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반대" 인터뷰로 카터에 반기 존 싱글러브 별세
29일 오전 7시 아내·가족들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숨 거둬
향년 100세…제2차 세계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까지 참전
카터,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WP인터뷰로 반대…결국 옷벗어
"나의 별 몇 개 보다 수백만명 목숨과 바꿨다 생각…보람있어"
![[워싱턴=AP/뉴시스]존 싱글레어 예비역 소장이 지난 1977년 5월 26일 미국 워싱턴 의회 하원 군사서비스 소위원회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모습. 그는 당시 지미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29일(현지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2022.01.31.](https://img1.newsis.com/2016/08/02/NISI20160802_0011982841_web.jpg?rnd=20220131201525)
[워싱턴=AP/뉴시스]존 싱글레어 예비역 소장이 지난 1977년 5월 26일 미국 워싱턴 의회 하원 군사서비스 소위원회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모습. 그는 당시 지미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29일(현지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2022.01.31.
미군 관련 전문 사이트인 '샌드박스'(sandboxx)는 29일(현지시간) 존 싱글러브 예비역 소장이 이날 오전 7시 미 테네시주 자택에서 아내 조앤과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샌드박스는 싱글러브 사망을 한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까지 참전한 몇 안되는 특공대원 중 한 명이었다.
싱글러브는 1943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소위로 입대했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와 강인함으로 빠르게 눈에 띄었고, '그린 베레'로 잘 알려진 육군특전사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와 중앙정보국(CIA)에서 복무했다.
유럽에서 싸우던 그는 1945년 5월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당시 일본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태평양으로 건너왔다. 그는 일본이 점렴한 중국의 적진 속에서 팀을 이끌고 연합군 포로를 찾아 구출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싱글러브는 비밀리에 한국의 공동자문위원회(JACK)에 합류, 북한과 중국에 대한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면서 활동에 들어갔다. 1949년 미 군정 하에서 한국에 설치된 CIA 서울지부에서 일하면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했다.
싱글러브가 유엔사 참모장으로 복무하던 1977년 카터 미 행정부는 박정희 정부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군사원조 중단 카드에 이어 5년내 주한미군 철수 계획까지 세웠다. 이를 알게 된 싱글러브는 당시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카터 대통령은 격분했고, 미 국방부는 싱글러브를 유엔사 참모장에서 해임하고 본국으로 소환했다. 그는 카터 대통령 앞에 불려가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싱글러브의 그 같은 행동을 항명으로 받아들인 미 국방부는 그에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카터 행정부 역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결국 접었다.
생전 중장,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소장으로 옷을 벗은 게 아쉽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의 별 몇 개를 (한국인) 수백만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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