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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확인한 메나(MENA) 작가들의 약진

등록 2026.08.02 08:00:00

오일머니 문화투자 결실…메나 작가들 존재감 확대

공동체·장인정신으로 전쟁과 기억을 예술로 승화

세계 현대미술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른 중동·북아프리카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오만, 레바논, 팔레스타인….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이른바 메나(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즉 중동·북아프리카 작가들의 존재감이었다. 중동에서 전시를 기획해온 필자에게는 그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메나 작가들은 '낯선 지역을 소개하는' 초청 작가에 가까웠다면, 올해는 참여 규모는 물론 비엔날레가 던지는 담론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최근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비엔날레는 메나 지역의 부상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식민주의와 이주, 공동체, 전쟁과 기억을 다루는 작업들이 세계 미술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의 입구.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의 입구.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로 코요 쿠오(Koyo Kouoh)가 기획한 ‘단조로(In Minor Keys)’에 전시 중인 모하메드 조하(Mohammed Joha)의 콜라주 연작 ‘피신할 곳은 없다(No Shelter)’를 관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찢어진 종이상자와 천 조각으로 가자 주민들의 불안한 임시 주거 형태를 표현했다. 사진: 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로 코요 쿠오(Koyo Kouoh)가 기획한 ‘단조로(In Minor Keys)’에 전시 중인 모하메드 조하(Mohammed Joha)의 콜라주 연작 ‘피신할 곳은 없다(No Shelter)’를 관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찢어진 종이상자와 천 조각으로 가자 주민들의 불안한 임시 주거 형태를 표현했다. 사진: 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공동체가 만드는 예술

이번 비엔날레에서 메나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특징은 개인의 천재성보다 공동체와 장인정신을 앞세운 작업 방식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관의 다나 아와르타니(Dana Awartani)는 '돌 위에 눈물 흘리는 자여, 그대의 눈물이 절대 마르지 않기를(May your tears never dry, you who weep over stones)'에서 전통 이슬람 기하학 문양을 2만9000여 개의 점토벽돌로 구현했다. 관람객이 작품 위를 걸을수록 벽돌은 조금씩 갈라진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역사와 문화유산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장치다. 수많은 장인이 참여해 수만 시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잊혀 가던 노동과 협업의 가치를 다시 전면에 세웠다.

오만관 역시 모래와 금속 오브제를 활용해 공동체가 축적한 기억을 공간으로 풀어냈고, 아랍에미리트관 '와슈와샤(Wash Washa)'는 공식 역사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속삭임'이라는 사운드 설치로 들려주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메나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누가 말하는가"보다 "누가 함께 만드는가"를 묻고 있었다.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 국가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에서 소리를 내며 전시되어 있는 스피커들.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 국가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에서 소리를 내며 전시되어 있는 스피커들.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레바논 국가관에서 선보이는 나빌 나하스(Nabil Nahas)의 전시 ‘오해하지 마세요(Don't Get Me Wrong)’. 벽면 높은 곳에 캔버스 26개가 45미터 길이로 걸려있다.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레바논 국가관에서 선보이는 나빌 나하스(Nabil Nahas)의 전시 ‘오해하지 마세요(Don't Get Me Wrong)’. 벽면 높은 곳에 캔버스 26개가 45미터 길이로 걸려있다.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전쟁과 기억을 기록하는 미술

메나 지역의 현실은 작품의 주제에도 깊이 스며 있었다.

레바논의 나빌 나하스(Nabil Nahas)는 국가관 전시에서 폐허를 연상시키는 설치와 회화를 통해 혼란과 재생을 동시에 이야기했고, 팔레스타인 출신 모하메드 조하(Mohammed Joha)는 찢어진 종이와 천을 이어 붙인 콜라주로 가자 주민들의 불안한 삶을 기록했다.

