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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우의 작가만세]SF 소설가 박문영 "글은 성실히 쌓은 실패의 기록"

등록 2022.09.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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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에서 소설가로 변신

2013년 중편 '사마귀의 나라'로 한국SF어워드 대상

8년 만에 중편→장편으로 개작 '세 개의 밤' 출간

[서울=뉴시스] 박문영 작가 (사진=박문영 제공) 2022.09.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문영 작가 (사진=박문영 제공) 2022.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소설가 박문영은 2013년 중편 '사마귀의 나라'로 제2회 한국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8년만에 다시 '세 개의 밤'을 최근 출간했다. '사마귀의 나라'를 장편으로 개작한 책이다.

"사실 너무 거칠고 처절했어요."

8년 전에 쓴 '사마귀의 나라'를 다시 보니 표현이 아쉽고 설정이 작위적이었다. 초보 작가에서 소설가로 변한 이유도 있다.  그사이 '주마등 임종 연구소', '지상의 여자들' 등 다양한 SF(과학) 소설을 펴냈다. 한국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가로도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그 옛날 책을 다시 쓰게 된 건 독자들 떄문이다. 중편으로 출간된 그 소설을 제본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자들을 더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중편에서 장편으로 나온 '세개의 밤'은 출판사의 제안에서 시작된 배경도 있다.

"SF전문 출판사 아작이 '사마귀의 나라'를 3부작으로 확장해보자고 하더군요. 결과적으로 '사마귀의 나라'는 1부로, 그 3년 후 이야기를 2부로 구성해 출간됐고 책의 분량은 2배가 됐죠."

'사마귀의 나라' 자본의 불평등 문제점 찔러

2013년에 쓰기 시작한 '사마귀의 나라'는 "18대 대선 결과에 침울하며 쓴 소설이었다."

책은 2083년이라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SF의 전형적 세계관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용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사고한 현대적 작품이다. 특히 "삶에서 나오는 부조리의 묘사는 2010년 후 한국 사회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자본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사고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뉴스를 통해 국내 원전 시설 관리에 문제가 많다는 보도를 접한 그는 원전 폐기물 처리장이 되어버린 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국가가 사라지고 기업이 지배하는 2083년의 세계는 원전 폐기물로 오염돼 질병과 굶주림만 존재하는 참혹한 설정이다.

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애가 있다. 꼬리가 달린 아이 사마귀, 얼굴이 물집으로 뒤덮인 반점, 눈이 여덟 개인 팔룬의 시선으로 망가진 세상을 바라본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이름 대신 장애로 명명된다. 다리를 저는 여자는 '다리'라고 불리는 식이다.

박문영은 "능력주의가 온당하고 합리적인 가치인 것처럼 대두되고 있는 지금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세 개의 밤 (사진=아작 제공) 2022.09.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세 개의 밤 (사진=아작 제공) 2022.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8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세상도, 나도

"올해로 3년이 되어가죠? 시간이 빠르네요."(158쪽)

책의 2부이자 세계관에서 3년 후 미래는 '고르다'라는 도시로 아이들이 옮겨간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유토피아에 가까운 곳이지만 여전히 뒤틀리고 기업주의적인 세상을 그린다.

작가는 지난해 개작을 하며 8년 사이 많은 것이 변한 것을 실감한다. 세상이 변했고 자신의 생각이 바뀐 부분도 많다.

"그 사이 저에게 생긴 변화를 담으려고 했어요."

1부에서 이야기와 문체의 톤이 조금 변했지만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도 다르지 않다. 그러는 와중에도 환경과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는 더 늘어났다.

이야기 속 도시 '고르다'에서는 새우, 게, 문어, 낙지 등의 생물을 산 채로 삶거나 얼음물에 넣어 옮기는 일이 불법이다. 분절된 기관에도 신경과 감각이 남아 있어 동물을 존중하자는 취지다.

동물권에 관심이 생긴 것이냐는 질문에 박문영은 대뜸 호주의 동물정의당 지지자가 10만 명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세요. 시간이 지나면 보편적인 이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그린 SF 작가지만 마냥 비관적인 건 아니다. 지금의 사회가 더 혼란스럽고 희망이 옅어진 것이 아닌 과거엔 나쁜 일들이 외부에 덜 노출된 것이라고 박문영은 믿는다.

[서울=뉴시스] 박문영 작가 (사진=박문영 제공) 2022.09.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문영 작가 (사진=박문영 제공) 2022.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SF 작가 되기까지
"시작은 SF가 아니었어요."

2015년 '사마귀의 나라' 이후 SF에 집중하고 있지만 박문영의 시작은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이다. 당시 '파경'이라는 단편소설을 내며 데뷔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그의 소설을 뽑아준 이는 SF평론가(심완선)였다.

"심완선 씨가 아니었다면…저는 계속 그림 그리지 않았을까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책 표지나 영화제 일러스트를 그리던 그는 자주 가던 온라인 사이트에서 단편소설 공모전 소식을 보고 원고를 썼다. '파경' 이후 두 번째로 쓴 작품이 '사마귀의 나라'다.

SF에 가까워진 것은 영미권 여성 SF 작가인 어슐러 르 권, 제임스 팁트리 쥬니어 등 "다른 방식과 시선으로 SF를 다룬 작가를 접하고부터다."

박문영은 소설 작업에 대해 "처음에 원했던 이야기와 끝내 나온 이야기가 일치하는 법이 거의 없다"면서 "결국 글은 성실히 쌓은 실패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쓰고 성실하게 쓸 수 있는 건 엉덩이의 힘이다. "오랜 공백을 두고 쓴 이번 책도 구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끝내 완성한 건 누구보다 강한 제 지구력이 밑천이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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