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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항왜 김충선<69>이화 겁간하고 목 베겠다

등록 2011.04.06 00:21:00수정 2016.12.27 21: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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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광남 글·황현모 그림  7화 임진년 하우(夏雨) 69회  여름 밤의 빗줄기 사이로 날아든 음성은 서아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 목소리의 임자를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날 방해하지마라 유키에!”  유키에는 빗속을 천천히 걸어서 다가왔다. 그녀는 걸음은 마치 산보를 즐기는 사람처럼 매우 느렸다. 서아지는 조급했지만 그녀의 말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서울=뉴시스】유광남 글·황현모 그림

 7화 임진년 하우(夏雨) 69회

 여름 밤의 빗줄기 사이로 날아든 음성은 서아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 목소리의 임자를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날 방해하지마라 유키에!”

 유키에는 빗속을 천천히 걸어서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은 마치 산보를 즐기는 사람처럼 매우 느렸다. 서아지는 조급했지만 그녀의 말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내가 목격한 이상 곤란해! 이런 짓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경고하지만 참견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서아지, 난 너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유키에는 주저하지 않고 접근해서 이화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대담하게 행동했고, 서아지는 결코 반항하지 않았다. 이화는 위기의 순간에서 극적으로 유키에를 만난 것이다.

 “그렇다고 날 만난 건 행운이 아니죠. 당신은 철포사신 사야가를 유인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미끼잖아요. 적어도 조선 땅에서는.”

 빗물이 그녀의 갸름한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난 그런 사람을 몰라요.”

 이화는 부정했지만 그들이 믿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유키에가 마치 섬진강변에서 벌어진 사건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말했다.

 “당신들이 모의해서 모리 히데모토를 비롯한 일본인 무장들을 사살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요. 난 현장을 수색 했고, 이화, 당신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증언도 입수했죠. 장수들을 유인해서 저격한 것이지요. 아마 당신은 목이 베어지는 참수형을 당하게 될 거에요.”

 그러나 이화는 결코 두려움이 없다.

 “당신들이 내 목을 베는 건가요?”

 서아지의 입에서 살벌한 어조가 튀어 나왔다.

 “원한다면!”

 이화는 쓸쓸하게 웃었다. 빗물이 닿은 입가는 처량하다.

 “그건 두렵군요. 목이 베어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당신들로 인해서 선지… 사야가의 가슴에 남을 상처가 너무 참담해서 두렵고 무서워요.”

 서아지는 유키에를 자극했다.

 “그녀를 겁간하고 목을 베어 놈에게 보내 주겠다.”

 서아지의 말과 행동이 진짜로 그 일을 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키에는 싸늘한 눈초리로 서아지를 노려봤다.

 “진심으로 원해?”

 서아지는 잠시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름비는 갈수록 세차게 퍼부어댔다.

 “그래.”

 “그렇게도 처절하게 잔인해지고 싶은 거야?”

 “사야가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서아지는 그녀를 외면하고 어둠속을 노려봤다. ‘음!’하는 신음을 유키에는 삼키고, 이화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요. 사야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서아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죽음처럼 어두운 투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빗물이 튕겨나갔다.

 “그대의 사야가는 그런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나의 사야가는 그렇다! 그 놈이 날 괴물로 만든 건 사실이다.”

 이화가 소리쳤다.

 “당신들은 모두 고향의 친구였잖아요! 누구보다도 다정한 해정의 친구들!”

 유키에의 빳빳한 손끝이 이화의 요혈(要穴)을 찔러왔다.

 “우린 이제 서로 원수일 뿐이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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