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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日기시다 가문과 인연에 '반색'…"증조부가 대만서 기모노 사업"

등록 2021.10.22 17:51:02수정 2021.10.22 17: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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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증조부, 100여년전 대만서 기모노 가게 등 운영

[서울=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증조부가 운영하던 포목점이 있었던 건물(오른쪽)의 100년전 모습.(사진출처: 슈칸분슌 홈페이지 캡쳐) 2021.10.22.

[서울=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증조부가 운영하던 포목점이 있었던 건물(오른쪽)의 100년전 모습.(사진출처: 슈칸분슌 홈페이지 캡쳐) 2021.10.22.

[서울=뉴시스] 김혜경 기자 = 대만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신임 총리의 당선에 반색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조상과 대만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대만 북부 항만도시인 지룽시 시내의 한 길모퉁이에 있는 2층짜리 벽돌 건물은 최근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룽시에 거주하는 한 주민 A씨는 매일 아침을 사러 가는 길에 이 건물을 지나곤 했지만, 최근에는 건물 앞에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 건물은 2층 벽돌 빌딩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A씨는 매일 이 건물을 무심코 지났지만 최근 일본의 100대 총리로 기시다가 당선된 후에는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던 건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이 건물이 기시다 총리의 증조부인 기시다 이쿠타로(岸田幾太郎, 1867~1908)가 100여년 전 사업체를 운영한 곳으로 알려지면서다.

건물 인근에 거주하는 A씨는 "이 건물의 역사를 몰랐다"며 "우리가 일본 총리와 이웃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기뻐했다.

기시다의 총리 당선과 동시에 그의 조상이 지룽시와 관련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대만 집권 민진당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일본과 대만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두 국가는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은 최근 방위백서에 처음으로 '대만정세는 일본의 안보에 중요하다'는 내용을 명기하기도 했다.

기시다의 증조부가 대만 지룽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1895년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대만은 일본 영토로 할양됐고, 일본은 1945년까지 대만을 식민통치했다.

기시다 가문은 현 히로시마(廣島)현 히가시 히로시마(東廣島)시에서 대대로 상점을 운영해 왔는데, 기시다 총리의 증조부는 사업 확대를 목표로 청일전쟁이 끝난 1896년 아내와 생후 2개월된 장남을 데리고 대만 지룽시로 건너갔다.

대만이 일본에 할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으로, 그는 지룽시에서 목재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 판매를 시작했다.

대만의 식민지화로 향후 항만·철도 등 인프라 정비와 도시 계획이 진행되면 목재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해 목재장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인 이민자의 증가 및 식민지인 대만인에게도 기모노 착용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기모노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기모노 가게 옆에는 커피점이 '기시다 커피클럽'도 운영했다.

기시다의 증조부가 지룽시에 목재상과 포목상을 연 것은 28세 때다. 그의 상점이 위치한 곳은 지룽시의 긴자라고 불릴 정도의 번화가로, 기시다 포목점이 위치한 2층 벽돌 건물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증조부가 운영하던 포목점이 있었던 건물의 현재 모습. (사진출처: 슈칸분슌 홈페이지 캡쳐) 2021.10.22.

[서울=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증조부가 운영하던 포목점이 있었던 건물의 현재 모습. (사진출처: 슈칸분슌 홈페이지 캡쳐) 2021.10.22.

하지만 기시다의 증조부는 대만으로 이주한지 불과 4년 만인 1899년 귀국한다. 장사가 잘되던 시기에 갑자기 귀국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만 현지 매체 '연합보'는 "당시 연간 사망자 수가 수천~1만명에 달한 말라리아에 걸려 요양하기 위해 귀국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한 기시다의 증조부는 이후 러일전쟁 후인 1906년 중국  만주로 이주해 다롄(大連)에 1만5000 평방미터 정도의 토지를 취득하지만, 1908년에 40세의 젊은 나이에 급사했다.

대만은 기시다 조상과의 이런 인연에 반색하고 있다.

차이스잉(蔡適應) 민진당 입법위원은 “일본에 이런 배경을 가진 총리는 정말 드물다"며 "우리에게 그것은 매우 특별한 유대관계를 의미한다"며 "향후 기시다 일가를 초청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총리로서 대만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가족을 통해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만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진영의 기시다에 대한 지지와 기시다가 각료로 임명한 인물을 보면 그가 대만과 긴밀한 관계의 길을 계속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만 관리들은 또한 일본이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지할 것도 기대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참의원 회의에서 대만을 “중요한 파트너이자 중요한 친구”라고 말하면서 “일본과 대만 간의 협력과 교류를 더욱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FT는 중국이 일본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경제적 유대가 깊기 때문에 일본이 실제로 대만을 얼마나 지지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자민당의 연립여당인 공명당 역시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자민당 내 친(親) 대만 의원들은 해상사고에 대비해 양국 해안경비대의 합동훈련을 촉구했지만, 일본은 대만과 직접적인 군사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오랜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FT는 전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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