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표본'…홍련 것이 아닌가봐

‘홍련의 생식기’가 뉴스가 됐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상대로 낸 여성생식기 표본 보관중지 청구소송에서 패했다. “일제가 무단 적출한 여성생식기 표본이 국과수에 보관돼 있는데, 헌법상 인간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니 폐기하라”는 요구였다.
일제강점기 유흥주점 ‘명월관’의 기생인 홍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생식기 표본은 일본경찰이 연구용으로 도려내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 보관했고, 1955년 국과수로 넘어왔다. 숱한 남자들이 홍련과 성관계 도중 급사했다는 점에 착안, 일제는 연구가치가 있는 생식기라고 판단했다. 홍련은 30대에 요절했다고 한다.
홍련의 존재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생식기의 주인은 아닌 듯하다.
9년 전 나는 ‘명월관 홍련 19년만에 환생?’이라는 기사를 썼다. 일본 쓰쿠바에 살고있는 한국인 여성이 한국의 영능력자인 차길진 법사를 찾아왔는데, 차 법사는 그녀의 전생이 홍련이라며 마스모토 시립박물관에 걸린 홍련의 초상을 확인해보라고 권했다는 내용이다.
차 법사에 따르면, 홍련은 6·25 발발 첫해에 폭탄을 맞고 비명횡사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50이었다. 그 홍련이 이 홍련이 아니라는 얘기다.
차 법사는 자신이 홍련의 환생이라고 점찍은 여성을 잘 알고 있다. 1969년생이며 성씨는 ‘신’이다. 역시 신씨인 기생 홍련은 환생한 일본 거주 신씨의 왕고모할머니라고 한다. 1918년 여름 일본인 화가 이시이가 명월관을 찾아가 그린 홍련(당시 18세)의 초상화가 근거다. 마스모토 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회화 속 홍련의 모습은 현 시점의 신씨와 ‘똑같다’. 신씨와 대면한 관장을 비롯한 박물관 직원들이 ‘홍련의 환생’이라며 경이로워 했다고 한다.
얼굴과 몸매뿐 아니다. 홍련과 신씨는 삶 자체도 흡사하다. 홍련은 조선총독 데라우치를 포함해 헌병대장, 야쿠자, 만주진출 건설업자 등 당대 식민조선에서 힘깨나 쓰던 일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일제 말 조선의 G권문세력가의 애첩으로 들어갔다가 나와 일본남자와 결혼한 홍련은 남편을 폐결핵으로 잃은 뒤 홀로 지내다 1950년에 피폭, 생을 마감했다.
신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G예술계 고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작고)는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인 대중음악가다. 딸을 무사시 음대에 입학시키려고 일본으로 데려갔지만, 그녀는 밤의 세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생활로 빠져들었다. 현지 S재벌과 3년간 동거했고, 한국 H그룹 회장의 아들과는 혼사 직전까지 갔다가 ‘과거’가 들통나는 바람에 파혼한 이력도 있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신주쿠의 꽃’이 됐다. 정·관·재계 실력자들은 물론, J(작고)와 U 등 우리나라 각계각층 거물급 인사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최대규모 야쿠자 조직의 두목인 M이다. 그러나 ‘깡패사위’를 거부한 부친의 강요로 재차 모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한국남성과 결혼했으나 1년반 만에 파경을 맞았다. 결국 또 일본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야쿠자 M, IT기업가 D 등의 보호와 후원 아래 부유하게 살고 있다.
어쨌든, 홍련의 영혼은 위무받았다. 지난 여름 경기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에서 열린 천도재를 통해서다. 혜문 스님은 “구천을 떠돌던 영가가 안식처를 찾았듯 이제야 내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다”는 소회를 전했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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