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준, 톱가수가 떠나는 법···말년 활동자제 스타상 유지
【서울=뉴시스】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보기 힘든 학사인데다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펼치면서 '가수 출신 정치인 1호'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소박하고 친근함으로 기억되는 가수다.
가장 큰 이유는 특유의 소탈한 웃음 덕분이다. 최희준의 본명은 최성준이다. 손석우가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이름에 '기쁠 희' 자를 넣어 '희준(喜準)'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최희준은 실제 웃는 모습이 아주 천진하게 느껴지는 소시민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다. 1995년 개명 절차를 마쳐 최희준이 본명이 됐다.
【서울=뉴시스】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최희준은 '영원한 하숙생'으로도 불린다. 그를 전국구 스타로 만든 노래가 '하숙생'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군방송 'AFKN'을 즐겨 들으며 최신 팝송을 외우다시피했을 정도로 음악에 빠진 그는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직업가수로 노래를 시작했다.
【서울=뉴시스】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1960년 손석우가 작사, 작곡한 '우리애인은 올드미스'를 녹음하면서 프로 데뷔했다. 이 곡이 1961년부터 유명해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1965년부터 이듬해까지 KBS 라디오 일일 드라마 '하숙생'의 주제가 '하숙생'으로 데뷔 5년 만에 스타덤에 올랐다.
1960년대는 개성 강한 가수들이 백화제방한 시기이기도 하다. 박 평론가는 "최희준의 등장과 때를 같이해 한명숙, 패티김, 현미, 남일해, 이금희 등이 대거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60년대 개성시대'가 펼쳐졌다"고 평했다.
박 평론가는 "최희준은 스스로 목소리로만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고 늘 강조했는데, 사실 폐활량이 남들보다 굉장히 적어서 가사를 마디마디 뚝뚝 끊어 노래를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이러다 보니 자칫 듣는 맛이 떨어질 수 있어 깊이 있는 감정 표현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애썼다고 인터뷰 당시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부와 인기를 한 몸에 누리면서 '마이카족 가수 1호'라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스캔들이 전혀 없던 가수로도 통했다.
박 평론가는 "최희준은 다양한 장르와 리듬의 노래를 폭넓게 불렀는데 당시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재즈의 스윙 리듬까지 포괄하며 다양한 노래로 10여 년 간 전성기를 누렸다"면서 "아울러 최고 가수답게 당시 최고 작곡가들과 함께 콤비를 이뤄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손석우, 김호길과 함께 이봉조, 길옥윤, 김기웅 등이 대표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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