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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린, 독자적 생태계…'고급 가요'의 주체적 영토

등록 2026.08.06 08:17:21

대세 인디펜던트 뮤지션 주혜린 인터뷰

올해 CJ문화재단 '튠업' 27기 뮤지션 선정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증명해 낸 진짜 '가요'의 힘

7일 CJ아지트 광흥창서 '튠업 밋츠 프레시 파인즈 VOL. 3' 공연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독립(independent)이 곧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 시대, 자본의 거대한 기구(機構) 바깥에서 자신만의 영토를 묵묵히 일구는 아티스트를 목도하는 일은 숭고하다. 거대한 K-팝 생태계가 천문학적인 자본과 정교한 기획으로 대중의 감각을 선점할 때, 싱어송라이터 주혜린은 오직 자신의 내밀한 관찰과 정직한 벼림으로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울림이 되는' 미학적 기적을 증명해 낸다.

주혜린의 음악을 설명할 때 흔히 R&B나 팝이라는 서구적 장르명이 동원되지만, 그의 소리를 오래 매만져온 이들은 안다. 그의 사운드 저변을 흐르는 진짜 정체성은 바로 품격 있는 '우리의 고급 가요'라는 사실을. 유재하와 이영훈 그리고 롤러코스터와 윤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음악의 기품 있는 '정서적 유산'이 그의 목소리를 거쳐 지극히 세련된 현대적 질감으로 변주된다. 품격 있게 귀에 감기는 목소리, 청자의 뇌리에 순식간에 각인되는 유려한 선율, 그리고 일상의 미시적인 파편을 공감각적인 풍경으로 재조형하는 한국어 가사는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이분법적 길항을 유연하게 뛰어넘는다.

타인의 서사를 기술적으로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생적인 '원형'을 직접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 펜과 건반을 쥐었던 그의 출발점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핍의 자리에 바로 선 주혜린은 이제 거대한 대형 기획사의 외피 없이도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유기적인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주체적인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당장의 얄팍한 상업적 이윤에 현혹돼 자신을 소모하거나 무분별하게 복제하는 대신, 단종의 절제를 택할 줄 아는 날카로운 자기 객관화와 엄격한 자기 확신. 타인의 욕망을 구걸하는 가짜 음악이 범람하는 시대에, 주혜린이 벼려낸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단한 신념이자 고유한 지평이다.

주혜린은 EP '쿨(COOL)'(2024)로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올해의 신인, 최우수 R&B & 소울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EP '스테레오(stereo)'(2025)로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수록곡 '비지 보이(Busy Boy)'로 최우수 R&B & 소울 노래 부문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올해 CJ문화재단 인디 뮤지션 지원 프로그램 '튠업' 27기라는 든든한 날개를 달고, 제 음악의 키를 직접 쥔 채 차가운 자본의 바다를 미학적으로 항해하는 그를 만났다.

-올해 CJ문화재단 '튠업(Tune Up)' 뮤지션으로 선정됐어요. 인터뷰 중인 이곳 CJ아지트 광흥창은 튠업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한데, 튠업에 선정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경연이나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연스레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홀로 오래 남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저만의 프로덕션을 자유롭게 꾸려가면서도 이를 지지해 줄 단단한 기반이 필요했는데, 마침 '튠업'을 알게 돼 지원했습니다. 한 번에 선정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무척 운이 좋았습니다."

-특정 대형 기획사나 레이블에 들어가실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독자적 활동을 하시며 부딪히는 불편함도 있으실 텐데요.

