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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네 겹 껴입고 경복궁으로…수문장은 오늘도 '조선'으로 출근

등록 2026.08.16 10:00:00수정 2026.08.16 10:05:53

15년 차 수문장 김민성씨 "수문장, 경복궁의 얼굴"

선크림, 아이스조끼, '숨은 선풍기'…"날씨 영향 커"

출토 유물, 고문헌 등 고증 통해 재현한 복장·의식

"중국 옷 아닌 조선 초기 복식…인식 개선됐으면"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4.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광장. 수문장 교대의식을 5분 앞두고 휴대전화에서 폭염 주의 안내문자가 울렸다.

불과 며칠 전에는 폭염으로 이 광장의 북소리가 사흘간 멈췄다. 폭염중대경보로 중단됐던 수문장 교대의식은 8일 경보가 해제되면서 재개됐다. 이날 광장에 선 15년 차 수문장 김민성(39)씨가 입은 옷은 모두 네 겹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칠 정도로 얇은 옷이지만 폭염에는 한 겹만 입어도 더운 건 마찬가지다.

"실외에서 행사가 진행되니까 날씨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요."

수문군들은 아이스조끼를 받쳐 입거나 아이스스프레이를 뿌리고 물을 충분히 마신 뒤 광장으로 나선다. 지난해부터는관람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선풍기도 설치했다.

행사가 멈췄던 사흘도 그냥 쉬지는 않았다. 전립과 수화자, 요대 등 장구류를 손질하며 경보가 해제되면 바로 의식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2024.09.08.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2024.09.08. [email protected]


이날 오전 9시44분. 협생문 밖에서는 수문군들이 악기 소리에 맞춰 공개훈련을 하고 있었다. 4개 국어로 교대의식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흥례문 광장으로 관람객들이 하나둘 모였다. 양산과 부채, 휴대용 선풍기가 곳곳에서 등장했다.

오전 9시57분 수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의 목마를 탄 외국인 어린이는 손에 음료를 꼭 쥔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수문장을 눈으로 쫓았다.

오전 10시 대고를 네 번 두드리며 의식이 시작됐다. 수문군이 움직일 때마다 관람객들의 휴대전화도 함께 움직였다. 햇볕 아래에는 형형색색의 우산이 펼쳐졌다.

12분가량의 교대의식이 끝나자 이번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8.14.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8.14. [email protected]


"수문장은 경복궁의 얼굴…시쳇말로 '가오' 지키죠'

교대의식을 마치고 대기소로 돌아온 김씨는 대학생이던 2011년 처음 수문장 일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처럼 간간이 참여하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문장으로 일했다.

15년 가까이 이 일을 계속한 이유를 묻자 답은 간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연예술문화에 관심도 있고 동경도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뭔가 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멋있잖아요. 그래서 뼈를 묻고 있는 중이에요."

수문장의 하루는 이른 아침 대기소에서 시작한다. 옷을 갈아입고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듬뿍' 바른다. 수염을 붙이고 복장을 갖추면 '조선'으로 출근할 준비가 끝난다.

김씨는 수문장을 '경복궁의 얼굴'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주상전하의 집 정문을 지키는 사람이었잖아요. 지금은 경복궁의 위상과 명예를 지키는 거죠. 저희는 경복궁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시쳇말로 '가오'를 지키는 거죠."

그 '가오'가 흔들릴 때도 있다. 명령을 내리다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하고 교대 때 보여줘야 할 수문장패를 깜빡한 채 나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행동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해야 해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하면 관객들은 잘 모르거든요.(웃음)"

[서울=뉴시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일대에서 개최된 ‘수문장 교대의식’ 현장을 찾아 운영 상황 등을 점검한 뒤 행사를 마친 수문장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8.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일대에서 개최된 ‘수문장 교대의식’ 현장을 찾아 운영 상황 등을 점검한 뒤 행사를 마친 수문장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8.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진짜 사람이에요? 진짜 칼이에요?"

꼼짝 않고 서 있는 수문장을 보고 "진짜 사람이에요?"라고 묻는 아이들도 많다.

칼은 실제 무기가 아니지만 김씨는 아이들에게 굳이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동심을 꺾고 싶지 않아 "진짜 칼이야"하고 살짝 보여준다.

수문장에게 관람객은 때로는 곤혹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술에 취해 "장군~"이라고 부르며 희화화하거나 몸에 찬 무기와 장구류를 불쑥 잡는 사람도 있다.

김씨는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면서도 "친근감의 표시일 수 있지만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도 수문장으로 보내는 시간은 그에게 즐거움이다.

"저는 이 일을 굉장히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껴요. 하루하루 일하러 온다는 생각보다 놀러 오는 느낌이에요. 나중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모든 게 기억날 것 같아요."

[부산=뉴시스] 한이재 기자 = 21일 오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진행되는 부산 벡스코 본회의장 앞을 수문장들이 지키고 있다. 2026.07.25. nowone@newsis.com

[부산=뉴시스] 한이재 기자 = 21일 오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진행되는 부산 벡스코 본회의장 앞을 수문장들이 지키고 있다. 2026.07.25. [email protected]


출토 복식 그대로 만들면 '미니스커트'?

김씨가 입는 옷부터 손에 드는 무기까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수문장 교대의식은 '경국대전'과 '세종실록 오례의' 등 고문헌과 출토 유물을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재현했다.

"자세히 보면 보직마다 전립에 꽂힌 털의 종류와 길이가 다르고, 패영에 꿴 구슬 색도 달라요.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는 깨알 같은 디테일이죠."

복식은 출토 유물을 토대로 그대로 만들었다.  다만 당시와 오늘날 사람들의 체격 차이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평균 신장이 180㎝가량인 출연자들이 입으면 옷이 짧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태행 국가유산진흥원 궁능사업실 궁능진흥팀 파트장은 "출토 복식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당시와 지금은 키가 다르다 보니 '미니스커트'처럼 된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고증을 거쳐 만든 옷을 보고도 "중국 옷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김 씨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사극에서는 조선 후기 복식이 많이 나오잖아요. 저희는 조선 초기 복식을 고증해서 제작했는데 중국스럽다는 댓글이 꽤 달려요. 그런 부분은 인식이 개선되면 좋겠어요."

수문장 교대의식은 경복궁이 휴궁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흥례문 광장에서 펼쳐진다.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는 광화문 월대에서 광화문 파수의식도 진행된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4.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경복궁 수문장 김민성씨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4.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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