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심층리포트]한국공학교육인증원 '허와 실' 이대론 안된다 ①

등록 2012.02.02 09:17:24수정 2016.12.28 00:09:5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

2007년 1월,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사명을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변경했다. '애플=컴퓨터'라는 과거의 공식과 단절을 선언한 것. 이후 아이폰은 세계 모바일 시장의 대격변을 일으켰다. 당시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앞다퉈 "한 명의 공학자(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극찬을 쏟아냈다. 한국의 '잡스'를 키워야한다는 바람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의 숙원이었다. IT 강국이면서도 미국과 일본 기업의 '부품 공장' 혹은 '하청 기업'으로 평가 절하를 받았던 게 현실. 정부는 물론 대학도 책임을 절감했다. 그 결과 '한국공학교육인증원(원장 김영길)'이 탄생했다. 하지만 출범 13년째를 맞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하 공인원)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란 조롱을 받는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효성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는 3회에 걸쳐 공인원의 도입 배경과 실효성 등을 집중 분석 한다. 첫 번째 순서로 '한국 공학교육시스템의 사생아,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을 싣는다. (편집자 주)  



학생은 불만,기업은 불신,학교는 전전긍긍…한국 공학교육시스템의 사생아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서울=뉴시스】송윤세 · 이인준 기자 = #1. 대학에서 전자전기학을 전공한 A(31)씨는 졸업 후 관련 업종에 취업했지만 "솔직히 공학교육인증을 받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전공수업에서 배운 것들과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증을 받기 위해 거의 전공수업만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교양과목을 듣지 못해 학점관리를 못했다는 것이다.  

#2. 현재 서울지역의 한 사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W교수는 인증제에 대해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취지는 그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대학들이 충분히 검토도 않고 경쟁적으로 도입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었다고 했다. "한국 대학교육 시스템의 병폐를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라는 게 그의 평가다.  

#3. 국내 대기업의 인사과에 근무하는 C(45)씨는 공학교육인증제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후 인사 담당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그조차 공과대학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인증하는 제도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회사는 인증 프로그램 이수자에 대한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은 대학이 경쟁력 있는 공학기술인을 배출해낼 수 있는 공학교육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안고 출발했다.  

1999년 출범 당시만 해도 공인원은 공학도뿐만 아니라 기업들로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초대 이사장으로, 부총리까지 지냈던 김우식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특히 2002년에는 삼성전자 신화를 일군 윤종용 전 부회장을 2대 이사장으로 영입,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등 쟁쟁한 공학자들도 원장직을 거쳐 갔다. 현 원장인 김영길 한동대 총장도 미국 저명 과학자 인명사전인 '미국의 과학자들(AMWS)'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큰 기대와 달리 공인원의 '13년 성적표'는 초라하다.

◇ 학생 "차별성에 의문"…기업 "실효성에 의문"  

공인원이 지난해 말까지 배출한 누적 인증 프로그램 이수자 수는 2만9273명. 2004년 129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7년 만에 200배 이상 크게 늘었다. 놀라운 양적 성장이다. 하지만 정작 수요자인 공학인증 프로그램 이수 학생들은 인증제도의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인증제 이수자들은 "공학인증을 받은 것과, 받지 않은 것에 대한 차이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결국 "인증교육을 받아도 차별성은 물론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4년제 S대학의 전자전기학과를 졸업한 D(30)씨는 "대기업 면접전형에서 혜택이 있다는 학교 얘기만 듣고 인증 프로그램을 이수했지만 전공과목 수업을 많이 듣는다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공학인증제도의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재학생과 졸업생 모두 이마저도 회의적이다. 실제로 상당수 학생들은 인증제가 취업에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인증 이수를 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증제에 차별성이 없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도 이수자들이 남다른 업무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기업이 인증여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공인원은 지난해까지 모두 57개 기업과 기업의 계열사, 협회 등으로부터 인증 졸업자에게 취업 가산점을 주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LG-노텔, NHN, KT, SK커뮤니케이션즈, SK텔레콤, STX그룹 등 일부 대기업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지 않고 단순히 우대하겠다는 의사만 나타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S기업은 2010년부터 인증 졸업생에 대해 '서류전형 우대' 혜택을 준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인증 졸업생이 이공계 직군에 지원할 때만 가산점 혜택이 있다"면서 "상세한 내용은 채용과 관련한 내용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만 말했다.

삼성전자, LG-노텔, 신세계건설 등의 경우, 서류전형이나 면접전형에서 가산점 10%를 주고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증 프로그램 이수자에게 온전한 혜택이 돌아간다고 보기 어렵다.

지방 4년제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E(26)씨는 "몇 개 기업에서만 인증혜택을 주기 때문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며 "오히려 전공수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학점 관리에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증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인증제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인사담당자도 있다. 인증제 혜택을 주는 기업이 삼성그룹, STX그룹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IT나 통신업종 등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기업 인사과에 근무하는 C(45)씨는 "공학교육인증제도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며 "인증 프로그램 이수자에 대한 혜택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인원은 세계 각국의 공학교육의 등가성(等價性)을 서로 인정하기 위한 협약체인 워싱턴어코드(Washington Accord)에 우리나라가 2007년 정회원으로 가입한 것도 큰 결실로 꼽고 있다. 하지만 해외 유학을 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큰 혜택일 수 없다.