"인디펜던트가 곧 언더그라운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훗날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기획사에 들어갈 의향이 없습니다. 활동하면서 아직 외부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한 적이 없습니다. 이동이나 활동 전반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히 수고롭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각기 다른 질감의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제게는 지금 겪는 이 주체적인 불편함이 가장 편안합니다. 일단 프로덕션을 꾸리는 일 자체에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굳이 회사라는 외피를 두르지 않아도 주변에 훌륭한 팀원들이 많아, 법인만 없을 뿐 사실상 하나의 유기적인 회사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곁에 든든한 동료들이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음악 산업 내 자본 규모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혜린 씨처럼 재능 있는 뮤지션이 대형 기획사의 프로모션이나 제작비 지원을 받는다면 대중에게 더 빨리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대형 기획사로부터 거창한 제안을 받은 적이 없기에 대단한 결심을 품고 기획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 가수에게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지니는 의미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기획사라는 창구를 통해서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자본의 격차가 존재할지언정 활동의 반경은 무한히 확장되었습니다. '튠업' 같은 지원망도 존재합니다. 기획사에 소속된 이들조차 튠업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그들 역시 이런 방식의 서포트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방증입니다. 회사가 무조건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다면 저 역시 그 길을 택했겠지만, 지금 저와 동료들은 그 명제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자본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K-팝 그룹의 생태계와는 궤가 다릅니다. 솔로 아티스트는 스스로 영리하게 사유하고 기획한다면, 거대한 자본 없이도 자신이 닿고자 하는 지점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단단한 주관이 무척 멋집니다.

"주변 동료들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오히려 회사에 소속돼 있다가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기필코 홀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하는 솔로 아티스트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튠업' 같은 거대한 서포트가 없더라도, 자신만의 자유도를 쥐고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밀착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현시대에는 훨씬 유리하다고 보는 듯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인디 신(scene)에도 규모를 갖춘 회사가 존재하지만, 혜린 씨 말씀처럼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등 독자적으로 뻗어 나갈 창구가 무한히 넓어졌으니 재능만 있다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폭넓은 독립 아티스트 지원을 제공하는 튠업이 가장 훌륭한 파트너가 된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전폭적인 서포트를 제공하면서도 불필요한 조건을 억지로 덧씌우지 않습니다. 홀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에게 절실히 필요한 핵심 요소들만 정확히 짚어 지원해 주십니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곳이라 느꼈습니다."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튠업 지원을 통해 혜린 씨의 이름이 훨씬 넓게 알려질 것 같습니다. 정작 본인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시는 듯한데, 최근 정준일 씨를 인터뷰했을 때 '크게 될 아티스트', '최근 본 아티스트 중 단연 뛰어나다'며 혜린 씨를 콕 집어 극찬하시더라고요. 평론가와 음악 팬들은 이미 혜린 씨를 차세대 스타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준일 선배님이 저를 아실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차세대 스타'라는 수식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제게는 무척 낯설고 어색한 단어입니다."

-최근 공연에서 롤러코스터 '너에게 보내는 노래' 커버 무대도 훌륭했습니다. 최근 한 매거진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언니네 이발관, 윤상, 박혜경 님을 꼽으셨던데, 본인 나이대에서 흔히 듣는 음악은 아닌데요.

"부모님이 즐겨 들으셨던 음악입니다. 부모님이 사주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처음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장 먼저 닿은 가요가 그분들의 곡이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은 조금 더 자란 뒤에 알게 됐고, 박혜경 님과 윤상 님의 앨범은 유년기에 가장 처음 마주한 음악이라 지금도 남다른 애착을 품고 있습니다."

-혜린 씨 음악은 사운드나 창법을 매우 세련되게 직조해 내시지만, 그 저변의 정서는 이른바 '우리 가요'의 감성과 몹시 끈끈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덕분에 청년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본인도 이러한 강점을 인지하고 계신가요.

"제 음악이 R&B 등의 장르로 소개될 때 오히려 짙은 어색함을 느낍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당당히 '가요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가요라는 단어의 질감을 다르게 해석할 것 같아 대개 '팝' 정도로 에둘러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가사를 거의 100% 한글로 쓰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온전한 한국 가요를 만들고 지향하고 있다고 늘 되뇌고 있습니다."

-가사도 훌륭하고 정서도 깊어서 '요즘 K-팝이 아닌 뚝심 있는 진짜 가요를 하는 아티스트'로 혜린 씨를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신 결정적 계기가 궁금합니다.

"노래 부르는 행위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가수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노래방에서 친구들 중 노래를 제일 잘하니까 스스로 정말 대단한 재능인 줄 알았습니다. 잘하니까 자연스럽게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짐작했습니다. 다른 분야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학창 시절부터 오직 음악만 품었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데뷔 과정은 어떠셨나요.

