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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섬 제주] 주민이 심고 함께 가꾼다…뿌리내리는 '참여정원'

등록 2026.09.17 08:00:00

주민이 직접 만들고 가꾸는 마을정원…2019년 이후 제주 곳곳으로 확산

우영팟·해녀·곶자왈·촐밭…도민의 기억이 박람회 정원으로

조성에서 지속적인 관리로…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정원문화 모색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동부문화드림센터 회원들이 16일 오후 연한 하늘색 꽃을 피운 호스타 등 정원식물을 둘러보고 있다. 2026.09.17.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동부문화드림센터 회원들이 16일 오후 연한 하늘색 꽃을 피운 호스타 등 정원식물을 둘러보고 있다. 2026.09.17. [email protected]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도시환경 회복, 체류형 관광과 웰니스 수요가 커지면서 정원은 꽃과 나무를 가꾸는 공간을 넘어 도시와 지역의 미래 전략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제주 정원문화의 가능성을 살펴본 데 이어 올해는 정원의 섬, 제주가 나아갈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제주형 정원도시 계획, 정원관광과 지역경제, 시민참여형 정원교육, 정원박람회와 정원산업의 미래를 다룬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동부교회 주변에 작은 정원이 생겼다. 동부문화드림센터 하늘꿈노인교실 주민 20여명이 직접 참여해 300㎡ 공간에 나도히초미와 호스타, 매화헐떡이, 무늬맥문동 등 15종 451본을 심은 '커뮤니티가든'이다.

흙을 고르고 식물을 옮겨 심는 일부터 주민들이 함께했다. 울타리처럼 빽빽하게 둘러쳐진 피라칸다를 걷어내고 버려졌던 공간을 초록으로 채웠다. 주변 주민들이 이용하도록 개방한 정원은 앞으로도 함께 돌봐야 할 생활공간이 됐다. 제주도가 올해 추진한 '도민참여 마을정원 만들기' 사업의 한 현장이다.

16일 커뮤니티가든을 찾았을 때 정원에 심어진 호스타가 연한 하늘색 꽃을 피운 모습에 정원 조성 참여자들은 뿌듯해했다. 이들은 정원 만들기 사업을 마치고 나서 본격적인 관리를 위해 정원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정원위원회 구성과 출범을 주도한 이재홍 위원장은 "처음에는 빈 공간에 꽃을 심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으니 우리가 만든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도 주민들과 같이 가꾸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조성된 도민참여 마을정원은 이곳만이 아니다. 다올복지재단의 '다올 햇살정원', 행원리마을회의 '광해다락 햇살정원', 용담 현대1차아파트의 '용현 해오름 꽃밭'까지 모두 4곳이다.

전체 면적은 1100㎡로 주민 등 80여 명이 참여해 1651본을 심었다. 복지재단과 노인교실, 마을회, 공동주택 주민 등 참여 주체도 서로 다르다.

주민들은 삽을 들기 전에 정원을 가꾸는 방법부터 배웠다. 식물의 특성과 번식, 구근류 식재와 식물 배치에서 비료주기, 잡초 제거, 전정까지 조성 이후 필요한 관리 방법을 교육받았다. 한 차례 식물을 심고 끝내기보다 이후 주민들이 직접 정원을 돌볼 수 있도록 관리 과정까지 사업에 포함한 것이다.

참여 주민 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평균 99점의 만족도를 기록했다. 정원의 기능과 조성 만족도, 주변 경관과의 조화, 주민 의견 반영도뿐 아니라 유지관리의 지속가능성도 조사 항목에 포함됐다.

제주도는 지난 7월부터 조성된 마을정원의 유지관리 상태를 살피고 있으며 내년 사업에도 조사 결과를 반영할 계획이다.

주민이 직접 만들고 가꾸는 마을정원…2019년 이후 제주 곳곳으로 확산

제주의 마을정원 만들기는 2019년 시작됐다. 북촌리마을회와 구억리부녀회 등 2개 단체에서 출발해 2025년까지 27개 단체가 참여했다. 송당리와 온평리 등 마을회에서 공동주택과 청년회, 사회적협동조합,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으로 참여 범위가 넓어졌다. 이 기간 제주 곳곳에 백합과 라일락, 치자 등을 비롯해 5만7064본을 심었다.

마을정원은 규모만 놓고 보면 공원이나 수목원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민들이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지 의견을 모으고 함께 식물을 심은 뒤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과정이 계속되면 정원의 성격도 달라진다.

마을 한쪽의 유휴공간이나 공동주택 주변 녹지가 주민들이 만나고 함께 활동하는 공동체 공간으로 바뀌고, 직접 만든 정원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공간에 대한 애착과 책임도 커질 수 있다.

