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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여기가 최악' 경고에도…차베스, 그 자리에 공공주택 지었다

등록 2026.08.24 11:12:48수정 2026.08.24 11:24:25

WP 위성분석…최대 피해지역 공공 고층건물 절반 이상 무너져

2001년 내진기준 이후 지었지만 토질조사·감독 부실 의혹

[라과이라=AP/뉴시스] 30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지진 희생자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이 붕괴 건물 잔해 속 희생자 시신 수습을 기다리고 있다. 2026.07.31.

[라과이라=AP/뉴시스] 30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지진 희생자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이 붕괴 건물 잔해 속 희생자 시신 수습을 기다리고 있다. 2026.07.31.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베네수엘라 정부 소속 과학자들은 약 20년 전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 해안 일대를 대형 지진 피해 위험지대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공공 고층주택이 지난 6월 강진 때 민간 건물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무너진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내진기준을 따라 지어졌어야 할 비교적 새 건물이었지만 최대 피해지역에서는 절반 넘게 붕괴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2000년대 초부터 2026년까지의 위성영상을 분석한 결과, 카라바예다에 세워진 공공 고층주택의 절반 이상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규모가 비슷한 민간 고층건물은 10곳 중 1곳만 붕괴했다.

이들 공공주택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11년 시작한 대규모 주택사업 ‘그란 미시온 비비엔다 베네수엘라(GMVV)’를 통해 건설됐다. WP가 집계한 카라바예다의 GMVV 고층주택 28개 동 가운데 15개동이 층층이 주저앉으면서 아파트 약 1440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 6월24일 베네수엘라에서 규모 7.2 지진이 발생한 뒤 39초 만에 규모 7.5 지진이 뒤따랐다. WP는 당국 집계를 인용해 지진으로 최소 6438명이 숨지고 수만 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도 수만 명 발생했다고 전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지진 직후 공공주택이 민간주택보다 피해를 덜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WP는 로드리게스 대통령이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진 건물을 비교했다고 지적했다. 그가 언급한 민간주택 상당수는 1960∼1980년대 건물이었다. 카라바예다에서 2001년 내진기준 시행 이후 지어진 민간 고층건물 10개 중 무너진 건물은 1개뿐이었다. 이 건물도 최소 42년 된 건물과 연결돼 있었으며, 이 낡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함께 붕괴했다.

GMVV 고층주택의 대규모 붕괴가 더 이례적인 것은 이 건물들이 강화된 내진기준을 적용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1967년 카라카스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6.6 지진으로 225명 넘게 숨진 뒤 내진체계를 정비했다. 1972년 베네수엘라 지진연구재단(FUNVISIS)을 세웠고, 2001년 강화된 내진기준을 마련한 뒤 2019년 이를 다시 개정했다.

[라과이라=AP/뉴시스] 23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한 소녀가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 위에 앉아 구조대가 실종된 어머니의 시신이라도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진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 수가 5300명을 넘어섰고, 실종자 수는 3만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6.07.24.

[라과이라=AP/뉴시스] 23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에서 한 소녀가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 위에 앉아 구조대가 실종된 어머니의 시신이라도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진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 수가 5300명을 넘어섰고, 실종자 수는 3만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6.07.24.

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한 마이클 슈미츠 베네수엘라 중앙대 지질학자는 “원칙적으로 2001년 내진기준에 따라 건설된 건물이 무너져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다만 붕괴한 GMVV 고층주택들이 실제로 내진기준을 지켰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건축기준뿐만이 아니었다. 카라바예다의 지질학적 위험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지하수면이 높은 해안의 모래 지반은 강하게 흔들리면 하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액상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지역 지반의 고유 진동 주기는 1.5∼1.8초로, 15∼18층 건물의 진동 주기와 비슷했다. 과학자들은 지반과 건물이 같은 주기로 흔들리면 진동이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라바예다의 GMVV 고층주택은 13층으로 이 위험 높이대에 가까웠다.

이처럼 지질학적 위험이 알려진 상황에서 차베스 정부는 2010년 홍수와 산사태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하자 GMVV 건설을 서둘렀다. 차베스 정부는 주택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일반 계약 절차를 중단했으며 사업을 대통령 직속 조직에 맡겼다. 카를로스 헤나티오스 전 과학기술장관은 공공주택 공사가 지방정부의 설계 검토와 현장 점검, 준공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어떤 기준과 자재가 사용됐는지 알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입주민들은 실제 거주 과정에서도 누수 등 여러 하자를 겪었다고 증언했다. 일부 주민은 정부 관계자와 경찰로부터 건물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입주민 오로마 알라모는 “우리가 정부의 실험 대상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주민 증언과 별도로 토질조사와 건축 승인 과정에서도 문제 정황이 제기됐다. 국제투명성기구 베네수엘라 지부는 상당수 GMVV 고층주택을 지으면서 토질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카라바예다를 연구한 도시계획 전문가 케티 멘데스도 계획한 규모의 주택을 지어도 안전하다는 기술 승인을 받지 못한 부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난관리 전문가 알레한드로 리나요는 GMVV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제자들이 철근 부족과 불량 시멘트, 기준에 맞지 않는 기둥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AP/뉴시스] 12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청년의 날을 맞은 친정부 성향의 청년들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벽화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청년의 날은 1814년 2월 12일 학생들이 주축이 된 독립군이 스페인 군대에 승리한 보야카 전투 승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2025.02.13.

[카라카스=AP/뉴시스] 12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청년의 날을 맞은 친정부 성향의 청년들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벽화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청년의 날은 1814년 2월 12일 학생들이 주축이 된 독립군이 스페인 군대에 승리한 보야카 전투 승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2025.02.13.

다만 이런 증언과 자료만으로 개별 건물의 붕괴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원인을 가리려면 잔해와 구조물을 분석해 설계·시공 기준을 지켰는지 확인하는 법공학 조사가 필요하다. 로드리게스 대통령이 구성한 위원회는 손상된 건물의 안전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WP는 지진 발생 후 8주가 넘도록 붕괴 원인을 규명하는 법공학 조사가 진행된다는 징후는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붕괴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GMVV를 통해 주택을 다시 공급하고 있다. 지난 7월 이재민에게 처음 인도한 주택도 이 사업으로 건설됐다. 정부는 라과이라의 브리사스 델 아에로푸에르토 주택단지에 있는 건물 20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WP는 재건과 현장 정리가 진행되는 사이 일부 건물 잔해는 이미 치워져 바다에 버려졌다고 전했다. 당국이 지난 7월 복구 불가능 판정을 받은 건물 가운데 처음으로 철거한 건물도 GMVV 고층주택이었다. 베네수엘라 지진연구재단에서 수십 년간 일한 마이클 슈미츠 베네수엘라 중앙대 지질학자는 “잔해를 건물별로 구분해 보존해야 한다. 구조물이 왜 무너졌는지 이해하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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