"대학교에 진학하며 지금 함께하는 팀원들을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곡을 쓰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도 그저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맹목적인 열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곡을 하고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과 매일 호흡하다 보니, 제 곡을 직접 쓰지 않고서는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는 작곡가와 가수의 롤이 명확히 분리돼 있어 당연히 타인에게 곡을 받을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곡의 출처가 프로모션의 핵심 요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시대의 기류가 바뀌면서, 가만히 기다리는 자에게 곡이 주어지는 시대와는 멀어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형 작곡이었던 셈인가요.

"맞아요. 아무도 제게 기꺼이 좋은 곡을 내어주지 않을 테니, 제가 사랑하는 노래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필사적으로 스스로 곡을 써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곡 쓰는 행위가 즐거워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 곡을 짓는 방식을 묻고 미디(MIDI) 프로그램을 처음 설치해 보며, 악기도 난생처음 짚어가며 더듬더듬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몰두해 보니 노래하는 것보다 곡을 쓰는 창작의 과정이 훨씬 흥미로워서 지금까지 작사와 작곡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 노래하는 것보다 흥미로우셨나요.

"노래라는 매체는 타인이 축조해 놓은 곡과 메시지를 얼마나 기술적이고 감정적으로 훌륭히 모사해 전달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반면 곡을 쓰면 제가 직접 그 이야기의 뼈대와 '원형'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CJ문화재단 제공) 2026.08.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CJ문화재단 제공) 2026.08.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곡들의 서사와 기승전결이 뚜렷합니다. 한국어 가사의 유려한 쓰임도 훌륭하지만, 가사만으로도 선명한 풍경이 스케치되는 공감각적 묘사가 탁월합니다. '미장원'만 들어봐도 마치 그 공간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생생함이 이는데요. 작사하실 때 이러한 풍경과 심상을 어떻게 길어 올리시나요.

"대다수 뮤지션이 그렇듯 철저히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상상 속의 허상을 작위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똑똑히 목도하고 직접 감각한 것을 쓰기 때문에, 그것을 청자에게 올곧이 전달하기만 해도 충분히 창의적으로 가닿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의 히스토리는 저마다 고유하고 미시적이지만, 인류의 삶이라는 큰 줄기는 결국 닮아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변주만 주어도 수많은 이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뼈저리게 공명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는 명제와 정확히 조응하네요.

"원래는 그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억지로 보편적인 서사를 직조하려 애쓸 때는 항상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경험의 파편들을 세밀하게 가다듬어 세상에 내놓으려 노력할 때, 그것이 역설적으로 가장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울림이 된다는 것을 곡을 지으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2021년 데뷔곡 '키즈(Kids)'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과 겹침을 담아내셨나요.

"저는 가사를 쓸 때 결코 의도적으로 힘을 주어 쓰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과거에 키즈카페를 운영하셔서 어릴 때 그곳 카운터를 자주 지켰습니다. 당시 사랑에 관한 가사를 구상 중이었는데, 키즈카페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끊임없이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살피더라고요. 그 본능적인 시선이 연애의 감정과 무척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스스로는 완벽하게 유희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지금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지 애타게 갈구하는 모습 말입니다. 성인이 돼서도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의 행동 양식을 깊숙이 관찰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이 주어졌기에 그 경험과 단어를 기필코 가사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텍스트 자체만 보면 흔한 사랑 노래처럼 읽힐 수 있지만, 제목을 '키즈'로 명명함으로써 저의 사적인 관찰 경험, 즉 아이들의 맹목적인 애정 갈구와 맞닿아 있다는 은밀한 힌트를 심어두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단어들을 혜린 씨만의 시선으로 포착해 내시니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습니다. 게다가 핵심을 찌르는 논리적인 화법 또한 몹시 인상적인데요. 이러한 간결한 언어 구사력은 어떻게 체화된 건가요.

