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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잘 모셔라, 복 받는다…보기들

등록 2011.02.19 08:31:00수정 2016.12.27 2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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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차길진의 시크릿가든<89>   서구식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바쁘고 번거롭다는 이유도 크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한 몫을 한다. 어차피 제사나 차례도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자는 의미이니 추모회나 기도회로 대체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조상을 위하는 마음만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관련기사 있음>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서울=뉴시스】차길진의 시크릿가든<89>  

 서구식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바쁘고 번거롭다는 이유도 크지만, 종교적인 이유도 한 몫을 한다. 어차피 제사나 차례도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자는 의미이니 추모회나 기도회로 대체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조상을 위하는 마음만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사실 제사를 지내는 민족은 전 세계에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제사 지내는 풍습은 외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해 온갖 정성으로 음식을 차리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절을 하는 모습은 영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인의 카르마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현대화와 서구화가 진행돼도 죽으면 제사상을 받고 싶고, 또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최근 한 40대 사업가의 구명시식에선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 사업가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구명시식을 연기했다. 그래서 다시 날짜를 잡은 것이 14일 후. 그런데 하필 그날은 돌아가신 부친의 제삿날이었다. 부친의 제사는 큰형이 맡고 있었는데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제사 대신 항상 기도를 드렸다. 결국 1984년도에 돌아가신 부친은 단 한 번도 제사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형님이 제사상을 올리지 않아 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장남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제사상을 올릴 수도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구명시식 날짜가 하필 부친 제삿날로 연기된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구명시식 당일, 그는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던 터라 서울을 향해 급하게 차를 몰았다. 토요일 고속도로 정체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히던 고속도로가 한산했다. 차량이 좀 많았을 뿐 어느 정도 속력을 내며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꽉 막히는 토요일 오후였지만 서울 시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라디오에서는 막히는 구간이 많다고 방송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차가 잘 빠져 무사히 잠실 법당까지 시간 맞춰 올 수 있었다. 그는 의식을 기다리면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버지께서 일부러 일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식이 시작되자 검은 어둠 속에서 부친 영가가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영가의 모습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로 결정 난다. 잘 살고 잘 죽은 영가는 한 눈에 좋은 인상을 풍기게 마련. 여기에 자손이 정성껏 모시기까지 하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그런데 부친 영가는 허름한 차림새에 어두운 표정이었다. 살아서 얼마나 근심 걱정이 많았는지 볼은 깊숙이 패여 있었다. 후손들이 정성껏 상을 올렸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사를 올리지 않은 탓에 기력 하나 없이 구명시식에 초혼됐다.

 부친은 생전에 청계천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했다. 당시 청계천의 삶이 그러하듯 참 먹고 살기 힘들었다. 게다가 작은 공장에 여러 번 화재가 나는 바람에 번번이 망했다. 가족들은 늘 가난에 지쳐 있었다. 영가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한탄했다.

 “내가 조상을 잘못 모셨기 때문에 나도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구나. 너는 반드시 잘 모시도록 해라”라고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설마 자신이 제사상을 받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 그는 죽으면 끝이 아니라며 죽은 영혼에게 잘 하면 산 사람이 고스란히 복을 받는다고 했다. 왜 이렇게 쉬운 일을 안 하려 하느냐며 행태를 꼬집자 아들은 이제부터라도 제사상을 거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20년 만에 처음 받은 제사상 앞에서 한동안 목이 메어 눈물 흘렸던 영가를 떠올리며 제사만큼은 종교를 초월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제사는 조상을 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도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조상을 잘 모시면 자신과 가족에게 복이 돌아오는 것을 모른다. 자기가 잘 나서 출세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조상이 돌봐서 잘 되는 경우도 있다. 제사도 제대로 안 모시면서 복을 받고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복권도 사지 않고 당첨되기를 바라는 거와 같다.

 우리는 복에 관한 말들을 종종 쓰곤 한다. ‘복 있는 관상이다’ ‘그 여자는 참 남자 복이 많다’ 등등. 일상생활에서 ‘복’이란 말은 행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편안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모처에서 병원을 개업한 지 꽤 오래된 한 의사가 찾아와서는 덜컥 “법사님 저는 참 복 없는 놈입니다”라며 자신의 박복한 인생 스토리를 털어놓는 것이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그만 양친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후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친척집을 떠돌며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겨우겨우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됐다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의사가 됐단다. 막상 의사가 되고 나니 부잣집 아가씨들이 줄을 서더군요. ‘이제는 잘 살 수 있겠구나’ 싶어 그 중 재산이 넉넉하고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를 골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뒤 한 10년 정도까진 처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한다. 병원 개업 때에도 처갓집 신세를 톡톡히 봤다. 한마디로 의사 타이틀에 돈 많은 처가를 둔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나이였다나.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기 시작할 무렵 장인 어른의 사업체가 부도가 났다. 그 바람에 이제는 거꾸로 처가의 생활비와 조카들의 교육비까지 몽땅 그가 대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얼마나 박복한 놈입니까? 뭐가 좀 되려고 하는 이 마당에 이제 처가 생활비까지 제가 책임져야 하다니요?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러면서 청한 구명시식. 나 역시 이 의사 선생님의 기구한(?) 스토리가 마음에 걸려 그의 원대로 구명시식을 올릴 수 있게 해드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타나신 그의 양친 영가께서 그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시는 게 아닌가.

 “이놈아! 니가 복이 없는 놈이라고? 하나뿐인 아들을 영계에서나마 잘되게 해주려고 중요한 순간마다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줬건만 결국 한다는 소리가 ‘박복한 놈’이라는 소리라니!”

 알고 보니 그의 부모님께선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6·25 당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돼 무참히 사살되신 것이었다. 그랬기에 시신조차 제대로 찾지 못해 장례도 시신 없이 치를 수밖에 없었고, 돌아가신 날도 정확하지 않아 제사도 올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양친 영가께선 하나 뿐인 아들인 그가 제사조차 지내주지 않자 이를 내심 서운하게 생각하셨던지, 냉큼 제사부터 지내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다. 아무리 혼자 커 왔기로서니 모두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의사가 됐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부모 영가가 수호신처럼 그를 지켜주었기에 가능했음을 깨닫게 했다.

 “보세요. 선생님은 결코 박복한 분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것보다 더 간절히 영계에서 선생님을 도와주고 계시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박복하다는 생각은 접고 그저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 꼭 제사 올리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이 선생님께 큰 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나의 말에 그는 눈물을 훔치며, 연신 양친영가께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만큼 그의 가슴에 ‘고아’라는 한이 강하게 맺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 한이 자신을 뭘 해도 안 되는 ‘박복한 인간’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소주 한잔에 ‘나는 참 복 없는 사람이야’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다. 복이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 하나만 긍정적으로 바꾸고, 마음 한 가닥만 편안하게 다잡는다면 복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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