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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박승빈 있었다, 주시경 말고도

등록 2015.04.30 08:03:00수정 2016.12.28 14: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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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학범(學凡) 박승빈, 법률가·교육자·국어연구가 

【서울=뉴시스】학범(學凡) 박승빈, 법률가·교육자·국어연구가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15>

 ‘박승빈’이라는 변호사가 있었다. 겨레말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어학회에 대항한 조선어학연구회 회장이다. 친일 부르주아 세력을 모아 민족 문화운동을 한다고 표명했으나, 민족 자주세력인 조선어학회에 맞섰다고 지탄받은 인물이다.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 이름짓고, ‘문법’이라는 한자말이 아닌 ‘말본’이라는 맨조선말을 살려 쓰려고 애쓴 주시경(1876~1914) 학파의 조선어학회를 방해한 이름이 바로 박승빈(1880~1943)이다.

 일제강점기 한글파는 1933년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만들어 ‘훈민정음’ 표기법을 개혁하려 들었다. 대척점에 박승빈의 정음파가 있다. 정음파는 훈민정음의 전통 표기법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빈 등은 한글파의 맞춤법 통일안이 ‘우리의 어음과 맛디 아니 하며 우리의 언어의 관념과 어그러뎌서 그 법칙은 도저히 조선 민중이 이를 효해(曉解)하고 이를 수긍하야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업는 것 … 조선어문에 대한 교란의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관용되고 민중적으로 일치되야잇는 경음(硬音·되인音)을 기사하는 부호 ㅅ(된시옷)을 부인하고 초성 쌍서를 주장하여 ㅺㅜㅁ(夢 몽), ㅼㅗ(亦 역), ㅽㅏㄹㅣ(速 속히)를 꿈, 또, 빨리로 기사하게 되는 일. 참고―ㅼ·ㄹ·ㅁ(ㅽㅜㄴ), ㅽ·ㄹ리(速히)는 훈민정음에, ㅺㅜㅁ(夢), ㅼㅗ(亦), ㅽㅜㄴ(만)은 용비어천가에 등 고유조선어에는 모다 ㅅ(된시옷)을 사용하얏다’는 유의 주장을 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 기반한 자신의 철자법을 관철시키고자 그렇게 노력했다.

 박승빈은 자신의 학설과 주시경 학설에는 다음과 같은 분석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①주시경설= 먹 으며, 믿 으오, 찾 으랴고, 둏 으니, 앉 으면

 박승빈설= 머그 며, 미드 오, 차즈 랴고, 됴흐 니, 안즈 면

 ②주시경설= 먹 어서, 믿 어요, 찾 아라, 둏 아요, 앉 아도, 가 아서, 지 어라  

 박승빈설= 머거 서, 미더 요, 차자 라, 됴하 요, 안자 도, 가 서, 져 라

 ③주시경설= 도 를 닦 으시 어야 마음 이 크 어디 어서 높 은 자리 에 앉 으십니다  

【서울=뉴시스】1920년대 초 가족사진. 아랫줄 가운데 갓쓴이가 아버지 박경양, 두번째줄 왼쪽 첫번째가 차남 건서, 두번째가 부인 송수경, 네번째가 박승빈, 맨뒷줄 왼쪽 첫번째가 장남 정서

【서울=뉴시스】1920년대 초 가족사진. 아랫줄 가운데 갓쓴이가 아버지 박경양, 두번째줄 왼쪽 첫번째가 차남 건서, 두번째가 부인 송수경, 네번째가 박승빈, 맨뒷줄 왼쪽 첫번째가 장남 정서

 박승빈설= 도 를 다ㅺㅡ 셔 야 마음 이 커 뎌 서 노픈자리 에 안즈 십니다

 위 설명을 설명하는 아래 <   > 안의 글은 몹시 전문적이다. 박승빈이 국어학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도로 일독하면 되겠다.