"유년기부터 활자를 가까이하며 책을 탐독했는데, 성인이 된 지금에야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자산인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예고 없이 돌발적으로 발화해야 할 때는 늘 두려움이 앞서지만, 기자님처럼 알아듣기 쉽다며 끄덕여 주실 때마다 남몰래 안도합니다. 어릴 때 책을 읽고 나면 주변 어른들에게 줄거리를 흥미롭게 요약해 추천하는 것을 무척 즐겼습니다. 상대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단 두 줄로 핵심을 간파해 전달하려는 묘한 강박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층층이 쌓인 듯합니다. 그저 활자를 가까이한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전시하고 뽐내고 싶었던 치기 어린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그때마다 어른들이 요약에 탁월하다며 치켜세워 주셨습니다."

-작곡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사운드나 멜로디의 선율을 축조하실 때는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시나요.**

"작곡에 있어서는 축적된 경험치에 비해 본능적으로 감각하는 영역이 꽤 큰 편입니다. 타인에 비해 유려한 멜로디를 감별해 내는 직관이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치열하게 벼려내지 않으면 순식간에 마모될 감각이라는 것도 뼈저리게 압니다. 유년 시절부터 밀도 높은 훌륭한 음악들을 집중적으로 탐닉하며 나름의 멜로디 기준이 성립됐는데, 언어로 명확히 규정하긴 어렵지만 결국 '다수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는 멜로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질감의 멜로디를 뜻하시나요.

"고유한 예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들었을 때조차 반사적으로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 한 번 듣고 선율을 완벽히 복기하기는 어려울지언정, 두세 번 반복됐을 때는 곡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핵심 멜로디만큼은 청자가 기필코 따라 부를 수 있어야 음악이 온전히 가닿은 것이라 믿습니다. 청자의 입장에서 '내가 이 멜로디를 따라 부르고 싶은가'에 철저히 주안점을 두고 작업합니다."

-'미친 건가'를 들었을 때 단 두 번 만에 멜로디가 각인돼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습니다.

"사실 '미친 건가'는 멜로디와 코드의 전개가 몹시 까다로운 곡입니다. 리듬 자체도 평이해 보이지만 교묘하게 정박을 빗겨나가는 변칙적인 리듬을 씁니다. 음악을 분석적으로 듣는 이들에게는 꽤 난해하게 다가갈 텐데, 정작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떼창을 해주십니다. 대중이 직관적으로 흡수했다면 저의 치열한 고민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퍽 다행스럽습니다."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적 텐션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탁월한 줄타기입니다. 음악 마니아들을 충족시켜 주며, 과거 이영훈이나 유재하 시절의 기품 있는 '고급 가요'를 마주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주는데요. 박준우, 구영준 작곡가를 위시한 '팀 주혜린' 동료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를 직조해 내시나요.

"대개 팀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동시다발적으로 초안을 빚어냅니다. 각자의 롤이 기계적으로 분절돼 있다기보다는, 한자리에서 유기적으로 잼(Jam) 하듯 작업이 흘러갑니다. 어떤 날은 제가 곡의 뼈대를 세우며 출발선에 서기도 하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친구가 불현듯 기타를 쥐거나 날카로운 멜로디를 툭 던지기도 합니다. '이 곡은 무조건 나의 통제하에 있어야 해'라거나 '이 파트는 반드시 내 몫이야'라는 식의 견고한 경계 없이 한데 엉켜 작업하는 것이 우리 팀의 고유한 생태계입니다."

-K-팝 그룹 '스테이씨(STAYC)'의 신곡 '투 러브(2 LOVE)' 단독 작사를 맡은 작업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스테이씨 팀을 관할하는 A&R 부서 관계자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무척 경쾌하고 신선한 경험이 될 것 같았어요. 저의 첫 K-팝 아이돌 외주 작업입니다. 운 좋게도 제 작사 콘셉트를 아주 흡족해하셨고, 첫 의뢰 작업임에도 최종 채택돼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멜로디와 가사의 밀착도가 대단했습니다. 곡이 좀 더 흥행을 기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인데, 기획사 측에서는 어떤 가능성을 엿보고 혜린 씨에게 펜을 맡겼다고 하시던가요.

