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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 삶의 흔적과 기억을 되짚다

등록 2014.06.25 11:15:00수정 2016.12.28 12: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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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마장동 한돈 발골 작업.  (사진 = 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뼈와 살이 잘리는 살풍경을 거쳐 '고기'는 밥상에 오른다. 입으로 떠넘기는 고기 한점은 인간에게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으나 짐승에게는 지옥도를 요구한다. 

 살육을 점잖치 못한 일로 치부했던 양반들에게 도살장은 뒷간보다 못한 존재였다. 기어이 고기를 먹겠다는 인간의 욕망은 뒷간보다 못한 마장축산물시장에서 번성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에서 28일부터 9월 14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서울의 푸줏간'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축시장이 선 마장동의 지나간 삶의 흔적과 기억을 더듬어보는 자리다.

 ◇마장동의 유래를 더듬다

 마장동(馬場洞)은 조선시대 왕실 및 관청의 말을 기르던 살곶이목장(箭串場)의 수말을 기르던 지역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마장축산물시장이 들어서기 전 마장동은 밭농사를 짓던 농촌마을이었다.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재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 선생의 땅에 농사를 지었던 마장동 토박이 '김영진씨  일가'의 80여 년에 걸친 생활상을 소개한다.

 1930년대 마장동에 정착한 김영진씨 일가는 왕십리, 마장동 등지에 대규모 농사를 지었다. 이번 전시에서 간송 전형필의 땅에 어마어마한 양의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지급했던 영수증이 최초로 공개된다.

 마장동 김영진씨네 2세대 김용록씨가 중일전쟁(1937~1945)에 참전하고 그 댓가로 받은 채권이 한일협정(1960)으로 무용지물이되고, 지병을 얻어 목숨마저 잃은 비운의 사연도 소개된다.

 ◇'먹고는 싶으나 가까이 둘 순 없다'

 소의 도살을 금했으나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많아 밀도살이 횡행하던 500여 년의 서울 역사에 현대식 도축장이 들어선 것은 20세기의 문턱인 1909년이었다.

 당시 신설리와 합동에 한반도 최초의 도축장이 건립 됐고, 아현동 도축장(합동 도축장이 이전)과 경성부 내 사설 도축장을 통합해 현저동 도축장(1917)을 지었다.

 하지만 또다시 숭인동 도축장(1922)이 신설되는 등 현대식 도축장은 좀처럼 도심에 자리잡기 힘들었다. 도축에 대한 일반인들의 혐오감 탓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도축 폐수의 처리가 용이하고 도심으로 원활 하게 육류를 공급할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마장동이 최적합지로 지목돼 숭인동의 가축시장·도축장의 이전이 확정됐다. 하지만 중일전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광복 이후 서울시가 그 계획을 받아들여 가축시장(1958)·도축장(1961)을 마장동에 설립했고, 시민들에 의해 축산물시장이 자생적으로 형성돼 마장축산물시장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서울=뉴시스】마장축산물시장.  (사진 = 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이후 가축시장(1958~1974), 도축장(1961~1998)이 마장동에서 사라졌지만 마장축산물시장 상인들은 지방에서 도축된 소·돼지의 저렴한 운임과 원활한 물량 수급을 때문에 마장동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시는 소비자의 소매가와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마장축산물시장의 역할과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점들을 제시한다.

 ◇21세기 포정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들

 장자에는 포정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가 문혜군이란 군주 앞에서 소를 잡는데 고기를 썰고 다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이런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

 포정의 답은 이렇다.

 "소의 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에 난 틈과 빈 곳을 이용해 칼을 다루면 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소잡이는 1년에 칼을 한 번씩 바꿉니다. 이는 칼로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소잡이는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꿉니다. 힘을 들여 소의 뼈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19년 동안 수많은 소를 다루었지만 칼날은 막 간 것과 같습니다. 이는 뼈마디에 난 틈에 매우 가는 칼날을 넣기 때문에 칼날이 닳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근육과 뼈가 엉긴 곳을 다룰 때는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문혜군이 감탄하며 "놀랍구나. 나 또한 포정의 말에 양생의 도를 터득했도다"라고 말했다.

 21세기 포정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돼지를 분해해 '쇠고기·돼지고기'를 만드는 마장축산물시장에 모인 발골·정형사들이 그와 같다. 10년에 가까운 교육기간을 거쳐 그들은 뼈와 살의 의미를 채득한다.

 전시에서는 그동안 노출을 꺼려했던 마장축산물시장 사람들이 대형마트·정육점에 도매로 판매하기 위해 대대로 전승되던 소·돼지의 대분할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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