◇학교는 전전긍긍…인증제도를 포기하는 대학도  

대학들도 뾰족한 수가 없다. 대학으로서는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공인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학교와 학과마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세부규정이 있지만 공인원에서 만든 인증기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불만사항 중 하나인 전공수업 비중이 높다는 점은 공인원의 인증기준에 명시된 사항이다. 공학교육인증을 받으려면 전공학점을 54학점 이상, 설계교과를 12학점 이상 이수하도록 돼 있다. 이마저도 올해부터 완화되는 규정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각 60학점, 18학점이었다.  

한 서울지역 4년제 대학에 있는 공학교육인증센터 직원은 "공인원에서 인증기간 끝날 때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교과과정 전체를 대상으로 평가 한다"며 "학교별로 세부 규정은 있지만 공인원에서 내려주는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인원의 인증기준이 부담스러운 몇몇 대학들은 중도에 인증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도 한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와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는 각각 2008년과 2009년에 공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학과에 적용하려다가 포기했다. 공인원에서 요구하는 전공학점 기준에 맞추려면 다양한 수업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학내 구성원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중 한 학교를 졸업한 F씨는 휴학 후 복학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덕분에 F씨는 1학기 때 필수인증과목으로 들었던 8학점이 쓸모가 없게 됐다. 이후 전남대 전기전자공학과 등 일부 학과도 공학교육인증을 하려다가 철회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W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현 교육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학들이 인증제의 장단점 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인증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생각해 시스템 도입부터 하고보자는 식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공학교육인증제의 취지는 좋지만 각 대학들이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특유의 '밀어붙이기식'으로 인증프로그램을 도입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효성 부족한 공인원, 매년 '쑥쑥' 성장

학생, 기업, 학교 모두 인증제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과 별개로 공인원의 성장속도는 가파르다.

2002년 공인원에서 인증을 받은 대학은 2곳, 학과는 1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공인원에 인증을 받은 대학은 97곳, 학과는 651개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국내 공과대학의 학과 중 약 25%가 인증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공인원은 정부 예산과 인증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인증평가 도입초기인 2002년까지 공인원의 운영비는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다. 교과부와 지식경제부가 매년 공인원에 약 30억원 이상 지원했다.

현재는 정부예산 65%, 인증료수입 35%의 비율로 운영된다. 공인원이 한 해 벌어들이는 인증료 수입은 10억이 넘는다. 공인원에 따르면 인증료 수입은 2009년 9억7650만원, 2010년 17억4650만원이다.

인증료는 대학과 학과 모두 낸다. 신규인증을 받는 학과가 있으면 대학이 350만원을 내고, 학과에서도 학과당 350만원을 추가로 낸다. 신규인증을 받는 학과가 2개면, 대학이 350만원, 학과별 350만원씩 모두 1050만원이 인증료로 나간다. 인증을 받고 나서도 매년 같은 방식으로 대학과 학과가 인증유지비 40만원씩 낸다. 또 매 3년마다 실시되는 중간평가에서도 350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공인원은 올해부터 대학과 학과의 신규인증 신청비를 100만원, 인증유지비를 10만원씩 인상할 예정이다.

하지만 예산에 비해 조직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공인원의 상근직원 수는 사무국장 1명, 인증사업운영팀 8명, 연구팀 3명, 기획관리팀 7명 등 20명이 채 안 된다. 거의 대부분은 비상근직원이다. 이들은 주로 공대교수들로 구성된다. 임원 15명 외에도 운영위원 125명, 각 대학 평가를 위해 필요한 500~600명의 평가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평가자들은 교수, 산업체 연구원 등 2800명의 인증평가경험이 있는 평가풀단에서 매년 선발한다.

지난해 공인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7억8000만원, 지식경제부에서 2억5000만원을 받아 모두 30억3000만원의 정부 예산을 받았다. 또 인증료 수입은 41개 대학 270개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10억8850만원 받았다. 모두 41억1850만원이다.

공인원은 이 돈으로 각 대학과 학과에서 실시하는 인증프로그램을 평가하고 기관을 운영하는 데 사용한다.

상근직원은 중소기업 직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급 이상 이사장과 원장은 월급이 따로 없다. 평가자들은 매년 4~5월께 대학 방문평가 2박3일간 진행하면서 단장 1명 150만원, 평가위원 2명 각 100만원씩 받는다. 인증료 수입 중 절반은 방문평가 인건비에 들어간다. 여기에 매번 회의가 열릴 때마다 참가한 임원과 평가자는 20만원씩 추가로 더 받는다.

공인원 고위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운영비가 부족한 실정"이라면서도 "하지만 지원금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고 선을 그었다.

◇교과부·공인원 "발전방향 모색 중"  

교과부와 공인원도 인증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교과부는 지난해 공인원과 함께 전문가와 대학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인증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했다. 인증 프로그램과 실제 기업 현장의 연관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교과부와 공인원은 전공과 설계교과이수 조건을 낮추고 학생이 인증 프로그램 이수여부를 결정할 시기를 2학기 정도 앞당길 수 있도록 개선했다.  

주무부처인 교과부 관계자는 "지난해 학교측의 요구와 현실적인 요건을 반영해 인증평가기준을 조절했다"며 "인증 이수자들이 실제 공학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전문가 사이에 많은 논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또 공인원이 인증과 검사를 통해 대학의 가진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그렇게 되면 의견수렴이 좀 더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공인원은 미국처럼 공학인증제도와 기술사 자격증 제도를 연계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인 혜택을 보장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인원 수석부원장인 김성조 중앙대 교수는 "기업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업인사담당자들을 만나 봐도 인증제도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기 보다는 막연한 불평불만만 늘어 놓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사 제도와 인증제도의 연계를 통해 기업들이 인증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외국 공학 선진국을 보면 인증제도를 이수한 학생만 기술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업이 먼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지원 혜택이 늘어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