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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무료 '낙태영가 천도제' 지내는 지산스님

등록 2012.05.22 10:16:10수정 2016.12.28 0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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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지산스님.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불교에서는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교하죠. 이처럼 어렵게 인간으로 잉태돼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세상밖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생명을 빼앗긴 태아,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서울 노원구 공릉동 지하철 6호선 공릉역 1번 출구로 나와 원자력병원 방향으로 100m쯤 가면 상가건물에 벽운사라는 간판이 나온다. 이 건물 3,4층에 대한불교 조계종 금강산 건봉사 서울포교당인 벽운사가 있다.

 주지인 지산스님은 15년 전부터 사찰에서는 처음으로 낙태아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천도제를 지내오기 시작했다. 낙태아 천도제는 요즘은 많은 사찰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은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솔직히 벽운사에서도 처음엔 몇 십 만원씩 비용을 받았어요. 주요 일간신문에 광고를 내 희망자를 모집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5년 전부터 요청하는 분들에게 무료로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낙태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다시 살생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산스님이 태아 천도제를 하게 된 것은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22세 젊은 남녀 신도가 찾아와 양가 부모의 반대가 심해 헤어지기 직전에 찾아와 상담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 초음파 사진을 처음보고 태아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 남녀는 결혼해서 아이 잘 낳고 지금도 벽운사 신도로 자주 온다고.

 천도제를 의뢰한 사연도 다양하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수백통의 편지는 구구절절 애통한 마음과 참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얼마 전엔 19살 남녀가 찾아왔는데 여자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어요. 전화로 낙태아 천도제를 등록했는데 벽운사에 와보니 아이의 위패가 없다며 ‘우리 아이 어디 갔느냐’고 울부짖었던 겁니다. 한쪽 구석에 있어 찾지 못한 건데 나중에 발견했지요.”

 그 정도로 낙태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뉘우치는 젊은 세대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남녀가 만나 쉽게 성관계를 갖고 아이가 생기면 별 생각없이 낙태수술을 하는 풍조예요. 결혼한 부부 간에도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너무도 쉽게 아이를 지웁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 아이 키우기도 어려워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언젠가는 낙태한 사실에 죄책감이 살아나 괴로워합니다. 태아도 분명히 생명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증거예요.”

 낙태아 천도제에는 젊은 층보다는 40, 50대 여성들이 많고, 할머니라고 해야 할 60대 이상 여성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뉘우치고 아이를 극락왕생을 빌며 죄를 씻고 싶은 마음에서 새삼 천도제를 하는 것일 터이다.

 “불교신도뿐 아니라 타 종교인들도 찾아옵니다. 기독교와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일을 겪은 분들이죠. 태어나지도 못하고 아무 죄도 없이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낙태율이 ‘성의 천국’이라고 하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도 높아 세계 최고라고 한다. 매년 수백만명의 태아가 가장 가까운 부모 손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에 고통을 당하는 것도 낙태가 만연해서라고 지적한다. 기독교 가톨릭도 반대하는 낙태에 대해 불교는 태아도 생명이므로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한다.

 “천도제는 위령제입니다. 중천을 떠도는 한 많은 영가가 위령제를 통해 한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편하고 나라도 편한 것입니다.”

 그는 일본인들은 집안의 길흉사를 앞두고 반드시 낙태영가에 대한 위령제부터 지낸다고 말했다. 천도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참회를 통해 깊이 잘못을 뉘우치고 영가의 왕생을 빌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털어놓는다고.

 지산 스님은 젊은이들이 많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성 의식을 바로잡고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는 계도적 차원에서 낙태를 경험한 젊은이들이 좀 더 많이 천도제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성에 대한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꿨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서울의 한 주요 일간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지산스님은 산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어느 날 자연스럽게 삭발하게 됐다고 입산 계기를 간단히 얘기했다.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78호(5월2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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