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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다→올린다…韓 웹툰 20년 만화 종주국 日·美도 홀렸다

등록 2025.12.14 06:00:00수정 2025.12.14 0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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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플랫폼 중심으로 만화 시장 재편…IP 확장 가속화

상위 인기 작가 연봉 평균 14억…유망 직업군으로 부상

韓웹툰, 세계 콘텐츠 표준…세로 스크롤이 넘은 국경·언어

[서울=뉴시스]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고바우 만화방' 내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고바우 만화방' 내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25.1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이 이제는 스크롤을 내린다."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공식 출시한 지 20주년이 됐다. 만화는 취미·예술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만화는 서점이나 만화 대여점에서 책을 꺼내 드는 행위로 시작됐다.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골라 들고, 첫 장을 넘길 때의 묘한 설렘을 느끼던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풍경은 조용히 사라졌다. 만화는 책에서 PC 화면, 또 스마트폰으로 옮겨갔고, 우리의 독서 습관과 콘텐츠 소비 방식을 바꿨다.

사실 2015년 네이버가 공식 서비스를 내놓기 이전에도 '인터넷 만화' 서비스가 있었다. 실제 만화책을 이미지로 저장해 이미지 파일로 보여주거나 전용 뷰어를 깔고 보는 방식이다.

그러다 2003년 다음 포털이 ‘만화속세상’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다. 이어 네이버도 포털 공간에서 온라인 만화를 연재하다 2005년 12월 '웹툰'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온라인에 연재 공간을 만들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만화 플랫폼 유통체계가 본격 상용화한 것.

특히 2006년 '도전만화'를 통해 누구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며 창작의 문턱을 낮췄고, 이후 수많은 인기 작가가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2009년에는 웹툰 전용 앱을 출시하며 웹툰 문화는 PC에서 모바일로 대거 이동했다. 세로 스크롤 방식과 한 화면에 한 컷을 배치하는 '스마트툰'은 스마트폰 기기에 최적화된 웹툰 문법을 완성했다.

웹툰의 등장은 단순히 만화의 형식이 바뀐 사건이 아니다. 독서 습관은 물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전반을 바꿔놨다. 책장을 넘기던 소비 동작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로 올리는 스크롤로 바뀌었고, 책장을 덮던 손길은 화면을 끄는 가벼운 터치로 대체됐다.
[서울=뉴시스] 네이버웹툰 초창기 서비스 화면.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네이버웹툰 초창기 서비스 화면.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1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만화 소비 달라졌다..…책장 넘기던 만화, 이젠 스크롤로

웹툰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로 스크롤 방식이다. 컷과 컷 사이의 여백, 페이지를 넘기는 리듬 대신 하나의 화면이 끝없이 이어진다. 독자는 더 이상 다음 페이지를 미리 예측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동작 하나로 서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긴 호흡의 연출은 마치 영상 콘텐츠처럼 몰입감을 높인다. 음악 효과, 화면 전환, 연출 타이밍까지 더해지면서 웹툰은 만화와 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로 안착했다.

이 변화는 콘텐츠 소비 패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짧은 호흡의 연재, 빠른 전개, 매주 혹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구조는 스마트폰 환경과 맞물리며 웹툰의 대중화를 가속화했다. 이 같은 구조는 독자가 특정 시간을 정해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 생활 리듬에 맞춰 수시로 이야기를 접하도록 만들었다. 매일 또는 매주 이어지는 연재는 독자의 방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웹툰을 습관적인 소비 콘텐츠로 자리 잡게 했다.

그 결과 웹툰은 '한 번에 몰아서 보는 콘텐츠'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진화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몇 컷을 읽고, 잠들기 전 몇 분간 이야기를 따라가며, 잠깐의 대기 시간마저 콘텐츠 소비의 시간이 됐다. 웹툰은 그렇게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화면으로 이야기를 읽는 시간이 늘면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스크롤 피로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웹툰은 모바일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이야기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웹툰은 독서의 문턱을 낮췄지만, 동시에 '얼마나 오래,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네이버웹툰은 미국 현지 시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뉴욕 자비츠 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 '2025 뉴욕 코믹콘(NYCC)'에 참가해 공식 부스를 열고 뜨거운 관심 속에 행사를 성료했다. 사진은 2025 NYCC 코스플레이 이벤트.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10.1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네이버웹툰은 미국 현지 시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뉴욕 자비츠 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 '2025 뉴욕 코믹콘(NYCC)'에 참가해 공식 부스를 열고 뜨거운 관심 속에 행사를 성료했다. 사진은 2025 NYCC 코스플레이 이벤트.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10.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MZ들의 스타가 된 웹툰작가…뜨기만 하면 억대 연봉

웹툰의 성장은 작가의 위상도 바꿔놓았다. 과거 만화가는 소수의 스타 작가를 제외하면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이었다.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부업을 병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플랫폼 중심의 웹툰 산업이 자리 잡으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연재 수익, 조회 수 기반 정산, 광고 수익, 유료 결제, 여기에 IP(지식재산) 확장 계약까지 더해지며 수익 구조는 다층화 됐다.