"담당 임원께서 평소 제 가사의 질감을 깊이 애정한다고 하셨습니다. 통상 아이돌 그룹의 가사는 정해진 세계관이나 콘셉트가 날카롭게 부각되도록 재단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최근 아이돌 프로덕션의 기류가 다변화되면서 경직된 콘셉트보다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숨결을 불어넣고 싶어 하시는 듯했습니다. 제게도 그 어떤 제약이나 틀 없이 오직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활자를 나열해 달라는 주문을 하셨습니다. 오히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니 사유의 심연은 훨씬 깊어졌지만, 덕분에 관습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층위의 주제를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곡을 다시 주조해 낸 리메이크 앨범의 발상도 몹시 신선했습니다. 통상 리메이크는 타인의 명곡을 재해석할 때 쓰는 명명법인데, 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기원은 어디인가요.

"저희는 으레 밴드 세트로 무대에 오르기에, 라이브에서는 원곡의 원형을 완벽히 해체하고 재조립한 다수의 편곡 버전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곡을 주도해 준 세션 동료들의 기량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원곡을 변주해 내는 이 우아한 방식을 정식 앨범으로 박제하지 않으면 몹시 통탄할 것 같았습니다. 초기엔 '리메이크'라는 거창한 수식 없이 가볍게 한두 곡씩 녹음을 떴는데, 불현듯 '리메이크'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기존의 관습적인 이미지를 조각내어 포획해 오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의 작업물을 해체하고 다시 쌓아 올리면서 이 타이틀을 과감히 내건 아티스트는 적어도 제 시야엔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곡을 가다듬을 땐 대개 '리마스터'나 '리믹스'라 칭하기 마련인데, 이를 '리메이크'라 명명한 전복적 사고가 짜릿합니다.

"타인의 곡을 저만의 문법으로 통역해 낸다는 리메이크의 통상적 정의를 과감히 제 음악의 영토로 끌어들이면, 대중이 훨씬 입체적인 쾌감을 느낄 거라 확신했습니다. 물론 고작 몇 장의 앨범을 낸 신진 가수가 제 곡을 다시 빚어낸다는 것이 자칫 지독한 오만으로 비칠까 우려도 했지만, 그 발상 자체가 잉태하는 기획의 쾌감이 압도적이어서 밀어붙였습니다."

-리메이크의 일본판 LP 발매와 뒤이은 품귀 현상의 서사도 흥미진진합니다.

"감사하게도 한국판 피지컬 바이닐이 먼저 동이 났습니다. 저는 앨범이 절판되더라도 즉각적인 재발매는 철저히 지양하는 편입니다. 당장의 얄팍한 이윤을 좇아 복제품을 찍어내기보다는 언제나 다음 스텝의 창작물에 온전히 몰입하고, 대중의 시선 역시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들끓는다고 섣불리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그 갈증을 잠시 유보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장기적인 생명력을 위해 훨씬 영리한 판단이라 여겼습니다. 그렇게 한국판 바이닐을 뚝심 있게 단종시킨 후, 일본의 굴지 음반사인 디스크 유니온 측에서 먼저 일본판 발매를 타진해 왔습니다. 한국판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대신 '일본판'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성으로 접근한다면,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제게 엄청난 외연 확장의 경험이 될 거라 직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판을 아득히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앞서 한국판의 재발매를 억제한 절제력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절제와 당참이 절묘한 길항을 이룹니다. 멈춰야 할 때를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한 번 설정한 항로에 대해서는 흔들림 없이 노를 젓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외부의 시선에는 어떻게 맺힐지 모르겠으나, 제 내면에는 나름의 단단하고 정교한 로직이 세워져 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다시 꺼내 들어도 좋을 만한 시기가 훗날 도래하겠지만 당장은 결코 아닙니다. 외부의 수요와 갈망만으로 제 안의 견고한 로직을 함부로 허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주혜린. (사진 = 뮤지션 제공) 2026.08.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날카로운 자기 객관화입니다. 일본판 성공 이후 '쿨'(2024), '스테레오'(2025) 등 이전 EP에 대해서도 일본 발매 제안이 쏟아졌을 텐데요.

