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김신욱·박건하 등 어디에 갖다놔도 으뜸
국가대표 196㎝ 장신 공격수 김신욱, 중앙수비수에서 전향
공격수·미드필더·수비수로 모두 K리그 베스트11 경험한 유상철·김주성
원조 멀티플레이어 조영증
![[서울=뉴시스] 현역 울산 현대 시절의 유상철(왼쪽). (사진 = 프로축구연맹 제공)](https://img1.newsis.com/2020/04/22/NISI20200422_0000516765_web.jpg?rnd=20200422174242)
[서울=뉴시스] 현역 울산 현대 시절의 유상철(왼쪽). (사진 = 프로축구연맹 제공)
때문에 어려서부터 줄곧 소화해 익숙했던 포지션을 버리고 다른 자리에서 뛰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타고난 축구 감각을 앞세워 여러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혹은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전향해 성공한 이들이 있고,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11을 수상한 '축구 도사'들이 있다.
▲196㎝ 제공권 앞세웠던 수비수 김신욱, 국가대표 공격수로
K리그 통산 득점 3위에 자리한 김신욱(상하이 선화)은 원래 중앙수비수였다. 중앙대 시절까지 수비를 책임졌다.
당연히 2009년 드래프트에서 중앙수비수로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거기까지였다. 동료 공격수의 부상과 김호곤 감독의 제안으로 포지션을 공격수로 바꿨다. 김신욱 인생에 큰 전환점이다.
![[서울=뉴시스] 현역 수원 삼성 시절 박건하(오른쪽)의 모습. (사진 = 프로축구연맹 제공)](https://img1.newsis.com/2020/04/22/NISI20200422_0000516763_web.jpg?rnd=20200422174123)
[서울=뉴시스] 현역 수원 삼성 시절 박건하(오른쪽)의 모습. (사진 = 프로축구연맹 제공)
현재 FC서울에서 뛰고 있는 박동진도 원래 수비수였다. 2016년 광주FC에서 수비수로 데뷔해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지만 2018년 서울로 이적한 후, 전지훈련지에서 공격수로 변신했다.
지난해 공격수로 뛴 첫 시즌에 6골 3도움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골 넣다가 막는 이가 된 박건하 '공격수 심리는 내가 잘 알지'
박건하는 수원 삼성을 상징하는 공격수였다. 1996년 공격수로 수원에 입단해 34경기에서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팀은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이후 2001년까지 줄곧 공격수로 뛰었다.
하지만 2002년 센터백이 부족했던 팀 사정 때문에 포지션 변경을 권유받았다. 그해 9월4일 전북 현대전을 시작으로 수비수가 됐다.

【화성=뉴시스】최진석 기자 = 10일 경기 화성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대한민국과 스리랑카의 경기. 김신욱이 헤더골을 넣고 있다. [email protected]
▲만능 유상철·김주성,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11
김주성과 유상철은 K리그에서 뛰는 동안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뛰었다. 그냥 뛴 정도가 아니라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에서 모두 시즌 베스트11에 선정됐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낯선 포지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건 타고난 감각과 축구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87년 공격수로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한 김주성은 데뷔 첫해 10골 4도움을 기록했다. 1992년 독일에 진출하기 전까지 공격수와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지만 1994년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수비수로 전환했다.
공격수(1987년)와 미드필더(1991년)도 한 차례씩 베스트11에 올랐고, 수비수로는 1996년, 1997년, 1999년 세 차례 선정됐다. 특히 1997년에는 수비수로 최우수선수(MVP)상까지 거머쥐었다.
![[서울=뉴시스]조영증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https://img1.newsis.com/2020/04/22/NISI20200422_0000516773_web.jpg?rnd=20200422174945)
[서울=뉴시스]조영증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사진 = 대한축구협회 제공)
유상철은 득점왕을 차지한 1998년 미드필더로, 2002년에는 공격수로 베스트11에 뽑혔다. K리그에서 9시즌을 뛰는 동안 통산 142경기에서 37골 9도움을 올렸다.
▲K리그 원조 멀티플레이어 조영증
국가대표로 A매치 109경기에 출전,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한 조영증은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다.
프로축구가 출범하기 전, 실업팀인 제일은행에서 활약했던 그는 1981년 미국에 진출했다. 이후 K리그 출범 2년째인 1984년 럭키금성(현 서울)에 입단했다.
조영증은 선수층이 얇았던 팀 사정 때문에 공격수로 뛰게 됐다. 그 해 6경기 연속으로 골맛을 보는 등 28경기에서 9골 4도움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듬해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가 1987년 은퇴할 때까지 수비를 맡았다.
현재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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