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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경쟁 속 완화 목소리↑…특혜·경제력집중 우려도[금산분리 갈림길①]

등록 2025.11.30 06:00:00수정 2025.12.01 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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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선점 위한 수백조 투자 경쟁…"금산분리가 제약"

투자회사, CVC 출자·투자 규제 완화 요구 본격화

"대기업이 스타트업 키울 때 성공 확률 가장 높아"

"경제력 집중 부작용 우려…특정 기업에 특혜 안돼"

AI 등 특정 분야에 한시적 규제 완화 가능성 거론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 이 대통령.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10.0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알트만 오픈AI 대표, 이 대통령.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10.01.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내에서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재계에서는 첨단산업 육성이 '돈의 경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고 대기업 집단이 금융 자원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금산분리 논의에 불을 지핀건 이재명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AI 투자) 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재원을 조달할 때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는 관련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제한·분리하는 경제정책의 원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제도화됐다. 재벌이 금융자원을 사금고화하거나, 이로 인해 산업자본의 부실이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자는게 규제의 도입 취지다. 특히 SK와 같은 지주회사 체제의 재벌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경제계에서는 기술 혁신으로 산업 지형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은행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금융업체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건 기업의 투자 활동에 지나친 제약이 된다고 지적한다. AI나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은 매우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기업이 자기자본이나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는 AI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손을 잡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게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기술기업 오라클,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가 손을 잡고 차세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5000억 달러(736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09.10. bjko@newsis.comxyz@yna.co.kr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09.10. [email protected]@yna.co.kr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일반지주회사가 투자회사(GP)를 설립해 펀드를 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특히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대기업이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금융자본과 손을 잡고 혁신 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대기업이 후배 기업을 키울 때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대기업이 금융기관, 정부 펀드와 (유망 스타트업에) 함께 투자하면 성공 확률이 높은데, 금산분리 제도 때문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없다"며 "오래된 숙제인 금산분리 제도를 바꿔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CVC를 금산분리로 묶어놓은 곳은 한국뿐"이라며 “CVC를 금산분리 규제에서 제외할 경우 셀트리온이 5000만원을 투자하면 은행은 5억원을 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2021년부터 허용된 CVC는 변화하는 경제환경에 맞춰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한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재계는 CVC의 소유지분, 부채비율, 투자금 비율 등에 제한이 많아 투자가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지주회사는 CVC는 완전자회사로만 소유해야 하고, 외부투자금은 40%로 제한된다. 부채비율은 200%, 해외 투자 한도는 20% 아래로 유지해야 한다.

또 SK하이닉스와 같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들이 증손회사를 보유할 때 반드시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규제를 50% 수준으로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금산분리 원칙은 유지돼야 하지만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한적인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미국처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 지급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정 여건상 현실적이지 않다"며 "투자할 돈이 많이 않은 상황인 만큼 (재벌이 운용하는) 사모펀드가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동원되지 않는 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환 교수는 "SK하이닉스의 경우에는 지금 돈이 많은데 증손회사 규제에 걸려서 쓰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경우 규제를 풀지 말아야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 TF회의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5.11.26.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 TF회의에서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될수도…경제력 집중도 우려"

하지만 금산분리 규제는 우리 경제 질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산업자본이 펀드를 운용하는데 제한이 없어질 경우 대기업집단이 금융 자원을 사금고화해 경제력 집중을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금융업체가 재벌 기업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나 계열사 지원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SK하이닉스 등 특정 기업과 산업에 대한 특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영역에서 규제를 완화할 경우 다른 산업과 기업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이 방법 밖에 없다면 할 수도 있지만 진짜로 필요한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재계의 요구에는) 구체성이 없어 논의가 명분 싸움처럼 전개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황 교수는 "펀드를 움직인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일이다. 펀드의 구체적인 사용 용도 등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며 "목적을 추상적으로 정해놓으면 그에 관련된 범위가 무한정 확장해 사실상 금산분리를 전부 허무는 것과 다름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부처 논의에서도 이견이 돌출했다. 기재부와 산업통상부, 금융위원회 등은 대체적으로 투자 활성화 쪽에 무게를 두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며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수십년 된 규제를 몇 개의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며 "왜 다른 대안을 활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주병기 위원장은 "기업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은 자신들의 이익을 활용해 혁신, R&D 시설투자를 지속하는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금융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력 집중이나 독과점 폐해 같은 건 아직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며 "금융기관을 통한 산업 부문의 지배력 확장의 문제 등이 상존하는 현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정위는 CVC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은 고려할 수 있지만 'GP 허용' 등 업권간 울타리를 푸는 데는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주=뉴시스] 추상철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만나 AI슈퍼컴퓨터 'DGX스파크'를 선물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0.31. photo@newsis.com

[경주=뉴시스] 추상철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만나 AI슈퍼컴퓨터 'DGX스파크'를 선물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0.31. [email protected]


현행 규제 체계 유지하되 한시적 예외 허용 가능성

이에 따라 현재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현행 규제 체계는 유지하되 AI 등 첨단산업 투자에 제한이 되는 특정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안의 형태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 법안은 지주회사 체제 내에서 손자회사가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첨단전략산업기금’이 지분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몰 조항을 둬 한시적으로 '지분 100% 보유' 규제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재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CVC의 외부 자금 조달 비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높이고 해외 투자 한도는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하는 안도 CVC 활성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투자 자금을 사금고처럼 활용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두고 규제 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인터넷뱅크를 도입할 때도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해준 사례가 있다"며 "금산분리 규제의 본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AI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예외 조항을 두고 일부 완화해주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는 "기업이 펀드를 운용하면서 관계사에 부당하게 자산을 배분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뉴시스] 재판매 및 DB금지. hokm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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