팔레스타인은 공식 국가관은 없지만 오히려 베니스 곳곳에서 더욱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팔라초 모라(Palazzo Mora)에 설치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전통 자수 '타트리즈(Tatreez)'는 한 땀 한 땀 이어진 바느질로 역사와 상실,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을 담아냈다.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 국가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에서 관객이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랍에미리트(UAE) 국가관 전시 ‘와슈와샤(Wash Washa)’에서 관객이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사진: UAE 국가관 제공 / 촬영: 이스마일 누르. (Image Courtesy of National Pavilion-UAE / Photo by Ismail Noor of Seeing Things)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오만 국가관의 전시 ‘지나(Zīnah, 장식)’. 오만에서 가져온 모래와 공동체가 제작한 은빛 오브제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오만 국가관의 전시 ‘지나(Zīnah, 장식)’. 오만에서 가져온 모래와 공동체가 제작한 은빛 오브제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오일머니, 문화투자로 꽃피우다

메나 작가들의 약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미술관과 비엔날레, 국제전시를 비롯한 문화예술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결실이 국제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카타르의 행보다. 이미 서구 강대국들의 국가관으로 가득 차 더 이상 새로운 전시장이 들어설 수 없다고 여겨졌던 자르디니 한복판에 카타르가 국가관 부지를 확보한 것이다. 올해는 붉은 텐트 형태의 임시 전시장을 선보였는데, 지나가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붙잡았다.

텐트 안에서는 영상과 퍼포먼스, 음식을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걸프 지역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공간을 보며 아랍 공동체의 전통적인 모임 장소인 '마즐리스(Majlis)'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타르 국가관이지만 공간은 레바논 출신 프랑스 건축가 리나 고트메(Lina Ghotmeh)가 설계했고, 프로젝트는 태국의 세계적인 작가 러끄릿 띠라와닛(Rirkrit Tiravanija)이 기획했다. 국적보다 협업과 문화적 연결을 중시하는 오늘날 메나의 개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중인 바레인 왕실 작가 셰이크 라시드(Shaikh Rashid bin Khalifa Al Khalifa)의 작품 '통로를 지키며(Guarding the Passage)'.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중인 바레인 왕실 작가 셰이크 라시드(Shaikh Rashid bin Khalifa Al Khalifa)의 작품 '통로를 지키며(Guarding the Passage)'. 사진:이규현 *재판매 및 DB 금지



산마르코 광장 인근 마리나레사 정원(Giardini della Marinaressa)에서는 바레인 왕실 작가 셰이크 라시드 알 칼리파(Shaikh Rashid bin Khalifa Al Khalifa)의 대형 설치작 '통로를 지키며(Guarding the Passage)'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유럽문화센터(ECC Italy)가 주관한 특별전 '개인의 구조(Personal Structures)'에 출품된 작품이다.

붉은 금속 격자는 멀리서 보면 새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사람을 가두는 구조물이 아니라 안과 밖,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열린 통로가 된다. 바레인이 추구하는 개방성과 공존의 가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기도 했다.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사우디아라비아관에서 전시중인 다나 아와르타니(Dana Awartani)의 전시 ‘돌 위에 눈물 흘리는 자여, 그대의 눈물이 절대 마르지 않기를(May your tears never dry, you who weep over stones).’ 사진: saudipavilion.org *재판매 및 DB 금지

제 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사우디아라비아관에서 전시중인 다나 아와르타니(Dana Awartani)의 전시 ‘돌 위에 눈물 흘리는 자여, 그대의 눈물이 절대 마르지 않기를(May your tears never dry, you who weep over stones).’ 사진: saudipavilion.org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 미술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언제나 세계 현대미술의 방향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무대다. 미술 애호가들이 2년마다 베니스를 찾는 이유도 지금 세계 미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비엔날레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비서구권이 더 이상 세계 미술의 주변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메나 작가들은 전쟁과 이주라는 시대의 상처를 공동체와 장인정신, 그리고 문화적 기억이라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풀어내며 새로운 현대미술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 베니스의 주인공은 더 이상 유럽만이 아니었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속에서 메나는 가장 역동적인 축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오일머니는 더 이상 미술품을 사들이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세계 미술의 흐름을 움직이는 문화 자본이자 문화외교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글=이규현 이앤아트 대표([email protected]). 한국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아트마케터이자 전시기획자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국제미술제인 ‘포에버 이즈 나우’의 큐레이터이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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