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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 방치된 조선 선조 임금의 공주 무덤 아시나요?

등록 2025.04.28 14:29:22수정 2025.04.28 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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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가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고국으로 옮겨와야"

[울산=뉴시스] 대마도 소재 선조 임금의 딸(공주) 무덤.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대마도 소재 선조 임금의 딸(공주) 무덤.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선조의 공주 무덤이 대마도에 방치되고 있어 옮겨와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이다.

28일 한일문화연구소(소장 김문길·부산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 연안에 개미 떼처럼 들이닥쳤다. 조선엔 문화인(기술자)이 많고 보물의 나라라며 수군거렸다. 문화인을 많이 잡고 보물을 많이 훔쳐 오는 장군은 특진시킨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서를 펴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특히 대마도 번주 쇼 요시 도시(宗義智)는 옛날 왜구가 노략질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조선 땅 어디에, 어떤 문화인, 그리고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무척 궁금해 했었다. 이 때문에 제1진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김문길 교수가 조사한 결과, 임진왜란 때 납치된 문화인 20만 명, 문화재만 7만5000여점에 이른다. 문화 약탈 전쟁이고 조선인 납치 전쟁이었던 셈이다.

이때 선조 임금의 두 왕자와 공주도 납치해 갔다. 두 왕자는 1597년 전쟁이 끝나고 사명대사의 노력으로 귀국했다. 대마도에 감금돼 있던 공주는 귀국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보이는 대마도에서 슬픈 여생을 보내며 병들어 죽었다. 그의 무덤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년) 당시 베어간 조선인의 귀·코 무덤(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조선인 12만6000여 명분)을 조사한 바 있는 김문길 교수(일본 역사·학술 박사, 종교·철학 박사)는 2018년 연구 차 대마도에 갔다가 공주 무덤을 발견했다. 대마도 가미아가타마치 사나데공원(對馬島上縣町 佐奈豊公園)에 있다. 무덤 표시판엔 선조(이연)의 딸(공주)의 무덤(朝鮮國王姬の墓)이라고 기록돼 있다.

[울산=뉴시스] 썩은 나무기둥에 공주 무덤이라고 쓴 표시판.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썩은 나무기둥에 공주 무덤이라고 쓴 표시판.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조사한 결과, 임진왜란 때 울산에서 경주~영천~한양으로 진격할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두 왕자를 납치해 구마모토로 보내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 소속 대마도 번주 쇼 요시 도시 왜장은 공주를 대마도에 감금했다.

대마도 상현정 역사지(對馬島上縣町 歷史誌)엔 '파도야 너는 알고 있느냐 가고 싶은 고국 오늘은 유달리 고국 산도 희미하게 보이내 파도야 너는 알겠지. 고국 소식이나 알려다오'라고 공주 심경이 담겨 있다.

김 소장은 "지난 2월 공주 무덤 뒷산에 올라가 현해탄을 바라보는데 공주의 하소연이 자꾸 들려왔다. 공주 무덤 입구에 안내 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다. 나무 기둥이라 썩어 넘어져 있는 것을 다시 세우고 철삿줄로 묶고 바로 세워놓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임진전쟁은 비참했다. 조정은 당파 싸움으로 부산까지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몰랐다. 조선인의 전흔(트라우마)인 '이비야'(耳鼻야)는 오늘날에도 철부지 아이들에게 말하면 도망을 간다. 420년여 년이 지났지만 공주의 무덤을 고국에 모셔 와야 한다"고 토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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