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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NCT 127, 빠르게보다는 멀리 가

등록 2026.09.19 13:30:00

5人 한정판 정규 7집 '블링이(Blingy)' 리뷰

데뷔 10주년 음반…인원 변동과 군백기 정면 돌파

레이지부터 올드스쿨 힙합까지…무대 위 육체성으로 빚어낸 9곡

군복무 도영·정우 목소리 담긴 '127 밀리언 마일스' 등 원팀 결속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대상의 물리적 성질뿐 아니라 그 내부의 윤리까지 바꾸어놓기에 족한 길이다. 유행의 주기가 계절보다 가파르게 교체되는 K-팝 신에서, 한 팀이 온전히 자신의 고유명사를 지켜냈다는 것은 우연한 생존이라기보다 온몸으로 버텨낸 단단한 노동의 축적에 가깝다.

동경 127도 서울을 출발선 삼아 소리의 영토를 넓혀온 SM엔터테인먼트 그룹 '엔시티(NCT) 127'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정규 7집 '블링이(Blingy)'는 안팎의 거친 굴절과 결핍의 계절 한가운데에서 도착했다. 인원의 변동과 군 복무로 인한 공백이라는 물리적 한계 앞에서, 이들이 택한 전략은 결손을 가리는 손쉬운 봉합이 아니다. 오히려 결핍을 형식적 긴장감으로 치환하며, 지나온 10년의 마모를 단단한 육체성과 고유의 '네오(NEO)' 미학으로 정면 돌파한다.

타협 없는 '네오'의 소리…무대로 증명하는 육중한 신체성

NCT 127에게 음악은 머리로 조립한 관념적 장식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뼈와 근육으로 부딪쳐 체화하는 구체적인 실체다. 이번 앨범 전반부를 관통하는 타이틀곡 '블링이(Blingy)'를 비롯해 '피냐타(Piñata)', '스텝업(Step Up)', '아이케이알(IKR)'은 대중적 합의선 뒤로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고집스러운 자부심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블링이'는 디스토션 신스와 강렬한 드럼 비트, 챈팅 코러스가 교차하는 힙합 트랙이다. 레이지와 덥스텝의 파괴적인 요소를 팀 특유의 질감으로 버무렸다. 곡 안에서 반복되는 '빠르게보다는 멀리 가'라는 선언은 조급한 트렌드 추종을 거부해 온 팀의 호흡법을 웅변한다. 불꽃과 열기, '타오르는 빙하'라는 모순형용의 심상을 가로지르며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기어코 온도를 뿜어낸다. 멤버 태용이 안무 제작에 참여해 완성한 퍼포먼스는 타격감 넘치는 동작과 완급 조절의 대비를 통해, 이들의 음악이 결국 무대라는 물리적 신체를 통과할 때 비로소 완성됨을 재확인시킨다.

록과 힙합의 파열음을 축제적 에너지로 전환한 '피냐타'와 90년대 올드스쿨의 묵직한 그루브를 복원한 '스텝업(Step Up)'은 이 신체적 확신을 한층 밀어붙인다. '어느 누구보다 우리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이들의 시선은 'IKR'에서 호명하는 '네오 스탠더드(NEO-standard)'로 수렴된다. 낯설고 이질적인 소리의 골조를 10년간 깎아온 자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당당함이다.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8.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결핍을 은폐하지 않는 태도…거리를 뛰어넘는 '연대의 윤리'

한 팀의 진정한 골조는 완전무결한 결합의 순간보다 결핍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서 드러난다. 마크의 탈퇴와 도영·정우의 군 복무로 마주한 5인 체제의 무대 위에서, 이들은 빈자리를 가리기 위해 무리한 분장을 덧칠하지 않는다. 막내 해찬이 "지금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한정판"이라 담담히 긍정했듯, 현재의 형상을 온전히 응시하며 '원팀'의 무게를 증명한다.

이러한 태도는 8번 트랙 '127 밀리언 마일스(127 Million Miles)'에서 비로소 정서적 응집력을 얻는다. 입대 멤버들을 포함해 7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이 팝 록 트랙은 물리적 거리감을 우주적 시공간으로 확장한다. '일곱 개의 별들 사이 새겨진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엔 네가 있어'라는 노랫말은 단순한 팬송의 관습적 위안을 넘어선다.

127이라는 상징적 좌표를 '1억 2700만 마일'이라는 아득한 거리로 밀어내면서도 '어디서든 우린 함께'라는 확신을 건네는 것은, 서로 다른 궤도를 돌지라도 같은 중력장 안에 묶여 있다는 상호 신뢰의 발현이다. 타자의 부재를 고통스러운 공백으로 방치하지 않고 기억과 약속의 끈으로 단단히 결속하는 태도, 즉 결핍을 윤리적 연대로 전환해 내는 성숙함이 여기에 있다. 서울이라는 구체적 장소성을 직조한 '레거시' 역시 한강과 남산의 좌표 위에 새겨진 시간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축적된 유산이 됐음을 선언한다.

시간의 마모를 응시하는 자의 정직한 독백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NCT 1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09.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앨범의 후반부에 놓인 '데이 애프터 데이(Day After Day)'와 마지막 트랙 '아이 민, 잇츠 어바웃 타임(I mean, It’s about time)'은 10년의 풍화를 온몸으로 견뎌낸 아티스트만이 닿을 수 있는 내밀한 고백록이다. 쟈니와 태용이 작사에 참여한 '아이 민, 잇츠 어바웃 타임'에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군중의 환호가 걷힌 자리에서, 이들은 스스로에게 가장 아프고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억 때문에 방향을 잃은 적도 있고 / 기억을 밟고 더 높이 올라서기도 해 / 누군간 기억 속의 날 그리워한다던데 / 내가 변했나 그게 나쁜 거야?"('아이 민, 잇츠 어바웃 타임')

변화에 대한 불안과 흘러간 원초적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에둘러 포장하지 않는 태도는 담담하면서도 묵직하다. 과거의 빛나는 영광 속에 박제되기를 거부하고, 시간의 마모와 상처를 피하지 않고 통과해 온 자만이 '내가 변한 것이 나쁜 것이냐'고 자문할 수 있다. 상처마저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오래된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고유의 속도를 찾아가는 '데이 애프터 데이'의 노랫말처럼,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정규 7집 '블링이'는 지난 10년 동안 쌓아 올린 성공의 트로피를 전시하는 앨범이 아니다. 소리의 축조에 한 치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는 정신, 불완전한 상태 속에서도 서로를 호명하는 연대의 감각, 그리고 시간의 풍화를 긍정하며 다음 기억을 기약하는 단단한 의지가 아홉 개 트랙의 행간마다 굵직하게 박혀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안식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좌표임을, NCT 127은 가장 'NCT 127다운' 거친 숨결과 땀방울로 증명해 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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