 <이 두 학설의 차이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은 원단 관계다. 즉, 원음 중 두 학설의 주된 쟁점은 ‘으’단 어미의 단어와 특수 ‘우’단, 특수 ‘오’단의 단어에 있다는 것이고, 그 외의 용언은 원단의 관계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먼저 ‘으’단의 문제다. 핵심은 박승빈설에서 원음이 약음으로 발음되는 음을 주시경설에서는 원형으로 인정하고 용언 어미의 변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주시경식으로 하면 용언조사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며’와 ‘으며’ ‘서’와 ‘아서’등의 변종을 가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어간을 주시경식으로 고정한다고 해도 ‘끄다’의 경우 ‘서’가 결합하면 ‘끄어서’가 아니라 ‘꺼서’가 되므로 어간을 뜻에 따라 고정하는 취지가 사라지게 되고, ‘끄어서’를 고집하게 되면 현실음과 괴리가 생기며, ‘꺼서’를 인정하게 되면 ‘끄어서’에서 어떻게 ‘꺼서’가 됐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어미 원단 원음 ‘으’, 약음 ‘ㅅ’이 되는 단어에서 결함이 나타난다. 주시경 학설에서는 이 종류의 용언을 어미 ‘ㅅ’되는 단어로 하고 어미의 변동을 부인함으로써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와 서로 허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지으며’는 주시경설에 따르면 기본형이 ‘짓으며’인데 이는 통용되는 말이 아니고, 또한 ‘지으며’를 설명하려면 ‘짓으며’에서 ㅅ이 탈락했다고 해야 하는데, 이는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식으로 특수 ‘우’단, 특수 ‘오’단의 단어에 나타나는 결함도 밝혔다. 박승빈은 특수 ‘우’단, 특수 ‘오’단의 어미 ‘우, 오’와 ‘ㅂ’으로 발음되는 단어는 어미 ‘ㅂ’으로 일정하므로 주시경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와 서로 허용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구우며’, ‘고오며’와 같은 발음을 주시경식으로 하면 ‘굽으며, 곱으며’로 써야 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가 용언 어미에 있는 음이라 하면 ‘으’도 동일한 것이요, ‘으’가 조사의 어두에 있는 음이라면 ‘우’도 동일하게 해석해야지 이 둘을 서로 다르게 처리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동일하게 처리한다면 ‘쉬우며’의 ‘우’가 용언 어미에 속한 음이라고 볼 수 있고 동시에 ‘구브며’의 ‘브’의 중성인 ‘ㅡ’도 용언 어미에 속한 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용언 활용에서 박승빈과 주시경의 차이 가운데 두번째 큰 쟁점이 되는 것이 변동단 관계다. 주시경 학설에서는 변동단으로 발음되는 용언의 어미 활용을 부인하고 ‘어(아)’음을 떼어서 조사의 머리에 첨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박승빈은 여기에서 결함을 찾아냈다. 어미 으단의 복음 단어 중 약음을 쓰지 않는 단어 ‘아프며, 아파서’가 ‘아프며, 아프아서’로 돼 어음과 맞지 않으며, ‘시므며, 시머서’가 ‘시므며, 시므어서’로도 되고 ‘심으며 심어서’로도 돼 그 기사방법을 정할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기프며, 기퍼서’가 ‘기프며, 기프어서’로도 되고, ‘깊으며, 깊어서’로도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승빈은 우리말글 연구에 매진했다. 사전편찬, 철자법 논쟁, 국어문법 저술 등 저서 5권과 3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1935년에는 자신의 문법관을 집대성한 책 ‘조선어학’을 냈다.

 616쪽에 이르는 연구서 ‘훈민정음을 사랑한 변호사 박승빈’을 통해 이런 박승빈을 재조명한 시정곤(51)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박승빈은 1941년까지 기관지 ‘정음’을 계속 펴내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고 해방을 앞둔 1943년 10월30일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만다. 말년에 친일단체에 참여했다는 과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변호사, 사회운동가, 교육자, 국어연구가로서 근대인 박승빈이 한평생 보여준 애국애족의 열정은 다시금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훈민정음을 사랑한 변호사 박승빈’은 박승빈의 음성이론, 품사·형태 이론, 통사 이론, 언어관과 문법관, 음성학과 음운론, 철자법, 로마자 표기법, 한글마춤법통일안에 대한 비판 등을 총정리했다. 박승빈의 생애와 활동, 국어운동도 망라했다. 시 교수는 “개화기 선각자 중에는 주시경의 문법이론을 비판하고 그에 맞서 학술 논쟁을 벌인 이들이 있었다. 조선어학회와는 다른 시각으로 문법과 어문규범을 정비하고자 한 노력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승빈”이라고 평한다.

 “역사는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듯이 경쟁과 라이벌을 통해 한걸음씩 나아간다. 역사 앞에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다. 모두 역사의 한 걸음에 디딤돌을 놓은 공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서는 기억되고 주목 받는 승리자보다는 잊혀지고 소외받는 패배자도 똑같은 무게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어느 한 쪽의 힘만으로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레가 어느 한 쪽의 바퀴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듯.”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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