[제주=뉴시스] 제주시 용담현대1차아파트 주민들이 도민참여 마을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 (사진=제주도 제공) 2026.09.17.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제주시 용담현대1차아파트 주민들이 도민참여 마을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 (사진=제주도 제공) 2026.09.17. [email protected]

여기에 마을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삶, 기억까지 녹여낸다면 작은 정원 하나가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처럼 참여정원은 단순한 녹지 조성을 넘어 주민이 지역의 공간과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제주에서는 정원을 몇 곳 더 만들 것인가보다 주민들이 만든 정원을 어떻게 오래 유지하고 생활 속에서 지속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조성에서 지속적인 관리로…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정원문화 모색

주민 참여정원의 장기적인 운영을 고민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 국립공원청(NParks)은 2005년부터 전국적인 주민정원 프로그램 '커뮤니티 인 블룸(Community in Bloom)'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2000개가 넘는 공동체 원예그룹에 4만800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으며 행정은 대상지 선정과 정원 디자인, 공동체 운영 방법을 지원한다. 원예 경험이 많은 주민들이 다른 공동체와 지식을 나누고 정원 활동을 이끄는 제도도 운영한다.

미국 뉴욕의 '그린섬(GreenThumb)'은 1978년 시작해 550곳이 넘는 커뮤니티 가든과 2만명 이상의 자원봉사 정원사를 지원하고 있다. 버려진 땅을 주민들이 정원으로 바꾸면서 시작했으며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뉴욕시 공원국은 토지와 정원 재료, 기술지원,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두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정원을 만드는 단계보다 그 이후다. 행정이 물리적인 공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정원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자원, 기술을 제공해 공동체 간 경험을 연결한다는 점이다.

제주의 마을정원도 조성 개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만들어진 정원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를 살펴볼 단계에 들어섰다. 정원을 만든 주민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서로 다른 마을정원이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식재하는 하루의 참여가 일상적인 관리와 주민 활동으로 이어질 때 마을정원도 생활 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을에서 박람회로…제주인의 기억을 정원에 담다

이러한 주민 참여 흐름은 마을을 넘어 오는 11월 열리는 '2026 대한민국 제주정원문화박람회'로도 이어진다.

제주도는 올해 박람회에 전문가 작품과 함께 주민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한 뒤 현장에서 조성하는 '도민 참여정원'을 선보인다. 주제는 '제주인의 뜰'이다.

흙과 돌, 바람 등 자연에 순응해 살아온 제주인의 삶의 지혜를 담고 제주 자생식물과 사람들이 기억하는 옛 풍경을 현대적인 정원으로 풀어내도록 했다.

[제주=뉴시스] 2026 대한민국 제주정원문화박람회의 도민 참여정원에 선정된 치유정원 설계 구상도. (사진=제주도 제공) 2026.09.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2026 대한민국 제주정원문화박람회의 도민 참여정원에 선정된 치유정원 설계 구상도. (사진=제주도 제공) 2026.09.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모를 거쳐 10개 작품을 선정했으며 서귀포시 제주혁신도시 바람모루공원에 작품당 10㎡ 안팎의 정원을 조성한다. 작품당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고 전문 코디네이터가 설계와 조성 과정도 돕는다.

선정 과정에서 제주다움과 창의성뿐 아니라 식물 선정과 배치, 지속가능성, 일상적인 관리 가능성과 실제 시공 가능성 등을 함께 고려했다.

선정작을 들여다보면 도민들이 기억하는 제주의 생활과 자연이 정원의 소재로 등장한다. 우영팟과 해녀, 곶자왈, 돌담, 촐밭과 바람 등 제주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을 각자의 방식으로 정원에 옮겼다. 우영팟은 텃밭, 촐밭은 띠를 수확하는 밭을 의미한다.

'우리 어멍 우영팟'은 돌담 안 채소밭과 감나무를 중심으로 어머니의 삶과 가족의 기억을 풀어냈다. 감나무 아래에는 어머니를, 수선화와 자란은 자녀를, 라일락은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향기를 상징하도록 구상했다.

'해녀의 정원'은 검은 제주 돌과 바닷가 풍경을 정원으로 옮겼고 '치유정원'에는 곶자왈과 송이석, 돌담, 항아리 등이 등장한다. '제주 바람결 촐밭'과 '바람이 스치는 뜰'은 바람에 흔들리는 그라스류와 초화류를 중심으로 제주의 초지와 바람을 표현했다.

제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활해온 공간과 기억도 충분히 하나의 정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면 속 정원은 다음 달 실제 공간으로 옮겨진다. 선정된 정원사들은 10월5일부터 16일까지 바람모루공원에서 작품을 직접 조성한다. 완성된 정원은 현장심사를 거쳐 금·은·동상을 가린다. 시상식은 박람회 기간인 11월7일 예정돼 있다.

관람객에게는 완성된 하나의 전시정원이지만 참여자에게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식물을 선정해 직접 정원을 완성하는 전 과정이 박람회 참여가 되는 셈이다.

마을 한쪽 작은 공간에서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정원과 박람회장에서 도민들이 자신의 기억을 풀어내는 정원은 규모와 목적이 다르지만 맞닿는 지점이 있다.

정원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도민이 직접 만들고 가꾸는 생활문화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임홍철 제주도 환경산림자원국장은 "정원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행정이 공간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도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고 가꾸는 문화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며 "마을정원과 정원문화박람회를 계기로 주민 참여가 일상으로 이어지고 제주 곳곳에 지역의 특성을 담은 정원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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