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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3억원치 마약 택배, 육포인줄 알았다는 외국인…밀수 공범일까

등록 2023.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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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대신 외국서 온 소포받은 외국인

"육포로 알아" 주장에 1심은 무죄 판결

2심은 실형 선고…수취인 가명 기재 주목

"가명은 적발시 검거 피하기 위한 조치"

뉴시스DB.

뉴시스DB.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친구를 대신해 해외에서 우편물을 수령한 외국인 A씨. 알고 보니 우편물 속엔 무려 3억6000만원 어치의 마약이 들어있었다. 가명이 적힌 우편물을 집어든 순간 A씨는 현장체포됐고,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결국 유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이 A씨를 유죄로 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진성철)는 지난달 말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태국 국적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친구인 B씨와 마약류 수입을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사건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초교 친구 B씨로부터 메신저를 통해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지를 요청받았고, 경북 소재 자신의 회사 주소를 알려줬다.

이틀 뒤 B씨는 태국에서 필로폰과 카페인 혼합물인 '야바' 2만여정을 알루미늄 호일 50개에 감싸 소분해 우편 상자에 넣었고, 이를 A씨가 보내준 주소로 국제특급 우편 발송했다.

수취인은 A씨가 아닌 가명으로 기재됐으며, 휴대전화 번호도 적혀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4월17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우편물은 세관 우편 검사과에서 마약으로 적발됐다. 경찰은 같은 달 25일 오후 5시께 근무지에서 우편물을 수령하는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불법체류 중인 친구를 위해 육포가 든 것으로 생각한 우편물을 대신 받아줬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A씨에게 마약 수입 범행에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우편물 수령 당일 A씨는 B씨로부터 온 문자·전화 모두 받지 않았다. 근무를 마친 오후 5시께에서야 이를 확인하고 B씨에게 전화를 건 뒤 우편물을 받았는데, 이 같은 행동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마약 유통자들의 행동 패턴과 다르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또한 1심은 A씨가 비전문취업자격(E-9)으로 국내에 합법적으로 머물고 있었고, 마약을 수입하다 들킬 경우 송환이 불가피한데 금전적 이익 없이 위험을 감수할만한 범행 동기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은 판단을 뒤집고 A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편물에 가명이 기재된 점에 주목했다.

B씨가 우편물에 A씨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적은 것은 범행 적발시 검거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체포 당시 B씨는 A씨와 연락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고 진술했는데, 재판부는 오랜 친구인 두 사람이 단지 연락이 안 된단 이유로 가명을 사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히려 피고인이 우편물 박스 사진을 받은 이후 친구에게 항의한 내용이 메신저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봤을 때 둘 사이에 가명으로 기재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 밖에도 5~6년간 교류가 없던 두 사람이 우편물 발송 전후로 연락이 지나치게 잦았던 점도 거액의 마약이 오고가는 데 확인용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둘 사이 주고받은 SNS상 메신저가 우편물 발송 이후 대부분 삭제됐다는 점도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또 "육포는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 굳이 우편료와 복잡한 절차를 감수하며 국제우편으로 보낼 이유가 없다"며 "이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피고인 진술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우편물을 수취한다면 마약 밀수에 중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에 따른 대가를 약속했을 것"이라며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범행에 가담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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