"리메이크 앨범 일본판이 호평 속에 판매된 직후, 실제로 디스크 유니온 측에서 제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일본판으로 이식하자는 제안을 건네왔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거절했습니다. 저의 음악적 뿌리와 정체성은 철저히 한국에 안착해 있는데, 단지 상업적인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제 모든 앨범을 일본판으로 찍어내는 행위는 이 프로젝트가 지닌 본질적인 심미성을 처참히 훼손하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제가 리스너의 입장이라도 그러한 노골적인 상업적 행보에는 곧장 환멸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일본에서의 활동 자체는 너무나 즐거운 이벤트이자 긍정적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해외 아티스트와의 연대 등 열린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탐색 중이지만, 오직 맹목적인 이윤 창출만을 위한 무분별한 앨범 복제는 앞으로도 배격할 것입니다."

-아티스트로서의 꼿꼿한 주체성과 본인의 창작물을 경외할 줄 아는 태도입니다. 만약 대형 기획사의 자본 논리 아래 있었다면 당장의 흑자를 위해 무조건 강행했을 프로젝트였을 텐데, 이러한 주체성을 사수하기 위해 '인디펜던트 뮤지션'의 험로를 택하신 건가요.

"현재 제가 딛고 있는 규모의 영토에서는 제 음악을 세상에 흩뿌리고 활동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제가 직접 키를 쥐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날카롭고 유효하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연륜의 테가 굵어지고 짊어져야 할 세계의 부피가 커지면, 제 머릿속의 청사진만으로는 벅찬 시기가 필연적으로 당도할 것입니다. 그때 저보다 더 넓은 시야로 새로운 차원의 항로를 제시해 줄 훌륭한 길잡이나 회사를 조우한다면, 그들과 기꺼이 손잡고 연대할 용의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내리는 이 방식이 가장 최선이라 감각합니다."

-그 중심에 음악이라는 절대적인 코어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에, 혜린 씨는 훗날 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실 겁니다. 지금의 치열한 태도만 잃지 않는다면 숱한 고비도 묵묵히 넘기실 텐데, 마침 '튠업'이 완벽한 시기에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셈이네요.

"맞습니다. 지금도 숱한 프로젝트를 굴리며 직면하는 장벽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튠업 뮤지션의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심리적 족쇄가 완벽히 풀려난 기분입니다. 웬만한 대형 기획사를 상회하는 전폭적이고 집요한 서포트를 등에 업으니 '소속사가 없다'는 막연한 결핍이나 고립감은 이제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에 숱하게 문을 두드린 재능 있는 동료 아티스트들이 즐비한데, 너무나 운명처럼 제게 손을 내밀어 주셔서 그저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훗날 튠업의 상징적인 얼굴로 전면에 나서실 듯합니다. 오는 7일 CJ아지트 광흥창에서 CJ문화재단과 스포티파이 코리아가 공동 주최하는 '튠업 밋츠 프레시 파인즈(TUNE UP MEETS FRESH FINDS) VOL. 3'에서 밴드 '토카이'와 공연합니다. 이 무대는 어떤 질감으로 준비하고 계신가요.

"평소처럼 묵묵히 칼을 갈며 준비하되, 세트리스트의 배열에 소소한 변칙을 뒀습니다. 튠업과 스포티파이가 합작한 몹시 흥미로운 기획이라 내면에 품고 있는 기대도 남다릅니다. 평소 갈망하던 형태의 무대였기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벼려내고 있습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자기 확신을 불어넣으며 앨범의 마침표를 찍는다'고 하셨던데요.

"곁에 있는 훌륭한 동료들의 철학이 깊게 스며든 마인드 세팅입니다. 제 곁을 지키는 이들은 저보다 훨씬 짙은 농도의 경험을 축적한 이들이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무척 능숙합니다. 눈앞의 재화에 현혹돼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는 가짜 음악에 결코 타협하지 않더라고요. 생계를 위해 영리하게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도, 음악 본연의 카타르시스가 마모되지 않도록 삶의 밸런스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그들의 성숙한 철학을 매일 흡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앨범 발매나 콘서트 계획을 넌지시 짚어주신다면요.

"아직 구체적인 발매일이나 단독 공연의 일정을 선명한 활자로 못 박기는 조심스럽지만, 올해 남은 굵직한 무대들이 여럿 대기 중이며 몹시 흥미로운 협업 프로젝트들도 치밀하게 세공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활동의 결들로 올 하반기의 여백을 빽빽하게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차기작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작업 역시 단 하루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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