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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단오제 위해 저수지 물 뺐다?"…강릉 가뭄 참사 의혹들

등록 2025.09.24 13:59:47수정 2025.09.25 09: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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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5월 방류 있었다"… 관계자 "작년 10월 이후 없었다"

단오제·준설작업 명목 의혹 vs 행정의 부실 대응 논란

20만 시민, 하루 15분 급수로 버틴 '인재'… 책임론 불가피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다. 2025.09.24. patk21@newsis.com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다. 2025.09.24. [email protected]

[강릉=뉴시스]김태겸 이덕화 기자 = 강원 강릉시의 대표적 전통 행사인 ‘강릉 단오제’를 앞두고 남대천 수질 정화를 위해 오봉저수지의 물을 대거 방류해 가뭄 사태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4일 강릉 오봉저수지 인근 주민 등에 따르면 저수지 방류는 올해 4~5월 가뭄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이뤄졌다. 이후 4개월 가까이 강릉에 내린 비는 고작 100㎜도 채 되지 않았고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역대 최저치인 11.5%까지 추락했다. 이로 인해 20만 강릉 시민들은 하루 15분 남짓 제한된 식수만 공급받는 최악의 단수 사태를 견뎌야 했다.

다수의 지역 주민은 “이번 사태는 하늘이 아닌 행정이 만든 인재”라며 강릉시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주민 A(70대)씨는 “단오제가 전국적으로 열리다 보니 남대천이 썩어 있다며 물을 다 뺐다. 그때만 안 뺐어도 가뭄이 와도 40~50%는 유지했을 것”이라며 “이번 저수율 11% 추락은 강릉시가 만든 참사”라고 주장했다.

주민 B(50대)씨도 “그냥 행사 치르겠다고 물을 한꺼번에 빼버렸다. 그때가 결정적이었다. 가뭄이 아니라 인재였다”고 말했다.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21일 강원 강릉지역 87%의 식수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오봉저수지 용수 확보를 위해 상류인 세재교 왕산천을 준설한 모래 등이 하천 옆으로쌓여져 있다. 2025.09.21. wonder8768@newsis.com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21일 강원 강릉지역 87%의 식수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오봉저수지 용수 확보를 위해 상류인 세재교 왕산천을 준설한 모래 등이 하천 옆으로쌓여져 있다. 2025.09.21. [email protected]

실제 주민들의 제보는 구체적 정황으로 이어진다. “준설작업을 명목으로 물을 뺐다”거나 “남대천 단오 행사 준비 때문에 물을 흘려보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왔다.

오봉저수지 인근 주민들이 “올해 가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준설작업을 위해 물을 뺀 결과”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5월 모내기 직후와 장마철을 앞둔 5~6월께 저수지 물이 상당량 방류됐다는 것이다.

주민 A씨는 “지난해도 저수율이 30%까지 내려갔는데 올해는 11%까지 떨어졌다”며 “이미 가뭄 조짐이 있었는데 장마 온다고 하면서 저수지 물을 뺐다. 결국 그 물은 남대천을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물이 많이 차면 넘칠까 봐 미리 뺐다는 얘기도 들었고, 실제로 준설작업을 하려면 물을 빼야 하기 때문에 6월 전후로 방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주민 B씨는 “준설작업으로 파낸 모래를 쌓아놓은 흔적이 있다”며 “5월 모내기 이후 물이 많을 때 일부러 뺀 뒤 작업을 했다. 그때만 안 뺐어도 40~50% 수위는 유지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 C씨(60대)도 “올해는 5개월 동안 비가 100㎜도 오지 않았는데, 굳이 그 시점에 물을 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이라며 “준설작업은 매년 해왔다지만 가뭄이 심해질 걸 예측 못 한 게 치명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나와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2025.09.24. patk21@newsis.com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나와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2025.09.24. [email protected]

주민들의 증언은 구체적이다. “6월 장마가 올 거라 기대하고 미리 물을 뺐다”, “준설하려면 수위를 낮춰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후 내린 비가 거의 없으면서 저수율은 곤두박질쳤고, 강릉은 사상 초유의 단수 사태를 맞게 됐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반면 강릉시 내곡동 아파트 주민 D씨(50대)는 “하루에 잠깐 나오는 물을 양동이에 받아 두고 세수·빨래·설거지를 모두 해결했다”며 “아이 있는 집들은 씻기조차 힘들어 가장 고통스러워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주민은 “아파트마다 물 공급 시간이 달라 형평성 논란까지 생겼다”며 “시의 물 관리가 전혀 통일되지 않아 주민들이 더 불편을 겪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관리 측 입장은 정반대다. 오봉저수지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올해 들어 수문을 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마지막 방류는 지난해 10월이었고, 올해는 방류할 상황조차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방류가 있었다면 한강홍수통제소와 강릉시 재난상황실에 반드시 기록이 남는다. 주민들이 본 것은 농업용수 공급을 방류로 착각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주민 대표 역시 “단오제 직전 방류가 있었다는 주민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4월부터 가물어 남대천에 물이 거의 없었다”며 “방류 자체보다 근시안적 물 관리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농업용수 공급은 계속 이어졌고 이 물이 남대천으로 흘러가 단오제 행사장의 수질 개선에는 일정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비가 오지 않는데도 농업용수를 계속 흘려보낸 것은 식수난을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라며 강릉시의 근시안적 물 관리 행정을 비판했다. 이어 “정수장 현대화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원수 확보 대책부터 세워야 했다”는 지적과 함께, 행정 부실에 대한 책임론을 분명히 했다.

[강릉=뉴사스] 강릉시청.(사진=뉴시스DB)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뉴사스] 강릉시청.(사진=뉴시스DB)[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시는 그간 “저수율 하락은 기상이변에 따른 강수량 부족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주민과 주민 대표·강릉시민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단오제 방류 의혹 여부와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강릉시의 사전 준비 부족과 무능이 이번 사태를 키운 ‘공통 분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강릉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왕산 새재교 준설 시기와 목적 등에 대해 "거기는 지난번에 준설을 했었고 물길 터주기 목적도 있어 지난 8월 경에 또 한번의 준설을 했었다"면서 "주 목적은 오봉댐의 저수를 위해서 한 준설이었다"고 말했다.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주민의 모습이다. 2025.09.24. patk21@newsis.com

[강릉=뉴시스] 김태겸 기자 = 지난 21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50%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주민의 모습이다. 2025.09.24. [email protected]

100년 만의 가뭄이라는 정부의 설명조차 주민들에겐 ‘면피용’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도 저수율은 30%까지 내려갔지만 올해처럼 11%대로 무너지는 극단적 상황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시는 원수(原水) 확보 대책 없이 정수장 현대화 사업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물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 최신식 정수장도 기름 없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태는 강릉시의 무책임한 행정, 보여주기식 단오제 준비, 근시안적 수자원 관리가 맞물리며 20만 시민이 식수난에 내몰린 ‘인재’라는 점에서 책임 규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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