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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모신 독일 성오틸리엔 수도원, 엿봤다

등록 2011.11.17 16:16:39수정 2016.12.27 23: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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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독일)=뉴시스】김정환 기자 =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마우로 수사가 성당 내 제대에 자리한 성 김대건(1821~1846) 신부의 동상을 소개하고 있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성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로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근교에 자리한다. ace@newsis.com

【뮌헨(독일)=뉴시스】김정환 기자 =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마우로 수사가 성당 내 제대에 자리한 성 김대건(1821~1846) 신부의 동상을 소개하고 있다.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성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로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근교에 자리한다. [email protected]

【뮌헨(독일)=뉴시스】김정환 기자 = 가톨릭 수도원만큼 흥미와 관심의 대상인 종교시설은 그리 많지 않다.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세속적 권력을 탐하는 추기경 같은 가톨릭 내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혁신 세력으로 설정되는 것이 수도원이다. 특히,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검은 옷 차림으로 대표되는 수도사들의 독특한 복색은 그들을 은밀함을 넘어 신비로운 '비밀결사'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15일(현지시간)에 찾은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서북쪽의 한적한 시골마을 오틸리엔에 자리한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오히려 사람냄새가 풀풀 나는 곳이었다.

 목공소에서는 목공들이 탁자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고, 축사의 소와 돼지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김나지움(한국의 중고교) 학생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체육관에서는 태권도 수업이 한창이었다. 독일의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 없었다.

 이 수도원에는 100여명의 수사가 살며 각각 '노동'을 나눠서 수행한다. 농부, 목동, 재봉사, 목사 등 수도원의 자급자족을 위한 일부터 출판사 대표, 수도원 내 김나지움 교사 등 가톨릭 정신을 대중에게 전하기 위한 일 등 다양하다. 이 일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출판사 대표가 어느날 갑자기 목동이 될 수 있고, 재봉사가 교사가 될 수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세속과 별다를 것 없는 노동을 하면서도 수사인 만큼 수도 생활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다. 오전 5시15분 수도원 중심의 예수성심 성당에 모여 아침 기도를 시작으로 하루를 연다. 이어 오전 6시15분 성당에 다시 집결해 아침 미사를 드린 뒤 아침을 먹는다. 오전 7시30분부터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낮 12시에  성당으로 가 낮 기도를 하고, 점심을 든다. 이후 또 일을 하다 오후 6시부터 성당에서 저녁 기도를 올린뒤 저녁을 먹는다. 쉬거나 밀린 일을 한 뒤 오후 8시부터 성당에서 끝 기도를 하고 다음날 새벽 기도 때까지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 하루가 쳇바귀처럼 돌아간다.

 이 수도원의 마우로 브로머 수사는 "기도 시간이 되면 누구나 그때까지 하던 일이 99% 완성돼 있어 조금만 더하면 그 일을 완성할 수 있더라도 무조건 성당에서 기도를 마친 뒤 되돌아와서 해야 한다"며 "이는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는 성 베네딕토회의 핵심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로머 수사는 김나지움의 교사다.

 성 베네딕토회는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모체인 성오틸리엔연합회 등 21개 연합회가 모여 형성하고 있는 수도회다. 6세기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베네딕토(480~547) 성인의 뜻을 따른다.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 생활을 하며 수도하는 '정주 수도'의 개념을 처음 만들고, 72개 조항의 공동 수도생활 규칙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조성된 공간이 수도원이다. 당시 가톨릭에서 수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인적이 없는 사막이나 깊은 산속 동굴에서 홀로 지내며 수도하는 은수생활을 해온 것과 비교하면 혁명적이었다.

【뮌헨(독일)=뉴시스】김정환 기자 =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근교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전경.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성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의 수도원으로 수도사 약 100명이 생활하고 있다. ace@newsis.com

【뮌헨(독일)=뉴시스】김정환 기자 =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근교 성 오틸리엔 수도원의 전경.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성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의 수도원으로 수도사 약 100명이 생활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성 오틸리엔 수도원은 상당히 개방적이어서 수도원 한 쪽에 '순례자의 숙소'라는 이름의 호텔식 피정의 집을 만들어 독일은 물론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묵으면서 수도원 내 모든 기도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성 오틸리엔 수도회는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어 유럽에 성지 순례를 오는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이 꼭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인연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선교사'라는 표어를 기치로 1884년 독일 보이론 수도원의 안드레아스 암라인 수사 신부에 의해 설립된 오틸리엔 연합회는 표어에 맞춰 적극적인 해외 전교에 나섰다. 첫 전교 지역은 독일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였고, 1909년 2월 두 번째로 수사를 파견한 곳이 바로 바로 조선이었다.

 두 명의 수사가 서울 혜화동에 처음 터를 잡은 성 오틸리엔 수도회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1924년 평안남도 덕원으로 이전했다. 1950년 북한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발발로 50여명의 수사들을 잃은 뒤 1·4후퇴 때 남하해 경북 왜관에 새로 수도원을 설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로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이다.

 성 오틸리엔 수도회는 수도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수성심성당의 제단 안에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성 김대건(1821~1846) 신부의 유해 일부를 안치하고 있다. 김 신부를 아시아의 대표 성인으로 삼아 동상으로 만들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성인인 르완다의 칼 르왕가 성인, 유럽의 오틸리아 성녀, 보니파치오 성인의 동상과 함께 제대에 세워놓고 있다.

 또 수도원 내 박물관에는 한국 코너를 설치해 조선에서 활동하던 수사들이 가져온 각종 유물을 전시 중이다. 한복, 갓, 고가구, 가야금 등 악기들을 통해 당대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최초의 가톨릭 잡지인 '가톨릭 소년' 창간호, 수사들이 조선 학생들에게 신문명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쓴 교재 등 수십 점에 달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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