 기법을 동원한다. 강사들의 목적은 성범죄자들이 갖고 있는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행동을 교정해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끝까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말하지 않고 수업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처지인 수강생들과 심리적 동질감을 느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고 김 주무관은 설명했다.

【수원=뉴시스】수원준법지원센터 전경 (뉴시스 자료사진)

【수원=뉴시스】수원준법지원센터 전경 (뉴시스 자료사진)


 실제 성폭력 치료 강의를 들은 사람의 재범률은 강의를 듣지 않은 성범죄자에 비해 크게 낮아 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고려대 정유희 박사 논문에 따르면 성폭력 치료 강의를 듣지 않은 성범죄자는 122명 가운데 24명(16.4%)이 1년 이내 다시 범행했지만, 강의를 들은 성범죄자는 124명 가운데 4명(3.1%)만이 재범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재범 횟수도 강의를 듣지 않은 집단의 경우 23회였지만 강의를 들은 집단은 0.4회에 그쳤다.

 김 주무관은 "심리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수강생이 많다"며 "치료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도 강사들이 개별적으로 수강생과 연락하면서 사회로의 복귀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자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재범을 막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게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성범죄 전력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그 또한 사회적 손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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