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살아내라, 견뎌내라…영화 '거인'

아무도 영재를 돌보지 않는다. 영재에게 세상은, 모든 게 짐이다. 그를 돌봐주는 듯한 사람도 사실은 견뎌내야 할 고통이다. 영재는 묻는다. "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거야." 삶에 대한 실존적 물음 앞에 선 영재는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다. 영재는 '거인'이다. 흔히 사람은 상처받는 만큼 성장한다고 말한다. 영재는 너무 커버렸다.
영재는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 부모에게서 벗어나 그룹홈에 들어간다. 영재에게는 큰 꿈이 없다. 그룹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 신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좀처럼 영재를 돕지 않는다. 그룹홈에서 나가면 인생이 끝난다고 믿는 영재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한다.
김태용 감독의 '거인'은 자전적 작품이다. 김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풀어낸다. 정직하기 때문에 관객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무덤덤하게 영재를 따라가던 당신은 영재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연민에 앉은 자리에서 몸을 뒤틀지도 모른다.
가깝게는 올해 개봉한 '한공주'(감독 이수진)와 유사하고 멀게는 2009년작 '여행자'(감독 우니 르콩트), '나무 없는 산'(감독 김소영)을 떠올릴 수 있다. '거인'을 비롯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아직 다 크지 않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고통과 이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정서적 울림을 관객에게 전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건 촬영 방법이다. '나무 없는 산'은 아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여행자'는 철저하게 9살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 '한공주'는 관찰한다.

얼마든지 관객의 눈물을 뺄 수 있는 연출이 가능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김태용 감독은 차분하다.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쉽게 영재를 동정하지 않는다. '거인'의 에피소드는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았던 자의 냉엄한 현실 판단이 들어있다. 그렇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존재이고 그 자체로 삶은 힘겹다. 영재는 다만 조금 빨리 그 짐을 어깨에 올린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각자는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다. 영재는 왜 신부가 되려 하는가. 신부는 책임질 게 없다.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 신부는 사람을 믿지 않아도 된다. 신만 믿으면 된다.
'거인'은 위로가 때로는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서늘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영재에게 말한다. "네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지마. 다들 상처를 가지고 살아"라는 말은 개인의 아픔을 쉽게 일반화해 보편적인 경험으로 치환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은연 중에 드러낸다.

'거인'은 김태용 감독의 본격적인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아마 김태용 감독은 이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했을 것이다. 고단했던 과거를 영화화하고, 스스로 위로한 뒤 그 기억과 조금이나마 이별하는 과정이었을 게다.
영화 후반부, 영재는 동생을 적극적으로 챙긴다. 이 장면은 영재가 좋은 어른으로 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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