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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서 국군 오인 사격으로 사망…유족, 국가 상대 손배소 승소[법대로]

등록 2026.04.04 09:00:00수정 2026.04.04 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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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불 났다" 소식에 돌아가다 국군 사격에 사망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유족 "정신적 손해 배상" 소송

法 "유족 정신적 고통…국가 손해배상 책임 있어"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사진은 법원 로고. 2024.12.23. km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사진은 법원 로고. 2024.12.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다솜 기자 =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오인 사격으로 희생됐던 민간인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제6민사부(부장판사 이영훈)는 지난달 27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였던 1950년 7월 29일 북한군이 경남 진주 방어선까지 진격했다. 다음 날인 7월 30일 밤부터는 진주 서쪽 4㎞ 지점까지 북한군이 들어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당시 진주 지역은 7월 31일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다가 같은 해 9월 25일 미군 제25사단 소속 제35연대 및 국군에 의해 수복됐다.

이 사건 희생자인 A씨와 B씨는 진주가 북한군에 점령된 시기였던 1950년 8월 11일 진양군(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마을에 거주하던 중 국군의 소개령으로 인해 이반성면 평촌리로 피난했다. 소개령은 공습·화재 등에 대비해 주민·시설물을 분산시키는 명령이다.

그런데 집이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A씨와 B씨는 딸 C씨와 함께 부계리 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국군의 사격을 받아 A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B씨는 왼쪽 허벅지 및 무릎에 상해를 입었다.

이후 딸인 C씨와 마을 주민들은 A씨의 시신을 가매장하고 B씨를 피난처로 옮겼으나, B씨 역시 후유증으로 고통받아 이듬 해인 1951년 2월 4일에 숨졌다.

지난 2024년 7월 9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희생자들을 '경남 진주·남해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보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후 유족 측은 "정신적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인 국가는 희생자의 직계비속이거나 희생자 본인 및 가족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이 국군이 희생자들을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총격을 가해 사살하거나 상해를 입혀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희생자들은 진실규명 결정과 같이 국군으로부터 사격을 받아 희생됐고, 이는 국군이 이 사건 희생자들을 섣불리 북한군으로 오인한 탓으로 보인다"며 "국가는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또 "당시 민간인과 북한군의 구별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지 않고, 소개령을 통해 대피만 시켰을 뿐 돌아오는 것을 물리적으로 제지했다거나 이 사건 희생자들이 국군이 설정한 방어선 등을 넘었다는 등의 사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위자료로 희생자 본인에 각 1억원, 유족인 배우자에 5000만원, 자녀에 1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체 유가족은 36명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희생자들 본인은 물론 그 유족들도 가족을 잃은 박탈감,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경제적 빈곤과 대물림, 사회적 낙인과 차별 등으로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사망자들의 유족인 원고들의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로하고 도와야 한다"고 판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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