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훌륭한 연기, 난해 스토리…영화 '끝과 시작'

영화 '끝과 시작'에서는 "에로스를 담고 싶었다"는 민규동(43) 감독의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나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고 가학적이다. 채찍과 밧줄, 베개 등 평범치 않은 소품들과 행동은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부풀린다.
'끝과 시작'은 2009년 영화 '오감도'의 네 번째 에피소드 '끝과 시작'을 장편으로 늘려 4년 만에 관객들 만나는 작품이다. 액자 형식과 플래시 포워드, 즉 이야기 도중 미래의 한 장면을 삽입하는 표현방식으로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간다.
5년 전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과 '정하'(엄정화)는 따분한 술자리를 피해 정하의 집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재인은 정하에게 작업 중인 대본을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5년 후 정하는 재인이 들려준 환상 속 이야기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 재인과 함께 스페인 이민을 준비하며 행복한 삶을 꿈꾸던 정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재인을 잃는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후배 나루와 밀애 중이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정하 앞에 갑자기 나루가 나타나 제발 곁에만 있게 해달라며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원치 않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엄정화(44)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불륜녀에 대한 질투, 증오 등 다양한 감정을 폭발시킨다. 나루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남편에게 무의미했음을 확인하고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엄정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지도 못하고 붙잡을 수도 없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영화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인물이다.
새로운 창작욕을 뽑아내기 위해 '마약'같은 자극제를 찾는 황정민(43)의 모습도 새롭다. '신세계'에서 보여준 깡패의 건들거림이나 '너는 내운명'의 절절한 멜로와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사랑'에서 보여준 나쁜남자와도 거리가 멀다. 만족을 모르고 더 세고 강렬한 자극을 위해 나루를 탐하는 얼굴에서는 절실함마저 드러낸다.

'여고괴담2'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에서 민 감독이 보여준 동성애적 코드도 김효진이 떠맡았다. "짝사랑을 10년 동안 하고 있다가 박해 받는 방식으로 사랑을 이루는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배우들은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밀도 있게 표현했다. 민 감독도 애증의 삼각관계로 뒤얽힌 세 남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살렸다. 연기력, 감각적 연출, 몽환적이면서도 아늑한 영상 등은 영화의 흥미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관객이 나루라는 인물을 얼마나 잘 받아들일는지는 미지수다. 정하와의 관계 중 나루가 나지막하게 "나는 너야"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바닥을 메우는 담쟁이넝쿨이 나루의 팔과 다리로 변하는 장면은 나루가 실존인물인지조차 의심케 만든다.
'오감도'의 단편을 87분으로 늘리면서 애매함을 상당부분 덜어냈지만 여전히 스토리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난해하고 모호하다. 황정민의 친절한 내레이션과 달리 스토리의 기승전결은 불친절하다. 시점에 따라 결말에 대한 해석도 엇갈릴 듯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4월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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