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영에게 쓸모 있는 것과 쓸모 없는 것
민규동 감독의 영화 '파과'서 60대 킬러 조각 역
강도 높은 액션 역기 펼쳐 "뭘 하기만 병원행"
"현장에서 새로운 경험…쓸모 있는 배우 되고파"
![[서울=뉴시스]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4/29/NISI20250429_0001831101_web.jpg?rnd=20250429160142)
[서울=뉴시스]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 '파과'는 예순을 훌쩍 넘긴 여자 킬러 조각과 미스터리한 남자 킬러 투우의 대결을 그린 액션물이다. 작가 구병모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그간 찾아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여성 서사를 내세워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소설은 흡입력 있는 필치와 빠른 전개 덕분에 출간 직후 영화화 기대작으로 꼽혔고, 주인공 조각 역에는 배우 이혜영(63)이 낙점됐다. 원작이 거느린 팬덤도 완벽한 캐스팅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혜영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라는 생각에 마다했다. 너무 할머니 같다는 게 이유였다. 소설을 먼저 읽어보라는 감독의 말에 책을 꺼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조각과 닮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비현실적이었고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혜영은 조각의 힘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쓸모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역으로 활동하기를 고집하는 조각의 신념이 알고 싶었다. 언어로 담아내지 않은 조각의 힘은 이혜영을 예열시켰다.
"조각이 가진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죠. 킬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민규동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믿어보게 됐어요. 민 감독의 영화 중' 서양골동양과자점 엔티크'를 좋아하는데, 그런 식의 판타지가 녹여들지 안을까 싶었어요. 그러면서 편하게 배우를 할지 한번 도전을 해볼지 해서 도전을 선택한 거죠."
그의 말처럼 조각 역은 도전이었다. 드라마 '우리, 집' 촬영을 마치고 열흘 후 '파과' 현장에 합류했다. 몸을 만들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크고 작은 부상이 촬영 기간 내내 따라다녔다. 첫 촬영 당시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채 일정을 강행하다가 또 다른 갈비뼈가 하나 더 골절됐고, 맨몸으로 수십 명을 상대하는 장면에선 손목, 발목을 다치기 일쑤였다. 뭘 하기만 하면 병원행이었고, 부상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영화 '파과'의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4/29/NISI20250429_0001831105_web.jpg?rnd=20250429160225)
[서울=뉴시스] 영화 '파과'의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몸 바쳐서 하는데 (나는) 늙었지, 다쳐도 회복은 더지지, 이러다 정말 배우 못하는 거 아니야 하는 공포까지 오는데, 만약 영화까지 안 좋다는 평이 나오게 되면 나는 정말 뭐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건 목숨을 걸고 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촬영장에서 부딪히게 되는 감정도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해진 틀에서 움직여야 하는 민 감독의 방식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돌아켜보면 배운 것이 많았다.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서 영화가 공개될 때 이혜영은 민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각의 외로움이나 고독, 흔들림을 담은 장면들도 다 사라졌어요. 다 넣는다면 아마 3시간짜리 영화를 봐야 할지도 몰라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아쉬움이 오히려 많이 남죠. 제가 봐도 너무 멋있다는 건 없어요. 다만 이혜영이 뭔가 한 방 보여주기를 진정으로 바랐던 사람들은 진짜 환호를 지르고요. 그래도 이번에 뭘 보여준 것 같다는 평가들 덕분에 위로받았어요. 나중에 감독님의 디렉터스 컷이 나온다면 조각의 외로움과 고독을 깊이 느끼실 거예요."
이혜영의 몸을 아끼지 않은 투혼 덕에 영화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이어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 베이징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그는 "이 정도의 작품을 늘 만나지는 않는다"며 "저한테 특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투우 역을 연기한 김성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배우를 만나서 조각이 어떤 면에서 섹스어필하다는 말까지 들었는지 그건 솔직히 김성철의 힘이에요. 한 살만 나이 더 먹어도 이런 매력이 안 나올 거예요. 그게 조각과 투우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서울=뉴시스]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4/29/NISI20250429_0001831106_web.jpg?rnd=20250429160245)
[서울=뉴시스] 배우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 제공) 2025.04.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9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한 이혜영은 영화 '여왕벌'(1986), '성공시대'(1988),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등에서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고혹적인 카리스마와 특유의 강단 있는 목소리는 이혜영을 이름 석자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배우로 만들었다. 2021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 상옥 역을, 2024년 '여행자의 필요'에서 원주 역을 맡았다. "홍 감독님과 작업은 잊을 수 없는 여러 편을 했지만 '당신 얼굴 앞에서'가 굉장히 충만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기억이 잘 없어요."
영화에 나온 조각의 대사처럼, 이혜영은 '쓸모없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쓸모있다'는 것보다 '쓸모없어진다'는 것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민 감독이 '정해놓은 프레임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인형처럼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선배님이 그 안에서 찾으시고 나도 그걸 맞춰 나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한 수 배운 거죠. 내 스타일대로만 하고 통제가 안 되면 다른 젊은 감독들이 어려워할 수 있잖아요. 앞으로 쓸모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훈련이 됐죠. 배우로서 살아남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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