네이버웹툰이 2012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미리보기' 유료 모델과 2013년 창작자 수익 다각화 모델은 웹툰 산업의 전환점이었다. 원고료 중심이던 수익 구조는 유료 결제, 광고 수익 배분, 파생 상품 판매로 확장됐고, 월 수천만 원 매출을 올리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네이버웹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4년 연재 작가 건강검진 제도를 정례화하며 복지 영역까지 플랫폼의 역할을 넓혔다.

이제 웹툰은 더 이상 '가난한 예술가의 영역'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하나의 브랜드이자,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는 IP의 출발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웹툰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웹툰 작가 연 수입은 평균 4268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5000만 원 이상을 번다고 답한 작가 대부분은 네이버웹툰에 활동 중인 작가일 것으로 추정된다.

웹툰엔터테인먼트(네이버웹툰 미국법인)가 지난해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수익 상위 1∼100위 작가(해외 작가 포함)의 2023년도 연평균 수익은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에 달했다. 일부 인기 작가는 플랫폼과의 계약, 드라마·영화·게임화 등 2차 사업 수익을 통해 억대 연봉을 넘어섰다.

이 같은 변화는 진로 선택의 풍경도 바꿨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이들부터 직업 전환을 고민하는 성인까지, 웹툰 작가를 꿈꾸며 관련 대학 학과나 학원을 찾는 사례가 늘었다.
[서울=뉴시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왼쪽), '이태원 클라쓰'.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왼쪽), '이태원 클라쓰'.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K-콘텐츠의 한 장르라고?…K-콘텐츠 스토리 보고(寶庫) 됐다

웹툰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드라마·영화 등 영상 산업의 핵심 IP로 부상했다. 슈퍼히어로나 판타지 소설이 할리우드 콘텐츠의 핵심 원천이 됐듯, 한국 웹툰은 세계 콘텐츠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핵심 IP로 진화 중이다. 세로 스크롤이라는 형식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낮추며 글로벌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네이버웹툰은 2014년 영어·중국어(번체) 서비스를 시작하며 글로벌 진출의 원년을 선언했다. 일본, 북미, 유럽, 동남아 등의 시장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확장에 나섰다. 단순 번역 서비스에 머무르지 않고, 각 국가별 공모전과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지 작가 중심의 로컬 생태계를 구축했다. 일본에서는 라인망가, 북미에서는 웹툰 브랜드를 앞세워 모바일 친화적인 세로 스크롤 포맷을 정착시켰고, 이는 기존 만화 소비 방식과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네이버웹툰의 이 같은 전략은 성과로 이어졌다. 대만 웹툰 원작 '블랙 박스'가 넷플릭스 대만 TV쇼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웹툰 IP가 지역을 넘어 글로벌 영상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웹툰 포맷이 현지 창작자와 결합해 다시 글로벌 콘텐츠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웹툰→실사 영화로 이어지는 IP 진화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캐릭터 중심 서사는 언어 장벽을 낮추며 해외 독자에게도 직관적으로 전달됐다는 평가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인 웹툰 엔터테인먼트는 워너 브러더스 애니메이션(WBA)과 글로벌 배급을 목표로 웹툰 기반 애니메이션 10편을 공동 제작하기로 했다. 지난 8월에도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 '웹툰(WEBTOON)' 영어 서비스 내 디즈니 전용관에서 월트 디즈니 컴퍼니 대표작 100여 편을 세로 스크롤 웹툰으로 제공하는 내용 등을 담은 콘텐츠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한국 웹툰의 열풍에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제작사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웹툰은 이미 독자층과 팬덤이 검증된 '스토리 원천'으로 인식되며, 영상화와 각색을 전제로 한 협업이 활발해졌다. 웹툰 기반 IP는 드라마와 영화 공개 이후 다시 원작 조회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콘텐츠 생명 주기를 확장했다. 네이버웹툰 연재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등은 웹소설에서 웹툰, 영상으로 이어지며 모두 성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IP '나 혼자만 레벨업'은 전 세계 누적 조회 수 143억 뷰를 기록했다. '이태원 클라쓰'는 한국 드라마 흥행에 이어 일본 드라마 '롯폰기 클라쓰', 대만 드라마, 일본 뮤지컬로까지 재탄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웹툰의 글로벌 성과를 '콘텐츠 수출'을 넘어 '창작 생태계의 수출'로 평가한다. 한국에서 구축된 웹툰의 창작·유통·영상화 구조가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며, 웹툰은 세계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시스]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지난 3일부터 6일(현지 시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LA 애니메 엑스포'에 참가해 애니메이션 특별 상영회, 작가 사인회 등을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07.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지난 3일부터 6일(현지 시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LA 애니메 엑스포'에 참가해 애니메이션 특별 상영회, 작가 사인회 등을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네이버웹툰 제공) 2025.07.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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