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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日징용 육성' 증언

등록 2026.09.22 16:08:26수정 2026.09.22 17:42:25

이재용 씨 유족, 밀리환초 강제동원 녹음테이프 제공

강제노동·미군 공습 등 참상 생생…"역사로 기억되길"

[전남광주=뉴시스] 일제강점기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이재용 씨의 녹음테이프. (사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2026.09.22. photo@newsis.com

[전남광주=뉴시스] 일제강점기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이재용 씨의 녹음테이프. (사진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2026.09.22. [email protected]


[전남광주=뉴시스]양시원 기자 = 일제강점기 남태평양 밀리 섬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의 육성 녹음이 42년 만에 공개됐다.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2일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인 고(故) 이재용 씨의 육성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유족으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했다.

테이프에는 1984년 당시 75세였던 이 씨가 밀리환초 강제 징용에 대해 증언한 내용이 담겼다. 1908년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난 이 씨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3월 만 33세의 나이로 일본 해군 군속으로 강제 동원됐다.

부산항에서 일본 해군 수송선에 실린 이 씨는 5600㎞ 떨어진 남태평양 마셜제도 밀리 섬에 배치됐다. 곧바로 비행장 활주로 건설 공사에 투입된 그는 변변한 장비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에 내몰렸다.

이 씨는 녹음을 통해 "일 잘하면 조선(고향)을 쉽게 보내준다고 그랬는데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안 내보내줬다"며 "하루에 한 끼밖에 안 줬다. 죄인처럼 일을 했다"고 당시의 혹독한 강제노동 상황을 폭로했다.

미군 공습을 피해 방공호에 대피했던 상황도 증언했다.

그는 "저녁에 숙소로 들어가서 자려고 하는데 미국 사람이 공습을 피해 와 서로 먼저 방공호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가득(안이) 차버렸다"며 "문 앞까지 섰는데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씨는 1945년 4월 미군 포로가 되면서 섬을 빠져나왔다. 하와이 포로수용소에서 머문 이 씨는 1946년 1월 우라가 제네럴랜드호를 타고 하와이를 출발해 일본을 경유한 뒤 1946년 2월 인천항을 통해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딸 이주연(70) 씨는 "지난날 우리 민족이 일본 때문에 고통받았던 역사적 사실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밀리환초 사건은 태평양전쟁 말기 마셜제도 밀리환초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기아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저항하는 과정에서 집단 학살까지 이어진 비극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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