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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군, 점령지 곳곳에 동상 세운 우크라 할머니, 푸틴에 욕설

등록 2022.05.31 11: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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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을 러군으로 오인해 소련기 들고 환영하던 여인

소련 붕괴 뒤 처참한 삶…"소련 시절이 좋았다"고 믿지만

할머니 "우크라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왜 우리를 죽이나"

[마리우폴=AP/뉴시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산하 마리우폴에 구 소련의 붉은 깃발을 든 우크라이나 여성 동상이 서 있다. 마리우폴을 완전 장악한 러시아군은 아조우스탈 제철소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계속해서 투항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22.05.19.

[마리우폴=AP/뉴시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산하 마리우폴에 구 소련의 붉은 깃발을 든 우크라이나 여성 동상이 서 있다. 마리우폴을 완전 장악한 러시아군은 아조우스탈 제철소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계속해서 투항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22.05.19.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다. 수만명의 시민들을 살상하고 도시 전체를 완전히 초토화하면서까지 마리우폴을 점령한 러시아는 최근 도심에 한 우크라이나 여성의 동상을 세웠다. 모스크바에서 직접 고위 당국자가 방문해 제막식도 거행했다. 동상의 여인은 소련의 붉은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선전과 달리 동상의 주인공은 푸틴에게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동상의 주인공은 러시아 전역은 물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점령지 전역에서 벽화로, 현수막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안나 이바노바. 우크라이나 동부 제2의 도시 하르키우 외곽 한 마을에 사는 주민이다.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촬영한 동영상에서 이바노바는 이곳을 정찰중인 우크라이나군을 러시아군으로 잘못 생각해 소련 국기를 들고 나와 흔들며 환영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깃발을 빼앗아 내팽개치면서 이바노바에게 음식이 담긴 비닐 주머니를 건넸다. 화가 난 이바노바는 음식을 거부하면서 "우리 부모가 싸웠던 깃발을 너희들이 짓밟고 있다. 깃발을 내놔라"라고 소리쳤다.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간 지 며칠 만에 러시아 외교관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바노바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바노바는 러시아에서 "안나 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를 우크라이나 "나치"들로부터 구출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환영식을 가져야 한다고 니나 오스타니나 러시아 의원이 "특수 구출작전"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리우폴의 이바노바 동상 개막식에서 세르게이 키리엔코 푸틴 대통령 부비서실장은 "그는 나치즘과 파시즘에 맞서 싸운 상징이다. 돈바스인과 러시아인 모두의 할머니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안나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 조국, 전체 러시아 세계, 러시아어를 사용할 권리를 요구하는 모두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바노바는 지난 3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자택 지붕이 날아갔으며 우크라이나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 그런 그가 러시아에서 자신이 영웅으로 추앙되는 것이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그의 인생사는 러시아 선전과는 달리 복합적이다.

그는 먼 곳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포격전 소리가 들리는 속에서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을 하지 않고 문제를 풀 수 없었느냐? 당신과 우리의 아들들이 죽어야만 하나? 우크라이나에게도 러시아에게도 큰 재앙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 우크라이나가 아무 짓도 안했는데 왜 죽이나? 러시아가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손도 안댔다"고도 했다.

이바노바는 러시아의 선전과 달리 그리 늙지 않았다. 푸틴과 동갑인 69살이다. 러시아 벨고로트 인근 지역 출신인 러시아인 남편 이반 이바노바와 함께 전기도 TV 방송도 볼 수 없는 부서진 집에 살고 있다. 전화 충전도 못하고 이웃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전쟁 소식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하루종일 대화할 사람조차 없다.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대도시의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독립하면 새로운 기회와 자유를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곡물 승강기 조작을 하던 이바노바와 같은 노동자 계층은 독립이 고통스러웠다.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허드렛일을 하거나 실업에 시달렸고 범죄와 부패, 마약이 급증했다. 푸틴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이기도 하다. 전쟁 전부터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 동부에 친러 정치인들이 득세한 배경이기도 하다. 노인층의 친러 정서를 노린 러시아군은 점령 도시에 소련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이바노바는 우크라이나군에게 보였던 소련 국기가 어렸을 때부터 보관해온 것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 모두가 5월9일 전승절에 소련군이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흔들곤 했다고 말했다. 푸틴이 일으킨 전쟁을 지지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나로선 평화의 깃발이자 전쟁이 끝난 것을 뜻하는 깃발이다. 악의 깃발이 아니라 사랑의 깃발"이라고 했다.

동영상이 녹화된 날 이바노바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해 깃발을 가지고 나갔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이 러시아군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동영상에서 이바노바는 "당신과 푸틴, 그리고 모든 국민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답하자 다소 당황한 듯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고 답했다.

동영상은 전쟁 시작 몇 주 뒤 촬영된 것이다. 소련 깃발을 짓밟았던 빅토르 코스텐코 우크라이나군 선임중위는 동영상을 소수만 보기 위해 다른 군인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그게 소셜미디어에 유출돼 러시아 TV에 등장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날 처음엔 음식을 받기를 거부한 남편이 결국 음식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마을에 파견된 소대의 지휘관인 코스텐코 선임중위는 몇 차례 더 돌아와 부부에게 음식을 주기도 했다. 코스텐코 중위는 교회를 파괴하고 신자를 처형한 소련을 찬양하는 것은 교회 신자로서 할 짓이 못된다는 걸 이바노바에게 설득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는 설득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그렇지만 우린 친구가 됐다. 이들은 소식이 궁금했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다. 이바노바는 과거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이바노바는 소련 시절이 좋았다고 말한다. "부족한 게 없었다. 국경도 없고 자유롭게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오가면서 가족 친지들을 만났다"고 했다.

이바노바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었다. 두 아들은 1990년대 마약 범죄에 연루돼 잔혹하게 살해됐다고 했다. 4살 먹은 딸은 화재사고로 잃었다. 다른 하나는 갓난 아기때 폐렴에 걸려 숨졌다. 이바노바의 남자 형제들 중 한 명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처리하다가 숨졌다. 마을에 함께 살던 어머니와 나머지 형제들은 난방을 하지 못해 얼어죽었다고 했다. 연금을 배달하던 우체부가 그들이 숨진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식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혼자다. 기구하고 끔찍한 운명"이라고 했다.

이바노바와 남편은 아직도 연금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한달에 약 2500흐리우니아(약 10만5400원) 정도로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스프와 죽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이달초에는 지속되는 폭격소리에 심장에 문제가 생긴 남편을 자원봉사자들이 하르키우 제8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이 병원이 우크라이나군 사령부이라고 발표하면서 공격당할 것을 피해 곧장 돌아와야 했다.

이바노바와 남편은 이후 계속 집에 머물면서 최대한 자주 교회에 나가 전쟁이 빨리 끝나길 기도하고 있다. "전쟁이 이어지고 포탄이 매일 날아다닌다. 창문을 막으려 해도 포탄이 터질 때마다 깨져서 소용이 없다"고 했다. "밭을 가꾸고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실날같은 인생"이라고 했다.

남편 이바노바는 청각을 거의 상실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불쑥 말했다. "우린 완전 지옥에 살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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