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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할배의 트라우마는 암 수준…특화 치유센터 필요"

등록 2024.03.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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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피해자지원센터 상담실장 인터뷰

진화위, '선감 사건' 특별법 제정 등 권고

"아동기 지속 학대 노출…치료 전문성 필요"

"상담사 1명이 300명 감당…치유 어려워"

"집단수용 시설 특화 센터로 전문성 갖춰야"

[수원=뉴시스] 김금보 기자 =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 상담실장이 지난달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2.01. kgb@newsis.com

[수원=뉴시스] 김금보 기자 =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 상담실장이 지난달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12.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단순 트라우마가 독감이라면, '선감할배'(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부르는 애칭)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암이라고 보시면 돼요."

선감학원피해자지원센터(센터) 내 유일한 상담사인 이향림 센터 상담실장은 지난 29일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피해자들을 치유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25년 차 베테랑 심리상담가인 그의 눈에는 지금 이뤄지는 치료는 여러 트라우마를 동시에 겪는 '선감할배'들을 치유하기에 턱없이 부족해서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26일 '선감학원 아동인권 침해 사건' 피해자 63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 조처 등을 권고했다. 이향림 상담실장은 '선감할배'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트라우마센터를 꼽았다.

선감학원 관련 프로젝트에 행정 보조로 참여했다가 이후 피해자들의 상담을 도맡으며 곁을 지킨 지 5년. 그가 홀로 감당하는 선감학원 피해자와 그 가족은 300여명에 달한다.
[안산=뉴시스] 김종택기자 =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언론공개 설명회가 열린 지난해 10월25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를 찿은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에 세워져 1982년까지 운영된 아동 강제 수용소다. 40여 년 동안 수많은 아동이 끌려가 강제노동과 구타, 굶주림 등의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선감학원 관련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3.10.25. jtk@newsis.com

[안산=뉴시스] 김종택기자 =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현장 언론공개 설명회가 열린 지난해 10월25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유해 매장지를 찿은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선감학원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에 세워져 1982년까지 운영된 아동 강제 수용소다. 40여 년 동안 수많은 아동이 끌려가 강제노동과 구타, 굶주림 등의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선감학원 관련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3.10.25. [email protected]


이 상담실장은 피해자 상당수가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PTSD·복합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했다.

학계에 따르면, 복합 트라우마는 장기간 지속적·반복적으로 노출된 트라우마로 형성된다.

대부분 아동기에 지속적인 학대나 폭력·성적 학대·그런 상황을 오랫동안 보게 하는 행동 등에 노출된 채 성장한 성인들이 겪으며, 특히 수용시설 생존자·포로 등 긴박하고 끔찍한 환경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이들에게서 나타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해서 CPTSD라는 질환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결국 국제질병분류기호(ICD-11)에 공식 등재됐다.

이 상담실장은 "한 번을 겪어도 인생이 무너지는 가혹행위와 폭력에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아동기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됐다"며 "피해자들 상당수는 아동기 부모와의 단절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서 생긴 애착 트라우마, 가혹행위와 친구 시체 암매장 같은 개별 사건으로 생긴 사건(쇼크)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지금도 사회불안장애(대인기피증), 분리 불안 장애, 피해의식을 전 생애적으로 겪고 있다"며 "조직 생활을 할 수 없어서 기초생활수급비나 구두닦기, 단순 반복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한다"고 전했다.
[수원=뉴시스] 김금보 기자 = 윤수보(62) 선감학원사건 피해자가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가진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흉터를 보여주고 있다. 2023.12.01. kgb@newsis.com

[수원=뉴시스] 김금보 기자 = 윤수보(62) 선감학원사건 피해자가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가진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흉터를 보여주고 있다. 2023.12.01. [email protected]


복합 트라우마에 맞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지원되는 치유 회복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상담실장은 "센터 직원이 3명인데 상담사는 혼자다. 상담사 1명이 300명을 감당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며 "선감 피해자들이 겪는 복합 트라우마는 여기 있는 한두 사람이 헌신한다고 치유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 서산개척단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 등 집단수용 시설에서 자행된 국가폭력 피해자가 수만명에 달한다며 이들 피해자에 특화된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가 위탁 운영하고 있는 국가폭력 치유기관인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있지만, 특히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피해 양상이 다른 국가폭력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양상이 달라 집단수용 시설 피해자에게 적합한 전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아동기에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그 피해가 신경계에 더 깊이 각인된다"며 "시체를 만져 죽음에 대한 공포도 크다. 50년이나 지났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여전히 악몽, 공황장애, 불면증을 겪고 있다. 어떤 사건을 겪느냐, 그걸 몇 번 겪느냐, 언제 겪느냐에 따라 증상과 치료법도 다 다르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부실 운영에 대한 상부 보고서(사진=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2024.03.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부실 운영에 대한 상부 보고서(사진=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2024.03.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은 1946년부터 1982년까지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연행 후, 경기도가 운영하는 선감도의 선감학원에 수용해 피해자들이 강제노역,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건이다.

1942년 일제가 설립한 선감학원은 1946년 2월 경기도가 운영, 관리권을 이관받고 36년간 운영하다가 1982년 9월 폐원했다.

40여년간 동일한 유형의 아동인권 침해가 반복해서 지속해서 발생했다. 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원아 대장에 확보된 피해자 수는 최대 5759명에 달한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6일 오후 열린 제75차 전체위원회에서 행정안전부와 경기도에 추가 확인되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규명활동을 제도화해 피해인정 및 피해지원을 위한 시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경기도에는 경기도 외 지역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및 진상규명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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