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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도 못 열어"…'불법촬영' 누명 쓰는 원룸촌 청년들

등록 2021.10.16 20:00:00수정 2021.10.16 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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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건물 간격…'사생활 노출' 불안 호소

인접 대지 경계선 기준 '50㎝ 간격' 합법

창문 열다 '불법촬영범' 오해 신고 접수

"정부가 치안 환경 개선에 나설 필요도"

[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뉴시스가 지난 11일 돌아본 서울 관악구 등 원룸촌 밀집 지역은 건물 간 간격이 50cm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거주자들은 '불법촬영범'으로 몰릴까봐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1.10.11. kez@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뉴시스가 지난 11일 돌아본 서울 관악구 등 원룸촌 밀집 지역은 건물 간 간격이 50cm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거주자들은 '불법촬영범'으로 몰릴까봐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1.10.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재훈 수습기자 = #1 지난해 1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원룸촌으로 거처를 옮긴 직장인 오모(28)씨는 이사 첫날부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웃 주민 중 누군가가 자신을 불법촬영범으로 오해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출동한 경찰은 휴대전화와 DSLR 카메라 등 오씨 소지품들을 확인했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한 경찰은 "이런 유형의 신고가 많이 들어오니 웬만하면 평소에도 창문을 닫고 지내라"라고 말했다.

#2 대학 졸업 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원룸촌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임모(23)씨도 더운 날 창문을 못 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창문을 통해 맞은편 건물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임씨는 "환기가 잘 안 돼 습하지만 그 날부터 화장실 창문은 아예 열지 않는다"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사생활이 노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원룸 수요가 급증하면서 1인 가구 비율 역시 매년 증가 추세지만, 적지 않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거주자들이 불법촬영 오해를 사거나 사생활 침해 우려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11일 뉴시스가 서울 동대문구, 관악구, 동작구의 대학가 자취촌 및 원룸촌 일대를 확인해보니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상당수 원룸촌 거주자들은 창문이 있음에도 마음 편히 열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증가세를 보이는 관련 범죄 통계들도 원룸촌 거주자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더한다.

경찰청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불법촬영 검거 인원은 5556명으로 2013년(2832명)에 비해 약 2배가 증가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발생 건수가 지난 2010년부터 2018년 사이 약 6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0년 1153건이었던 관련 범죄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8년 6085건으로 급증했다.

원룸촌이 많은 서울 관악구 내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경찰관 A씨는 "행인들이 호기심에 창문을 통해 몰래 내부를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거주자들은 보통 여름에 더우니까 창문을 열고 싶어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많이 시달렸다"고 전했다.

관악구에서 근무했던 경찰관 B씨도 "신림동에서 한 음식 배달원이 집주인에 대해 소문을 냈는지 다른 배달원들이 연달아 찾아와 반지하 창문을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보거나 촬영하는 일이 있었다"며 "결국 집 주인이 반지하 창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목에 철문을 설치해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고 말했다.

서울대입구역 원룸촌에서 4년째 거주 중인 신모(23)씨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옆 건물과 거리가 좁다"며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나의 생활을 염탐할 수 있을 것 같아 창문을 열기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창문도 못 열어"…'불법촬영' 누명 쓰는 원룸촌 청년들

이처럼 원룸 거주자들은 불편함을 호소하지만 건물 간격이 좁은 원룸촌의 환경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민법 제242조 1항에 의하면 원룸 건물의 경우 인접 대지 경계선을 기준으로 타 건물과 50㎝ 이상의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날 뉴시스가 돌아본 원룸촌의 건물 간격은 대부분 기자의 양팔 간격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관악구 신림동 원룸촌은 기자 혼자서 겨우 통행할 정도로 건물 간 간격이 좁은 경우도 많았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는 "민법 242조 1항에서 규정하는 50㎝ 간격은 절대 충분하지 않다"며 "인접대지 경계선으로부터 50㎝면 각각 건물에서 인접대지로부터 50㎝니까 길어야 1m밖에 안 되는데, 이처럼 너무 가까우면 창문을 열어도 환기가 안 되고 사생활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경찰관들은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사각지대가 존재해 불법촬영 등 범죄 발생 가능성을 100%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C씨는 "불법촬영의 경우 장소가 어디든 예방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CCTV를 설치하는 게 최선인데 그렇다고 불법촬영 범죄 발생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경찰관 D씨도 "현재까지는 집주인에게 CCTV를 설치하도록 하고 사각지대를 줄이도록 권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불법촬영 범죄를 유발하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원룸촌 환경 개선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지역 주민을 위해 공적 예산을 투입하는 일은 수익자 부당 원칙과 충돌할 수 있지만 지역 치안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거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우선 원룸촌 등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곳에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공론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개인에게 범죄 예방 노력을 전가시키는 것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치안 환경 개선에 따르는 비용 부담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며 "경찰도 원룸촌 등 불법촬영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곳은 순찰 빈도를 높이고, 불법촬영에 이용되는 카메라를 감지하는 장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보통 원룸촌에 1인 가구가 많은데 치안 인프라 구축이 잘 안 돼 있어 치안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범죄 예방의 의무를 갖고 있는 정부가 1인 가구 밀집 지역이 어딘지 조사 하고, 그곳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치안 인프라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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